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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인종차별이지만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난 압둘

by 여행가 데이지 Jan 30. 2025


빽 빽 --


경적이 나는 릭샤 소리 때문일까,

정신없이 지나치는 인파 때문일까,

인도가 연상되는 카이로 거리는

황톳빛으로 친숙하지만 낯선 분위기를 내뿜는다.



카이로에 있다는 일정을 카우치서핑에 올리니

압둘이라는 남자에게 연락이 온다.

배낭여행자 꿈을 가진 그는

배낭여행을 하는 나에게 카이로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제안한다.



압둘은 장난꾸러기 청년이다. 사진은 압둘과 나



하루 5번 기도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는 압둘은

술도 마시지 않으며 이슬람교를 깊이 따른다.

동시에 여행을 사랑하는 청년이다.


세계를 탐험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21살 그의 모습은 마치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는 느낌이다.



높은 수증기와 낮은 물의 격차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린 물에서 나트륨이 폭발하듯 이야기 나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무장한 우리는

서로의 삶을 질문하고, 우주를 공유한다.

오가는 대화 불꽃은 마치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분출한 수소 원자 모습이다.


카이로 거리를 걸으며


"삶은 간단해.

간단하고 아름답지.

전 세계에 친구를 가진다면 삶은 훨씬 더 아름다울 거야!

여행의 베풂은 내 삶의 방식이야."


유머와 웃음을 주고받는 걸 좋아한다는 그와 나는

마치 진입장벽이 낮은, 유럽에서 국경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만난 순간부터 오랜 친구처럼 서슴없이 장난치고 이야기 나눈다.



"쓰레기 마을?

마을이 쓰레기로 덮여있다고?"


"응. 나도 예전에는 쓰레기 마을 근처에 지냈었어."


카이로 쓰레기 마을을 궁금해하는 나를 위해

압둘은 마을로 나를 인도한다.


쓰레기 마을로 알려진 '무카타맘 마을'은 카이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수거되는 중심지이다.

마을 대부분의 주민들 집 앞은 가득 쌓인 쓰레기가 있으며

대문 앞에 앉아 쓰레기 재활용 작업을 하는 주민이 보인다.


툭툭에 올라 회색빛의 집들을 지나쳐 쓰레기 마을로 향한다.

잿빛 건물은 골목길로 카이로 거리를 채운다.

흙먼지 날리는 좁은 도로는 얽힌 설킨 마을을 이룬다.

조금씩 드러나는 쓰레기의 모습과 냄새를 느낀다.


악취 나는 마을 일대에서

가득 쌓인 쓰레기에 경악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쓰레기 마을의 일부 모습


아이들은 쓰레기를 장난감 삼아 장난을 친다.

가득 쌓인 쓰레기봉투를 침대 삼아 낮잠을 자는 아이도 보인다.

툭툭 바퀴는 길바닥에 버려진 쓰레기를 으스러뜨리고 지나간다.



"압둘.. 여기 사람들은 왜 쓰레기 속에서 사는 거야?"



"쓰레기 분리수거가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거든.

사실 여기 분들은 부자라는 소문도 있어."



숨겨진 재산이 얼마이든

어린 시절을 쓰레기와 함께 보내는 아이들을 보고 경악을 숨길 수 없다.

한창 놀라워하는 중, 압둘은 툭툭 기사와 오랫동안 대화를 한다.



"압둘, 기사에게 뭐라고 말한 거야?"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라고 말했어.

그는 쓰레기 마을에서만 살아와서 이곳이 자기 세상의 전부인 거야.

내가 너를 만난 기회로 카우치서핑도 말해주고,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라고 말해줬지."


본인이 살아온 세상으로만 세계를 바라보기에

쓰레기 속에서 살아온 삶은 어쩌면 나의 세계와 다르겠구나.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문화를 마주하는 것의 소중함을 다시 느낀다.

동시에 조용히 두 손 모아 바란다.



아이들은 쓰레기봉투 위가 아닌 아름다운 풀밭에서 낮잠을 자는 날이 오기를.


쓰레기 마을을 나오면서 툭툭 안에서


쓰레기 마을을 나온 뒤,

우린 이집트 카이로 일대를 모두 돌아다닌다.


압둘은 자신의 고향 집에 초대한다.

그곳에서 마을에 있는 자기 친구를 부른다.

그 친구와 함께 우린 압둘이 어렸을 때 자주 갔다던 전망대에 간다.



압둘 친구들과 함께 전망대에 올라 카이로의 일몰을 바라본다.



전망대에 오르니, 지붕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황갈색의 풍경이 펼쳐진다.

사막 도시에 온 듯한 느낌은 물론,



아름다운 풍경 뒤로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준다.

부끄러워하면서도 찍어준 사진을 받아 수줍게 미소 짓는 친구들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갑작스레 오르게 된 전망대가

더욱 특별하게 와닿은 이유는,

천방지축 또래 남자아이들 같으면서도

이방인을 동네로 초대해

마을을 소개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준 친구들 덕분이 아닐까.


이집트 카이로의 일몰




각개전투에서 총검술로 싸운 전사가

피를 내뿜으며 자기 소임을 다하는 듯이

강렬히 타오르는 태양은 자신의 빛을 내뿜으며

강렬히 사막 도시 사이로 전사한다.





"치노 ~~ 치노~~!"


일몰과 인사한 뒤, 

마을을 나오는 중에 나를 보고 아이들은 '치노(중국인을 의미)'를 외친다.

여행하며 익히 들어왔던 인종차별이기에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가는데

뒤에서 돌이 날아온다.


"아앗"


마을 아이들이 나에게 돌을 던진 것이다.


"치노! 치노!"



당황해하는 압둘과 압둘 친구들 앞에서

나는 조용히 상황을 파악한다.


