2025.12.13
※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인물·지명·상황은 모두 창작 과정에서 구성된 것들입니다. 이야기 속 화자의 표현·편견·감정은 작중 인물의 서사적 기능일 뿐, 작가의 입장 또는 가치관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이 글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비하하거나 조롱할 의도를 전혀 포함하지 않습니다.
단팥 3개, 슈크림 3개.
1.
오늘따라 장사가 잘 안 된다. 불황이다. 하긴, 언제는 불황이 아니었나, 호황이었던 시절은 기억도 잘 안 난다.
장기 불황의 여파가 내 작은 붕어빵 기계 앞에까지 도착했다. 한창 겨울인데 매출이 영 시원찮다.
붕어빵 장사를 시작한 지 벌써 두 해.
처음 붕어빵 장사를 해보겠다고 말을 꺼냈을 때가 떠올랐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쓴소리가 이어졌다. 요즘엔 홈베이킹이니 뭐니 하면서 있던 빵집도 다 망하는 판국이라고.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같이 등산이나 다니자고. 그래도 나는 고집을 피웠다. 피울 수밖에 없었다.
가슴만 답답했다.
명절이랍시고 찾아온 아이들의 쓴소리가 이어졌다. 우리는 우리 살기도 바쁘니까, 노후는 알아서들 하세요 제발. 죽으라는 말보다 서러워 눈물이 뚝 나왔다.
쬐그만 손주 놈이 품에 안겨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죽고 나면, 이 집은 이제 우리 거야!’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옆에서 과일을 먹으며 핸드폰을 보던 며느리가 표정관리를 못 한다. 나도 뭐라 대꾸해야 할지... 아들 내외를 돌려보내고 나니 집이 유난히 썰렁하고, 그리고... 이것은 아닌데 싶었다.
붕어빵 하나 정도는 그냥 사 먹겠지, 큰 밑천이 드는 장사는 아니라 괜찮겠다 싶었다.
시내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6층 상가 건물 – 나는 이 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이 건물이 내 건물이었다면 참말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다못해 이 좋은 자리에서 붕어빵이라도 좀 팔면, 무슨 덕을 봐도 볼 것 같았다. 거 왜, 풍수지리인가 뭔가, 부자들은 사는 터부터가 다르다고들 하니, 큰 나무 밑에 가서 큰 그늘 덕이라도 좀 보자고.
자릿세를 흥정하려고 건물주를 수소문했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걸, 건물주가 흔쾌히 그냥 장사를 허락했다. 어쩐지 느낌이 좋았다. 역시 진짜 부자는 다르다.
‘많이 파세요.’
‘어휴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다양한 사람들이 내 작은 붕어빵 트럭을 방문한다. 근처 크고 작은 사무실을 다니는 직장인들이 제일 많이 사 간다. 아무래도 건물이 크다 보니 오가는 사람도 많다. 점심시간이나 오후 늦은 간식 타임에 주문 전화가 밀려오기도 한다.
다음으로 많은 손님은 이 빌딩 헬스장을 다니는 중년 여성들이다. 주로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는 것 같다. 팔자 좋은 여편네들이 각자 자가용 한 대씩 몰고 와 헬스장으로 올라간 다음, 서너 시간 후에 내려온다. 그들은 종종 내가 파는 붕어빵의 유혹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무슨 운동을 얼마나 했길래 붕어빵을 사 들고 집에 가는지 모르겠다. 뭐 내 알바는 아니다.
아이들도 제법 있다. 건물 2층이 학원이라 종종 사 간다. 원래는 녀석들을 보고 이 자리를 고른 것이다. 그러나 요새 아이들은 의외로 이런 간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아, 그 뚱녀다. 또 왔다.
‘단팥 3개 하고요, 슈크림 3개 주세요~’
‘네~ 잠시만요~’
단팥 3개, 슈크림 3개. 오늘은 어쩐지 잔소리가 없네. 아무튼 이 뚱뚱한 젊은 여자는 하루이틀이 멀다고 내 붕어빵을 찾는다. 단골이니 고맙게 생각해야 하겠지만 사실 내심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
내가 제일 혐오하는 부류다. 뚱뚱한 젊은 여자 – 이 시간에 추리닝 차림으로 붕어빵이나 사 먹으러 돌아다니는 것만 봐도, 아마 제대로 된 직업도 없고 분명 어디 근처 원룸이나 하나 얻어 혼자 사는 년이 분명하다.
