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만 어딘가 낯선
자몽 까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이건 까본 사람만이 안다. 까다 보면 요령이 생기긴 하지만 시간이 크게 단축되지는 않는다. 2주에 한 번씩은 식단 도시락 밀프랩을 하기 위해 날 잡고 자몽만 까는데 이게 은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귀찮은데 스트레스 풀리는 참 이상한 자몽 까는 시간.
구운 채소는 잘 익은 과일만큼이나 달큰해서 자주 해 먹게 되는 음식이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듬뿍 넣고 방울 양배추, 버섯, 가지, 호박, 파프리카, 브로콜리에 단백질 추가해 주면 근사한 한 끼 뚝딱.
벌써 2년 넘게 마시고 있는 애플사이다비니거. 애사비를 마시고 나서는 제로음료 마시는 횟수도 확 줄었다. 식초 자체의 톡 쏘는 맛 덕분에 탄산이 생각나지 않는다. 난 보통 한 달에 1리터를 비워서 쿠팡 가격 괜찮을 때 쟁여두는 편이다. 그나저나 사과값은 도대체 언제 내려가는 걸까... 거기다 요즘은 토마토도 가격이 미쳐 날뛰고 있다. 어째 배달음식 시켜 먹을 때보다 식비가 더 드는 것 같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난 이후 나는 5월이 참 무섭다. 이 홈택스 사이트는 뭘 자꾸 손대는지 5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업 초반엔 꽤 돌려받았는데 그 이후로는 계속 뱉어 내고 있는터라 신경이 곤두서있다. 작년에도 30만 원 돈을 뱉어냈는데 올해는 100 얼마를 내라길래 세무사를 쓰기로 했다. 우선 상담만 받아보려고 종소세앱으로 문의했더니 웬걸 60돈을 돌려준다네? 다른데 발품 팔기도 귀찮아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세무사 비용 결제를 했다. 도대체 저들과 나의 차이는 뭐길래 이렇게 간극이 큰 걸까? 숫자 무식자는 오늘도 웁니다.
엄마는 엄마다. 아침에 대화 몇 번 주고받고도 나의 기분상태를 단번에 간파하고 기어이 이유를 알아내 문자를 보낸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포털사이트 멀리하고 유튜브 알고리즘 꺼버리면 마치 이 세상에 그런 끔찍한 일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데 이 방법이 통히지 않는 현지인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내 롱샴 한편에 자리 잡던 아이를 잡아떼어버렸다. 보고 있으면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달까. 나도 안다. 손흥민 키링은 죄가 없다는 걸. 아무튼 우리는 리그 17등이 챔스 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 17등한테 한 시즌에 4번이나 진 등신들이 존재하는 세상과 같은 세상이기도 하다.
유로파 이후로 이상하게 계속 기분이 나아지지가 않았다. 이 나이 먹고 내 감정하나 컨트롤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질릴 때쯤 화장실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호르몬이었구나. 도비 보내고 생체리듬도 박살 나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커서인지 생리를 건너뛰었다. 5월부터 다시 이노시톨을 섭취하고 원래주기로 돌아왔다. 이노시톨은 영양제의 효과를 믿게 한 유일한 아이다. 한 달에 생리 두 번 하는 건 정말이지 끔찍하지만 말이다.
식재료들이 애매가 남아있을 때 해 먹기 좋은 메뉴 중 하나가 치즈오븐스파게티다. 최소한의 노력과 재료로 늘 준수한 맛을 보장해 주는 음식이랄까. 한식 쪽에 간장계란밥이 있다면 양식계는 무조건 치즈오븐스파게티다.
가끔 소보로 슈크림 단팥빵과 같은 옛날빵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이 빵들은 고급스러운 버터를 사용하면 이상하게 맛이 없다. 그래서 시장이나 박리다매로 파는 빵집에서 사 먹을 때 제일 만족도가 높다. 딱 재료 본연의 존재만 드러낼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단과자 빵들. 그리고 저 제빵사 아저씨 일러스트가 그려진 빵봉투에 담겨 있으면 감성까지 합격이다.
젤리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데 유독 질겅질겅 씹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땐 이 하리보 만한 게 없지. 근데 당 성분표를 보면... 혈당스파이크 맞아도 싸다.
나이가 들면 글씨체도 어른스러워지고 문구류나 귀여운 캐릭터 물건들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멀어지는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보다. 나는 여전히 글씨체도 어른스럽지 못하고 문구류에 환장하며 책상 위에 귀여운 물건들이 있어야 심신의 평화가 온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주로 토이카메라나 코닥 펀세이버로 찍다가 필름 카메라에 부쩍 관심이 늘어서 올림푸스펜으로 입문했다. 운이 좋게 연식에 비해 관리가 꽤나 잘되어 있는 아이가 나에게 왔다. 하프카메라라 필름을 아낄 수 있어서 좋지만 생각보다 필름 한통을 다 채우기 힘들다. 셔터 누르는 맛이 살짝 아쉽지만 입문자용으로는 최고인 것 같다. 부지런히 찍어서 얼른 결과물들을 보고 싶다.
작사를 하게 되었다. 가이드도 없이 inst로 작업하려니깐 더 어려운 것 같다. 목소리도 입혀지지 않는 곡을 백여번 반복해서 들은 것 같은데 틀도 못 잡고 있다. 하도 진도가 안 나가서 작곡가라 쓰고 혈육이라 읽는 내 동생에게 악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작사가도 대략적인 송폼(Song Form)은 알아야 한다며 Verse pre chorus chorus 어쩌고 저쩌고 코드가 어쩌고 하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름 체르니 40까지 쳤었던 나의 음악적 소양이 피아노 학원 진도표에 거짓으로 색칠하는 것과 같은 취급은 받는 순간이었다. 곡에 글자를 끼워 맞추다가는 답이 안 나올 거 같아서 일단 곡과 어울리는 단어들을 모아놓고, 거기서 문장을 만든 다음에 곡을 들으면서 추려가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접근법을 바꾸니 조금씩 결과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근데 사실 이것보다 내가 더 열을 올리고 있는 건 저작권협회에 올릴 예명을 뭘로 지을 것인가이다. 아주 제일 재미있다.
해리스타일스 3집. 살짝 더워질락 말락 하는 이 시기에 딱 듣기 좋은 앨범이다. 작년에는 4월부터 에어컨을 틀었던 거 같은데 올해는 5월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도 아직까지 가동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더우려고 이러는 건지 슬슬 무서워진다. 더군다나 올해는 추석도 10월에 있다. 죽어난다는 소리다.
5월의 마지막 날. 에어컨 청소도 하고 집안도 싹 다 뒤집어엎어서 묵은 먼지들을 빼냈다. 이젠 더워질 일만 남았구나.
| 데이지의 서울살이
반쪽 1인 가구 조각 일상 모음집
시간의 순서가 아닌 의식의 흐름대로 기록합니다.
글 데이지
사진 데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