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난 파룩과 다니스
하이얀 사막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자니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고운 모래로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은 하늘과 경계를 이루지 않는 바다와도 같다.
모래의 부응을 받은 듯 서서히 피어오르는 일출은
빨갛게 그은 에너지로 내 동공을 붉게 적신다.
광활히 펼쳐지는 붉은 바닷속 모래는 산호초처럼 춤을 춘다.
모래의 춤사위에서 우주를 본다.
사막에서 바다를 보았고
바다에서 우주를 보았다.
눈물이 흐른다.
사막의 염분을 흡수한 듯 눈물이 입술에 따갑게 닿는다.
사막이 내뿜는 아름다움에 압도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말을 잇지 못한 채 짜디짠 눈물만 마시는 것뿐이다.
사하라 사막 투어를 마친 뒤, 무작정 카이로에 도착한다.
머물 곳을 정하지 않은 나는
타흐리르 광장 비좁은 그늘에 기대어 호스텔을 급히 찾는다.
조건 설정에 맞추어 펼쳐지는 호스텔을 보다 보니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흐른다.
'일단 어디든 가자'
찌는 듯한 카이로 더위에 15kg 배낭을 우선 없애자.
고민 끝에 가장 싼 가격이 제시된 호스텔로 향한다.
20분가량 더위를 뚫고 걸으니
귀신의 집처럼 생긴 건물이 나를 기다린다.
엘리베이터 없이 둥근 계단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으스스한 분위기가 삼엄하게 깔려있다.
"여기는 남자 전용 호스텔입니다."
지친 몸을 이끌며 무거운 배낭과 함께
4층 계단을 오른 여행자에게 돌아온 답변은
여자는 머무를 수 없다는 것.
아쉬움에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오는데,
우연히 올라가는 두 명의 남자가 내게 말을 건다.
"지금 어디서 내려오는 거야?"
"4층에 있는 호스텔.
남자만 받는다고 하네,
다른 호스텔을 알아봐야 할 거 같아."
"3층은 우리가 묵는 호스텔이야.
가격도 저렴하고, 남녀 모두 사용하고, 시설도 좋아"
더위에 오랜 시간 노출된 나는
갑작스레 만난 두 남자의 제안을 고민한다.
'그냥 대충 3층 호스텔에서 묵을까···.'
고민하는 나에게
두 남자는 쾌활하게 제안한다.
"3층 호스텔에 같이 묵자. 재밌을 거야!
카이로 여행도 함께하는 거 어때?"
가격도, 시설도 괜찮은 조건이며
무작정 만난 이 두 남자가 알 수 없이 편해짐을 느낀다.
결국 짐을 풀기로 결정한 나는 호텔 리셉션을 찾아간다.
폐허 세트장을 연상케 하는 계단에서 만난 두 남자는
짐을 풀러 방에 가는 나에게 말한다.
"데이지! 준비되면 말해!"
우리의 우연한 만남은
카이로 여행 내내 이어진다.
두 남자는 본인을 파룩과 다니스라고 소개한다.
튀르키예 사람인 파룩과 독일 사람 다니스 서로도 카이로 여행 중 만났다.
만난 지 오래지 않아 그들은 서로의 카이로를 채워주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나와 동갑인 파룩은 자국에 대한 사랑이 있다.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람을 꿈을 위해 군인이 된 그는
대학에서 아랍어와 국제관계 학사 과정을 마친 뒤
통역사로 지원해 20살에 통역장교가 되었다.
그는 튀르키예 장교가 가질 수 있는 녹색 여권을 자랑스럽게 보인다.
"보통 여권과 다르게 장교는 녹색 여권을 가지는데,
비자 없이 190여 개국에 입국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졌지.
물론, 대한민국인은 모두가 190국 입국이 가능하지만, 터키는 다르니까."
그는 휴가를 맞아 카이로 여행을 오게 되어
허름한 호스텔에서 나와 다니스를 만난다.
다니스는 엔지니어로 일하며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산다.
나라를 옮겨 다니며 일을 병행하는 그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때는 그냥 일을 안 하면서 지내기도 한다.
그러던 중 이집트에 우연히 오게 되었고,
어느새 6개월째 이집트에 머물고 있다.
"이집트인들이 정말 싫지만,
이집트에 온 지 어느새 6개월이라는 게 나도 믿기진 않아."
우린 함께 서로의 우주를 공유하며 카이로 시내를 나선다.
카이로 시내는 곰팡이가 핀 것 같은 잿빛 건물이 즐비하다.
회색 건물의 향연이 마냥 신기한 나는 한층 들뜬 채로 말한다.
"이집트 카이로에 내가 왔다니!"
완공 건축물에 세금을 부과하는 이집트 정책으로 인해
잿빛의 건물은 미완공 채로 벽돌이 그대로 남아있다.
모래와 흙으로 뒤덮이고
제대로 채색되지 않은 건물은
사막 도시 카이로의 분위기를 더한다.