내가 건넨 붕어빵 봉지를 들고 거대한 몸을 돌려 총총 사라지는 뒷모습을 본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찬다. 딱 봐도 철딱서니가 없는 티가 줄줄 난다. 저 나이에 저렇게 살이 쪄갖곤... 어울리지 않게 아이 같은 목소리에 혀 짧은 소리까지. 처음엔 말투가 너무 어린아이 같아 조금 모자란 여자인가 했다.
한창나이에 호리낭창한 아가씨들은 내 가게 근처에 오지도 않는다.
아무튼 내가 딱 싫어하는 여자들이 저런 아줌마도 아니고 아가씨도 아닌, 늙수그레한 젊은 년들인데, 딱 저 나이 저런 것들이 이런저런 말이 많다. 어떤 날은 붕어빵 가장자리가 탔다는 둥, 단팥이 적게 들어 있다는 둥, 단팥이 붕어 대가리 쪽에 몰려 있다는 둥, 별 시답잖은 트집을 잡아댔다. 가시내, 그럼 네가 만들어 처먹던가. 아무튼 말만 한 가시내가 가라는 시집은 안 가고 나이만 먹어 갖곤 저래 간나이 마냥 붕어빵 군것질이나 하고 궁둥이 뒤룩뒤룩 살이나 찌는 것이다.
내가 저 나이에는 먹여 살릴 애새끼가 셋이었다.
그때 뭘 했더라... 고생이 고생이 고생바가지라 좋은 시절도 몰랐다. 붕어빵은 고사하고 오뎅 하나를 내 마음대로 실컷 사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정신 차리고 보니 이제는 또 하루 종일 추운 밖에 서서 붕어빵이나 찍어내는 내 팔자, 팔자꼬라지라니.
‘... 근데 붕어빵이 점점 맛있어지는 것 같아요.’
‘아유 감사합니다. 이거 서비스인데 하나 더 드릴게요.’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식은 붕어빵 하나를 더 담아 준다. 일종의 고객 관리다. 저런 년들은 잘 달래서 보내야 한다. 요새는 그 뭐더라, 맘, 맘카페? 인, 인스... 뭐더라? 아무튼 쓸데없이 시비라도 털었다가 마음 상해 돌려보내고, 그 인터넷인가 먼가에 사진이라도 찍어 올리면 안 되니까 말이다.
2.
‘엄마 나 붕어빵 또 사 왔다~’
철썩.
‘아얏, 왜 때려!’
붕어빵 봉지를 들고 당당히 집에 들어서는 나에게 엄마가 다가와 등짝을 때렸다.
‘어이구 이년아 네가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붕어빵이나 처먹고 있니. 살 좀 빼라 살 좀.’
‘아 또 시작이야. 아 진짜 그만해 쫌. 아 짜증 나.’
나는 붕어빵 봉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단팥 3개, 슈크림 3개.... 그리고 꼬다리 1개 더♡
‘근데 이 집 붕어빵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듯. 나의 느낌적 느낌임.’
엄마가 인상을 쓰며 종이로 된 붕어빵 봉지를 쭉 잡아 찢는다. 달콤한 냄새와 따듯한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그러고선 붕어빵을 하나 집어 든다.
‘언제는 입맛에 안 맞는다더니.’
나는 대꾸했다.
‘아냐, 처음에는 주인이 좀 실수를 많이 하더라고. 내가 말했잖아. 그래서 내가 피드백을 좀 넣었다니까. 그래서 그런가 요새는 붕어빵 맛이 완전 달라졌어. 엄청 맛있어, 맛있다니까? 역시 사람은 발전이 있으려면 고나리질도 좀 참을 줄 알고 그래야 한다고. 나 잘했지? 사실 내가 좀 오지랖 떨긴 해. 나도 알기는 알지. 그렇지만 내 지적질 덕에 실제 많이 발전했잖아?’
