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완전한 행복>, 정유정을 읽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세상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들이 넘쳐난다. 가장 높은 강도의 행복감을 주는 것도, 가장 높은 강도의 불쾌감 및 고통을 주는 것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겠다. 그런 여러 가지 말들 중에서, 이런 말이 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을 잘 선택해야 해.” 직장을 가지고 나이도 어느 정도 차서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도달한 대한민국의 여성에게, 이 말은 좋은 남편감을 선택하라는 말과도 같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 또한 사람을 덥석 믿기보다 혹시 모르니 사람을 경계하라는 말로도 많이 쓰인다.
‘그래 봤자 같은 사람인데, 뭐 그렇게 큰일 나겠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고, 그런 생각을 깨는 경험을 아직 하지 않았다면 그냥 외우자. “사람 한 번 잘못 들이면, 인생 망하는 거다.”
책에는 크게 5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유나. 유나의 친언니 재인. 유나의 전 남편 영준과 그 사이의 딸 지유. 유나의 재혼 대상인은호. 책은 유나의 입장에서 서술되지 않는다. 유나의 행동의 이유에 대해 재인, 영준, 은호가 돌아가며 관찰 및 추론하는 것만 드러날 뿐, 직접 유나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게 재인과 영준, 은호, 그리고 유나의 딸인 지유의 눈으로 바라본 유나는 작가가 말하듯이 사이코패스이자, 나르시시스트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범죄를 계획하고, 그를 행한다. 타인의 심리를 조종하기 위해 유혹, 조롱, 협박 등의 행동 또한 서슴지 않는다.
작가가 이처럼 유나의 입에 지퍼를 채워 커튼 뒤에 세워 둔 것은 의도적이었다 이야기한다. 악인의 내면이 아니라, 한 인간이 타인의 행복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타인의 삶을 어떤 식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나는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그들을 이해할 수도, 그리고 이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짧은 시간 내에 타인을 판단하게끔 설계된 동물이다. 각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데이터 베이스 화해서 짧게는 ‘싸하다’, ‘잘 통할 것 같다’라는 말부터 더 긴 말로 상대방을 파악해야 다음 수준의 인간관계 속에 이 사람을 넣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흔히 겉모습, 혹은 행동만을 보고 타인을 단정 짓는다. 그 사람의 사정을 들어보거나 이해하려는 노력 따위는 쉽게 생략해 버린다. 그렇기에 겉모습만으로 판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더욱 매력적인 외면, 말주변 등을 갖기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한다. 소위 말하듯이 예선전이라도 통과해야 본선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겉모습만을 보고 타인을 단정 짓던 우리 각자에게 한 번씩은 경종이 울리는 시기가 있다. ‘알고 보니’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거나, 처음에는 몰랐으나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사람을 발견했을 때다. 나의 경우 교사가 되어 나보다 약하다고 생각되는 수많은 아이들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을 때부터, 그때부터 타인을 단정 짓는 것을 멈췄다. 대신 타인의 생각이 궁금했고, 그 사람이 자라 온 환경이 궁금했으며, 상대의 사정을 생각해주려 했다. 한두 가지만의 단서로 다른 이의 모든 것을 유추하고 내 인생에서 배제시켜 버리던 내가 좀 더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그러다 몇몇의 사람을 만났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처음부터 본인이 그렇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본능은 ‘아, 이 사람 좀 위험한데.’라는 신호를 보낸다.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느꼈던 직감은 ‘지나치게 친절’하다는 점이었다. 친절한데 뭐가 문제야,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한 친절이라는 데에서 오는 애매한 불쾌감이 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인간관계라면 직감만으로 피했을 관계였지만, 그럴 수 없는 관계였다. 책에서 유나를 묘사하는 문장 중 이런 문장이 있다.
“유나는 삶의 매 순간에 몰입하는 여자였다. 그 바람에 감정적 항상성이 유지되지 않았다. ‘이리 와’와 ‘저리 가’ 사이를 무시로 오갔다. ‘이리 와’ 시간에는 천사였고, ‘저리 가’ 시간에는 미친 여자였다. 사소한 일로 트집을 잡고, 트집 잡히지 않도록 처신하면 왜 자신에게 거리를 두느냐고 화를 내고, 화를 내기 시작하면 기어코 극단까지 갔다. 자해를 하거나 가해를 하거나. 헤어질 위기도 여러 번 겪었다. 그때마다 유나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요약하자면 가만있는 날 미친년으로 만든 건 너네야, 정도가 될까. 이는 아내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전형적인 방식이기도 했다.”
‘어떻게 나를 그렇게 생각해?’, ‘어떻게 감히 나를’. 이젠 듣기만 해도 단전에서부터 진저리가 쳐지는 말이다. 본인이 너무 드높아서, 본인이 다 옳아서, 본인에 대한 타인의 부정적인 판단 및 생각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굳게 믿기에 본인이 아무 영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를 부정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 사람들.
소설 속 유나는 완전한 악인이다. 의도 자체가 악한, 그런 사람. 하지만 이 세상에는 유나와 같은 나르시시스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의도 자체는 악하지 않더라도 나르시시스트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꽤나 스펙트럼이 넓다고나 할까.
물러서는 것만이 답이라 생각했던 아이의 망령을 벗어나지 못한 재인과, 어떤 산봉우리에 눈이 멀어 죽을 줄 알면서도 오르는 등반가처럼 산 은호, 그리고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유나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아 유나에게 굴복하는 삶을 산 지유. 이 세 사람은 유나라는 악인이자 나르시시스트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리고 재인과 지유는 본인의 상태를 자각했을 때, 그리고 요망한 생쥐의 말을 더 이상 무시하지 않고 답함으로써 그들을 주무르려는 그 커다란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자신만이 옳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유나처럼 대화보다는 연설에 익숙한 사람들이, 냉정함을 유지하고 대응한다 하더라도 자신을 해하는 행동까지 해가며 본인이 피해자인 척하려는 사람들이. 나의 인생에 이들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나 자신이 이런 사람이 되려 하지 않음과 동시에, 피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나의 삶을 지켜내는 것. 눈 감지 않고, 필사적으로 반대편을 향해 도망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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