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카트만두에서 만난 아르차나
1년이나 여행하는 삶이라고?
여행을 오랫동안 하면 어떤 느낌이야?
음 ···.
눈을 떴을 때 매일 다른 천장을 보는 삶이야.
매일이 색다르고, 설렘으로 가득 차지.
그런데,
어느 순간 여행이 일상이 되더라.
천장이 매일 달라지는 삶도,
이제껏 만나지 않은 사람을 보는 것도,
지금껏 가보지 못한 공간에 가는 것도,
어느 순간 일상이 되더라.
변화가 일상이 되는 거야.
매 순간 바뀌는 그 일상이 나는 참 좋아.
떠남이 길어져 새로움이라는 일상이 무뎌질 때,
머무는 일상에서 숨을 쉬는 거야.
머무름이 길어져 새로움이라는 일상이 사라질 때,
새로운 일상을 찾아 떠나는 거야.
머무름과 떠남을 교차하며
나만의 일상을 살아가는 거지.
공간이 주는,
공간을 살아온 사람이 주는
리듬을 감각하고
숨을 쉬어가는 삶.
그게 여행이야.
네팔에서 만난 만주와의 이야기 ▶ [너의 데이지] 함께여서 더 아름답네
푹푹 찌는 무더위와 매연으로 혼잡한 카트만두 거리.
만주의 오토바에 올라 Dibyancy’s Girls Hostel(이하 디바이낸시 호스텔)로 향한다.
디바이낸시 호스텔에 들어서니 학생들의 온 관심은 한국 여행객에게 쏠린다.
초록색 계단으로 3층까지 이루어진 호스텔에 배낭을 메고 올라가며
방문 앞에 수줍게 서서 네팔 학생들이 인사해 준 그 순간.
네팔 사람들에게 느낀 첫 번째 감정이 피어오른다.
순수함.
삼삼오오 모여 쑥스럽게 인사하는 친구들은 순수한 호기심을 보인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친구들에게서 나오는 순수함이 참 좋다.
작게 보이는 손짓조차도 반응하는 모습이 귀여워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어느 날 아침은 밀크티를 챙겨 옥상에서 함께 카트만두 전경을 본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이 순간이 참 좋다.
마니샤는 히말라야 기슭 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교육을 위해 카트만두에 왔다.
마니샤는 말한다.
"난 히말라야 마을에서 태어나 정말 행운아야.
히말라야를 보면서 지낼 수 있잖아."
생기 넘치는 그의 말과
자신의 마을, 산을 사랑하는 모습은
나조차도 기분 좋게 한다.
우리는 아침을 다 함께 먹기도 한다.
네팔의 관습대로 손으로 먹는 친구들은 나를 위해 수저를 놓아주었다.
접시에 수저를 보자마자 말한다.
"나도 너희들처럼 손으로 먹고 싶어!
다음부터 나한테도 수저를 주지 않아도 돼."
친구들은 웃으면서 수저를 치운다.
누구보다도 손으로 게걸스럽게 먹는 나를 보며 그들은 웃음을 짓는다.
친구들은 참으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수다스러운 그들의 이야기가 좋다.
우린 피곤이 쌓여 꾸벅꾸벅 졸 때까지 밤새 이야기 나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한다고.
불가촉천민에 대한 어떠한 관행도 있어서는 안 돼."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네팔에 여전히 카스트 제도가 만연하다는 걸 알게 된다.
카스트 제도의 불합리,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받아온 친구들.
친구들은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며 내게 굳건한 눈동자를 보인다.
그중 Archana(이하 아르차나)는 언론을 통한 세상의 변화를 믿고 있다.
23살 젊은 나이에 기자가 되어 카트만두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아르차나.
다음 날 아침,
같은 방에 있다는 우연을 이용해 그에게 삶을 묻기 시작한다.
부스스한 머리의 아르차 나는 친근한 친구처럼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널리즘으로 세상을 바꾸는 삶
아르차나 가 7살이었을 당시, 그의 아버지는 재혼으로 여동생과 남동생을 가졌다.
새로운 가족을 위해 아르차나도 가정부 엄마를 따라 바느질 일을 시작했다.
그는 컴퓨터사이언스 전공을 꿈꿨지만, 가난한 가정은 그를 지지해 주지 못했다.
그가 15살이 되는 해, 바느질 일과 함께 아르바이트로 라디오 일을 시작하였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은 어느새 그의 삶 속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으로 벗어나고 싶었어.
생계를 위해 저널리즘을 시작했지만,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어.
저널리즘으로 세상을 바꾸는 건 도전적이야.
그렇지만, 나는 저널리즘을 통해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리포팅은 그녀가 잘하는 일이지만, 저널리즘을 선택한 것은 그에게 쉽지만은 않았다.
가족은 ‘여자라면 집에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아르차나가 기자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설상가상 법적으로 폐지된 카스트가 분분하게 남아 그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카스트제도에서도 최하층, 불가촉천민에게 속했던 그의 집안은
다른 이의 거처와 절에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다.
모두가 마시는 물조차 마시지 못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에게 닥친 장애물은 그가 펜을 잡게 하는 이유를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물론 카스트는 법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에 남아있어.
저널리즘은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큰 힘을 가졌어.
이를 통해 신분제도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리고
마을 여성들에게 격려와 희망을 주고 싶어.
그게 변화의 시작이잖아.”
계급으로, 성별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위해
금전적 독립을 위해 분투 중이면서도 자신의 구역에만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투쟁하는 아르차나의 모습은 조그만 호스텔 방 안의 공기를 긴장하게 만든다.
아르차나는 미디어 산업과 저널리즘이 꾸준히 발전인 네팔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그가 지내온 수많은 시간은 겹겹이 쌓여 그의 꿈을 굳건하게 만들었다.
계급과 성별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위해 그는 오늘도 취재하고, 평등을 향해 펜을 잡는다.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야.
카스트나 사회적 성을 이유로 차별이 없는 사회말이야.
앞으로도 계속 쭉."
여전히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일까.
시대가 해결하지 못한 암묵적 신분제도와 여성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그의 모습은
카트만두에 가득 핀 보랏빛의 자카란다가 되어 환하게 피어오른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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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