엄마가 붕어빵을 먹다 말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 사람 너 아니?’
‘뭐?’
‘네가 우리 집 딸인 거 아냐고.’
‘모를걸? 뭣하러 그런 이야기를 해. 건물주 딸인 거 생색내는 것도 웃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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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빵~ 붕어빵 드세요~’
‘어휴 우리 공주님 붕어빵 또 사 오셨네. 아휴 근데 우리 공주님이 진짜 다 괜찮은데 살만 쪼오끔 빼면 좋겠구먼~ 이런 하찮은 서민 음식 좀 고만 잡수셔야겠는데~’
‘ㅋㅋㅋ 아빠도 참. 이 집 이제 잘해.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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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요새 붕어빵 사진 안 올린다?’
‘아, 질려서. 아무리 맛있어도 자꾸 먹으니까 질려.’
‘어휴 너 그 집 큰 고객이었는데.’
‘그렇지. 내가 많이 팔아 줬지.’
‘야 너 없으면 거기 망하는 거 아님?’
‘ㅋㅋㅋ지랄 노잼~’
‘ㅋㅋㅋ이제 불우이웃 돕기 끝났네.’
‘ㅋㅋㅋ뭐 어때. 그런 사람들은 원래 다 알아서 잘 살아.’
3.
겨울이 끝나간다. 이제 슬슬 이 장사도 접을 때가 됐다. 나는 건물주 양반에게 전화를 한 통 넣었다. 덕분에 돈 많이 벌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했더니, 그는 마지막으로 한번 찾아오겠다고 했다.
해가 질 무렵 그가 왔다. 웬일인지 오늘은 사모님도 동반 행차다.
‘장사는 잘 되십니까?’
‘아이고 사장님! 오셨습니까!’
나는 붕어빵을 굽다 말고 90도로 인사를 했다. 은인이지 은인이야, 암 그렇고말고.
건물주는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요즘 장사가 어떤지, 경기가 안 좋은데 많이 힘들지 않냐면서. 그는 연이어 말했다. 자기 딸도 이 집 붕어빵을 좋아한다고. 자기는 세상에서 자기 딸이 제일 예쁜데, 아마 여기 온 사람들 중에 제일 예쁜 여자가 자기 딸이었을 거라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 우리 집에 붕어빵 사러 오는 여자들치고 그다지 눈에 띄는 미인은 없었던 것 같은데. 누구지? 요새 저런 부잣집 딸도 붕어빵을 먹고사나?
‘우리 딸 갖다 주게, 단팥하고 슈크림 하고 이거 저거 거기 있는 대로 다 좀 넉넉하게 담아 주세요.’
‘예~예~’
신이 나서 붕어빵을 담는데, 옆에 있던 사모가 손사래를 친다. 스리슬쩍 손으로 남편 팔뚝을 살짝 꼬집는다.
‘어머 아니에요, 단팥 3개, 슈크림 3개만 포장해 주세요. 우리 애가 요새 다이어트 중이라...’
‘잉? ○○이 또 다이어트해? 아니 우리 공주님이 뺄 살이 어디 있다고...’
‘아휴 당신도 참! 당신이 그러니까 애가 그 모양이잖아욧. 암튼, 딱 3개씩만 담아주세요. 아휴 우리 애 아니면 사실 먹을 사람도 없고 그래서... 뒀다가 누구 주지도 못하구...’
... 아쉽게 되었다. 그래도 뭐 어떤가.
단팥 3개, 슈크림 3개. 나는 가장 예쁜 붕어빵을 골라 정성껏 봉투에 담았다. 주문과 다르게 몇 개 더 넣었다. 건물주 아내는 끝까지 손사래를 쳤다. 우리 딸은 조금 통통해서, 너무 많이 먹어도 안된다면서....... 통통?
나는 문득 여길 자주 찾아오던 그 뚱뚱한 젊은 년이 생각났다. 그 돼지 같은 년도 맨날 단팥 3개 슈크림 3개만 딱 사 갖고 갔다. 그러고 보니... 설마... 은근히 닮은 것 같기도 한데... 에이 설마 그 뚱녀가 저런 건물주 딸이겠어?