우린 카이로 최대 시장을 함께 둘러보고,
카페에 앉아 카이로가 가져다준 여유를 즐긴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는다.
잠들지 않는 카이로는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다는 듯
자정은 맞아 거리 곳곳에 길거리 상인이 돗자리를 피기 시작한다.
후덥지근하지만 참을 수 있는 정도의 공기는 적절하게 바람을 만든다.
카페에 앉은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작스레 불이 꺼진다.
"지금 무슨 일이야?"
처음 겪는 정전에 당황해하는 내 물음에 파룩은 말한다.
"정전이 난 거야.
이집트 정부에서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모든 불을 끄곤 해."
정전은 어느새 카이로 밤거리 문화로 자리 잡은 듯
불이 꺼지자, 사람들은 환호성 소리를 낸다.
그들의 환호 소리에 우린 눈을 마주쳐 한바탕 웃음 짓는다.
한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정전에도
정전 이전과 똑같이 왁자지껄 이야기 나누는 카이로의 밤.
쓰레기가 나뒹구는 카이로 거리 위에서
카이로를 밝힌 불이 모두 꺼져도 아랑곳없이
우린 자정이 넘어가도록 웃음꽃을 피운다.
하루는 피라미드를 보러 갔다 사기를 당한다.
속상한 마음으로 호스텔에 돌아온 나는
스스로 괜찮다 괜찮다 말하지만,
여전히 속상한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호스텔로 돌아오니, 다니스는 나를 보며 묻는다.
"데이지! 피라미드 어땠어?"
홀로 견뎌내어 단단해지자고 다짐하지만,
오랜 친구처럼 다정한 다니스를 보고 나니
나도 모르게 사기당한 속상함을 털어놓는다.
"데이지, 방법은 있을 거야.
내일 관광 전담 경찰서에 가보는 거 어때?
원한다면 같이 갈게."
다니스는 진심 어리게 나를 위로한다.
피해 금액을 다시 돌려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결국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말 한마디 자체로
마음은 어느새 따뜻해진다.
이후 우린 매번 가던 카페에 향한다.
매번 가던 카페거리 빈 의자에 앉는다.
어느새 서로의 카이로가 되어준 우린
각자 삶에 대해서,
여행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지난 카이로 여행이 얼마나 좋았는지,
이야기 나눈다.
서로의 우주를 공유하고
현재에 충실하며 지금, 이 감정을 공유하면서
이 순간이 주는 물결에 온몸을 맡겨 힘껏 춤춘다.
하루는 카이로 새벽 4시의 거리를 함께 거닐고,
밤거리 바람을 함께 나눈다.
"완전히 다른 사람들,
완전히 다른 자동차들,
완전히 새로운 거리를 걷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좋지 않아?"
대낮의 뜨거움을 까맣게 잊은 듯
새벽 4시의 카이로는 선선한 바람으로 우리를 맞는다.
낯선 거리를 걷는 이 순간의 소중함으로 한껏 들뜬 우리는
드물게 사람이 보이는 거리 위에서 함께 춤을 춘다.
"아~리랑 ~ 아~ 리랑 ~아라리요~"
아리랑을 부르는 나의 노래를 물끄러미 듣던 다니스는
노래 끝에 맞추어 연신 물개 같은 손뼉을 친다.
"데이지! 나도 알려줘!"
한국어를 더듬더듬 배우는 다니스는 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고
카이로 새벽 거리에 아리랑이 울린다.
서로 함박웃음 지으며 삶을 노래하던 순간으로
새벽 카이로 거리가 채워진다.
난 여전히 새벽 4시의 그 카이로 거리를 그리워한다.
호스텔 계단에서 결성된 우연한 인연은
카이로의 모든 시간을 가득 채웠고,
어느덧 각자의 여행을 떠날 시간이 찾아온다.
"우리가 함께한 이 순간을 못 잊을 거야."
서로의 힘든 순간을 공유하고,
이 집에서 발생한 힘든 시간에 함께해 주고,
미래의 일들을 함께 고민하며
정전을 함께 보내며 지새운 카이로의 밤들.
우연한 만남이 가져다준 소중한 인연을 카이로의 선선한 바람에 맡기며
그들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파룩)
내 삶의 이유는 가족의 행복이야.
(다니스)
내 삶의 이유는 지금처럼 즐기면서 살기 위해서야.
함께 무너질 것만 같은 낡은 호스텔에서 묵고,
카이로의 불빛이 모두 꺼지는 순간을 함께하며
카이로의 새벽 거리를 함께 걷던 우리는
다시 각자의 길을 향해 떠난다.
쓰레기가 나뒹굴고
돈으로 사기를 치며
후덥지근하고 언짢은 날씨의 연속에도
우린 지난 카이로를 잊지 못할 순간으로 만든다.
함께라는 힘으로 말이다.
그 힘과 작별하기 아쉬운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며
카이로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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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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