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포카라에서 만난 잔
카트만두에서 버스로 대략 7시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포카라.
포카라를 둘러싼 페와 호수는 여행자에게 포근함을 선물한다.
히말라야를 찾는 여행객은 페와 호수를 보며 등반 전후로 몸을 달랜다.
나 역시, 히말라야 트레킹을 앞두고 포카라를 찾는다.
호수 수평선 너머 새들이 달콤하게 노래 부른다.
포근하게 공간을 감싸는 호수는 잔잔한 물결로 끝없는 잔향을 만든다.
페와 호수가 따스하게 나를 안아주기 때문일까.
알게 모르게 채워진 근심과 걱정은
페와 호수를 거니는 발걸음에 자취를 감춘다.
멍하니 앉아 호수를 바라보고,
카약을 타는 관광객의 웃음소리를 듣고,
지나가는 현지인의 말소리를 듣는다.
호수와 함께 산책하며
포카라와 사랑에 빠진다.
카우치서핑으로 연락이 닿은 잔은
나와 짧게 만나고자
오토바이를 끌고 숙소에 찾아온다.
잔에게 느껴지는 편안한 풍채는
'어디로 가는거야?'라는 질문이 필요없게 만든다.
무작정 오토바이는 올라 그를 따라간다.
조그만 베이커리에 멈추어 빵을 사 온 뒤
잔은 근처 천 가게에 들어가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잔, 여기는 어디야?"
"내가 운영하는 가게이자,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지."
잔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전통 천을 판매한다.
코끼리 문양, 힌두 문양으로 자수가 달린 수공예품과
여러 색 사리의 긴 천이 가게 안에 빼곡히 전시된다.
잔은 손님에게 능숙하게 사리를 펼치며 아름다움을 설명한다.
이후 다시 돌아와 차를 홀짝인다.
"네팔의 아름다운 천을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 기뻐."
우린 네팔을 품은 사리의 천에 둘러싸인 채
차 한잔과 빵을 먹으며 이야기 나눈다.
인도 카슈미르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잔은
인도와 카슈미르가 여러 차례 겪은 분쟁을 말하며 단호히 말한다.
"나는 인도 사람이 아니라, 카슈미르 사람이야."
분명히 서류상에 인도에 속한 카슈미르 지역을
당연히 인도라고 생각한 나는 의아해한다.
카슈미르분쟁 :인도와 파키스탄의 종교분쟁.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독립 이후 카슈미르 지역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영유권 싸움.
힌두교와 이슬람교로 인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갈라졌다.
세 차례에 걸쳐 카슈미르로 인한 대규모 분쟁을 치르면서
오늘날까지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으로 남아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슈미르는 카슈미르야.
인도도, 파키스탄도 아닌, 카슈미르.
우리는 아름다운 대자연을 품고 있어."
모두가 빨갛다고 생각한 사과를 통해
사과가 빨갛다고 생각한 아이는
보라색이라 말하는 이를 처음 보며
사과에 대한 의문을 품는 것처럼.
언제나 국가로 명시된 '대한민국'의 국민이던 나는
여전히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 곳의 국민이라 말하는 그를 본다.
잔은 단호하게 말하며 카슈미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마치 국가로 규정된 절대적 개념은 없으며
문화, 민족이 얽혀 있는 줄다리기가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언제나 사과는 빨갛다고 생각한 아이는
틀 밖에 서서 사과를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사과가 빨갛든, 보라색이든 사과는 정말 아름답게 생겼다.'
잔은 자기 고향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듬뿍 갖고 있다.
카슈미르의 아름다움과 가족에 대한 사랑은 그를 웃게 만든다.
"데이지, 카슈미르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죽기 전에 꼭 카슈미르를 느껴야 해."
잔은 각양각색의 네팔 전통 천이 찬란하게 펼쳐진 공간 안에서
삶에서 다져온 인생철학을 들려준다.
그저 스쳐 지나갔을 천가게 아저씨에게
삶의 철학을 듣고 인생 메시지를 이야기 나누는 이 순간이 신비롭게만 느껴진다.
잔과 나눈 삶에 대한 여러 철학은
내 생각을 그대로 복제하듯이 똑같다.
살아온 배경도,
문화도, 국가도 다른 우리가
같은 삶에 대한 철학을 가졌다는 사실은
우리의 만남을 운명적으로 변모시킨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보지 못했을
그가 보낸 수많은 사색의 순간,
고독의 시간은
오늘날 견고한 철학이 되어
삶을 마주하는 태도로 피어난다.
사색의 속도를 맞추어 고독의 시간을 보냈을 잔.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물었다.
내 삶의 이유는 희망이야.
우리는 희망으로 삶을 살아가지.
우리가 희망을 품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지 못해.
희망은 우리를 만들어주는 거야.
나의 희망은 어머니와 여동생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주고 싶어.
포카라 호수 위, 휘영차게 뜬 보름달이 반사된다.
크고 밝은 보름달을 가로등 삼아
노래를 흥얼거린다.
조그만 천가게에서 나눈 잔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빨간 사과가 다른 색일 수 있다고 알려준 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와도
삶에 대한 가치는
온전히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잔.
잔이 내게 선물한 신비로움은
포카라 첫날 밤의 시원한 바람이 되어 불어온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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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