누가 그랬다. 진짜 부자 중에 뚱뚱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건물주 내외는 내가 주는 붕어빵 봉투를 공손히 받아 들고 뒤돌아 나갔다. 마지막까지 나는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아무튼 진짜 부자는 다르다니까. 어찌 저리 겸손하기까지 하담, 부러움에 더불어 슬며시 한숨이 나왔다. 건물주 양반은 그냥 평범한 외모인데, 역시 그 마누라는 때깔부터 달랐기 때문이다. 얼굴이야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지만, 아까 붕어빵 봉투를 건네받는 그 고운 손만 보아도 그렇다. 알반지를 낀 가느다란 손, 손만 봐도 딱 귀부인 팔자란 저런 년이구나 싶은 것이다.
부러웠다. 요즘 것들이야 뭐 천지도 모르고 자아실현이 어쩌고저쩌고 한다지만, 사실 저래 서방이나 하나 잘 얻어걸려 편히 사는 팔자가 최고였을 것인데.
그나저나 건물주 양반은 참 점잖기도 하다. 세상에 그러고 보니 양복도 우리 집구석 양반이랑 모양새가 비슷했다. 슬쩍 깃 가장자리가 낡은 구석이, 저러니까 부자다 부자. 저런 서방, 저런 애비를 둔 것들은 무슨 복이 많아서 저리 살꼬. 아휴 내 평생 말 한마디 걸어 볼 일 없을 것들이지, 그 생각을 하니 어쩐지 입이 쓰다. 이제와 후회하면 무엇하겠냐만은, 역시 계집이란 빤스 벗는 자리부터 잘 골라야 했던 법인가, 이놈의 붕어빵 트럭 자리 따위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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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다녀오셨... 어? 붕어빵 사 왔네~.’
‘응. 내 우리 딸 제일 좋아하는 대로 사 왔다. 이제 겨울 다 끝났다고 거기도 장사 안 한단다.’
‘아 그래? 아쉽다~ 오, 단팥 3개, 슈크림 3개. 좋았으~♬’
‘아유 예쁜 우리 딸~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딸~ 오늘도 잘 있었나? 아무튼 최고 미녀야 최고 미녀~아이고 우째 이래 먹는 모습도 볼이 오동통~ 이쁜 가잉~’
‘히잉~ 아빠가 그러니까 내가 살을 못 빼잖아! 난 고도비만이야! 으앙!’
‘괜찮다 괜찮아~♡ 대신 저녁이니까 하나만 무라~ 우리 예쁜 딸, 우리 집 후계자님 많이 드세요~ 하하하’
‘ㅋㅋㅋ.... 아빠 최고~♡ 역시 우리 아빠야~ 꺄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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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늘은 이제 정말 마지막 장사다. 내일이면 이 짓도 그만 땡이다. 돌이켜보니 올해는 작년보다 장사가 더 안되었고, 마진도 남는 것이 영 없다. 아무래도 이 짓거리도 마무리 지을 때가 된 것이다. 나는 정리를 마치고 무심결에 휴대폰을 켰다. 마지막 통화기록에 남은 전화번호를 잠시 바라보았다. 이것이 누구 번호인지 몰라 한참을 들여다보았는데 – 건물주였다.
... 삭제했다.
어차피 다시 볼 일 없을 것이다. 먼저 전화 올 일도 없을 것이고.
집으로 향하는 길, 날이 춥다. 내쉬는 숨에 하얀 김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내일은 눈이 오려나, 내년에는 호떡을 팔아볼까, 토스트도 좋을 것 같다. 손주 놈이 자기는 붕어빵보다 호떡이 더 좋다던가, 이제 장사도 마무리지었으니 이번 주말에는 며느리보고 한번 애들 데리고 오라고 해야지. 반죽은 미리 해 놔야겠지, 잔뜩 만들어다가 웃는 얼굴 좀 봐야겠다.
아무튼 어서 빨리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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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 3개 슈크림 3개
... 냠냠 쩝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