"지금 저 아이들이 나한테 돌을 던진 거야?"


"응. 데이지 미안해."


아이들 대신 사과하는 압둘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돌아가려는데

문득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압둘, 아이들에게 방금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야겠어."



멀리서 잘못의 기색 하나 없이 메롱을 외치는 아이들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아 진다.


"그들에게서 사과를 받아야겠어."


조금은 화가 난 내 모습을 본 압둘은

아이들에게 함께 찾아가 옆의 보호자에게 말한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한 거죠?"


사과할 기색 없는 보호자와 아이들은

나를 더욱 화나게 했고,

그들의 행동에 화가 난 압둘 역시

누구보다 눈을 부릅뜨며 화를 낸다.



"데이지는 나의 친구야!

친구에게 돌을 던진 거 사과해!!"



점점 격해지는 상황은 몸싸움으로 이어질 기미가 보인다.

차별당한 나를 위해 핏줄 세워 말하는 압둘을 바라본다.

아랍어를 못해 영어로 아무리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 앞에서

압둘은 나의 의견을 전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Sorry. (미안해)"



서로에게 인상 지으며

어깨를 툭툭 건드리기 시작하던 언쟁은

돌을 던진 아이의 사과로 마무리된다.




"데이지, 아이들은 쓰레기 속에서 계속 살아왔어.

외국인을 가까이서는 처음 봤을 거야.

그들이 네가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어서 그런 거 같아."



압둘은 나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본인이 사과한다.

자기 잘못이 아니면서 내게 사과하는 그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동시에, 나를 위해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준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압둘, 고마워."



이집트 여행을 해오며 만난 이집트 사람들을 통해

시나브로 가진 이집트인에 대한 여러 편견이 있었다.

자신에게 이롭에 꾀를 부리는, 

한마디로 '약은 이집트인'이라는 인식이 있던 나에게

압둘은 그렇지만은 않다고 알려준다.



약은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압둘이 좋다.

압둘에게서는 세상을 향한 열정으로 나오는 젊은이의 풋풋함도 있지만,

진정으로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압둘이 가장 좋아한다는 쿠사리 식당에 찾아간다.



마을의 일은 완전히 잊어버린 채

그가 좋아한다는 이집트 전통 요리 쿠사리를 함께 먹으러 간다.


같은 에너지를 공유하는 우리는

렌틸콩, 파스타를 비벼서 우걱우걱 입에 넣으면서도

우린 끊이지 않고 웃음꽃을 피운다.



잔뜩 신난 압둘과 나


"데이지!

나랑 결혼해 줘!"


한참을 흥에 겨워 돌아다니는 나를 보며 압둘은 갑작스레 청혼한다.


"갑자기?

나는 아직 결혼 생각이 없는걸 ~"


꺼지지 않은 흥으로

장난스레 맞받아치는 압둘은 말한다.


"이집트에서 남자는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해.

그렇지만, 군대에 가지 않을 두 가지 방법이 있지.

하나는 집안에 돈이 많아서 정부에게 많은 돈을 내거나,

다른 하나는 외국인이랑 결혼하는 거야!"



"뭐? 지금 너, 군대 가기 싫다고 청혼하는 거야?

무슨 청혼이 그래!"




"나는 곧 군대에 가야 할 시기인데,

너와 나는 이렇게 잘 맞는걸!

결혼하는 거 어때?"



"군대를 이유로 청혼이라면

다른 사람 찾는 게 좋을걸 ~"



우린 마치 소꿉친구가 놀이터에서 이야기하듯

카이로 거리를 걸으며

때론 유치하기도 하고

때론 진지하기도 하고

때론 현실적이기도

때론 몽상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나일강의 밤, 함께 강을 바라보며 우린 춤을 췄다.


"데이지~! 지금 기분이 정말 좋아!

너는 정말 좋은 사람 같아!"



"압둘!!! 나도 너무 기분이 좋아!

나일강도 아름답고, 너와 만나서 정말 재밌어!!"



세차게 부는 바람을 엔진 삼아

우린 나일강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친다.



나일강이 흐르는 다리 위에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로

마음껏 소리 지르고 춤을 추던 순간.



"마샬라! (아름답다!)"



압둘은 신이 잔뜩 난 나를 따라 따라 소리친다.




"마샬라! 인샬라! (아름다워! 신의 가호로!)"



"너무 행복해!!! 마샬라!!!"



흥을 주체하지 못한 나는 세찬 바람을 음악 삼아 이집트 전통 춤을 추고,

압둘은 춤추는 나를 위해 전통 노래를 힘차게 부른다.

서로의 우스꽝스러운 춤을 보며 한참을 웃는다.


밝게 빛나는 달은 나일강의 윤슬과 함께

카이로의 밤을 함께 하는 우리에게 조명을 비춘다.



환상적인 카이로 밤의 연극 피날레가 다가와 오면서 우린 같이 소리친다.



"왈라!!(진짜!)"



나일강 다리 위에서의 아름다운 풍경


나일강 위의 카이로 일대를 우리만의 무대로 장악하여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지금, 이 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뒤

가시지 않은 흥분으로 유람선을 타러 가는 압둘을 붙잡고 대뜸 묻는다.


"압둘! 네가 사는 이유는 뭐야?"




내 삶의 이유는 너와 함께해서
매우 좋고  백패커처럼 세계를 여행하고 싶고  
나는 여행사 회사를 차리고 싶고
네가 모든 시간을 안전하고 항복하길 바라.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과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압둘.


그의 답변은 유람선을 타고 바라본 나일강의 윤슬조차도

유람선에 흘러나오는 중동 노래를 음미하는 순간조차도

한 페이지의 카이로의 밤을 잊지 못할 청춘으로 만든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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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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