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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Jul 15. 2024

나의 꿈은 해적 왕이 되는 거야

대만 예류지질공원에서 만난 야오와 지운

어릴 적 버킷리스트였던 대만 예류지질공원을 찾았다. 


https://brunch.co.kr/@daisypath/46



예류지질공원의 구석구석을 느끼고자,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3 구역에 갔다.

인적이 없는 길 위에서 풀은 바람을 베개 삼아 낮잠을 자다 일어나길 반복한다.


지질공원이 내뿜는 초록 내음새를 음미하며 길을 내려오는데, 

두 명의 대만 사람이 말을 건다.


지운(가운데)과 야오(오른쪽)는 내게 호기심 있게 말을 걸었다.


아까 3 구역 정상에서 눈이 마주쳐 잠시 웃음을 공유한 사람들이다.

본인을 야오와 지운이라 소개하며 우린 발걸음을 맞춰 걷기 시작한다. 


야오와 지운은 직장에 다니며 각자 삶의 기반을 닦아가고 있지만,

대학교 2학년, 기숙사에서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왔다.



야오는 지운의 검은 피부를 놀리며 순간의 웃음거리로 만들지만,

주말마다 만나 시간을 공유하며 생긴 끈끈한 우정은 감출 수 없어 보였다.


우린 예류 지질공원을 함께 걸었고, 공원 곳곳에 웃음꽃을 피워냈다.



야오는 타이총에서 전자제품 수리원으로, 지운은 타이베이에서 지하철 역무원으로 지낸다.

타이총과 타이베이는 거리가 있지만, 

떨어진 거리는 서로가 주말마다 만나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수리하는 일과 매일 어두운 지하역에 있는 게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덕분에 휴일에 친구들과 여행할 수 있어 오히려 좋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이 뭔데?"


"나는 해적왕이 될 거야!"


바보 같은 웃음으로 당차게 해적왕이 될 거라는 그들.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와 같이 해적왕을 이야기한다.  

말하고 나면 증발하여 기억에 남지 않을 시시콜콜한 농담으로 나는 공원 내내 방정맞게 웃었다.


바보 같고 순박한 그들에게 나는 이미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야오와 지운은 오늘 밤 친구들과 함께 할 파티에 나를 초대했고, 

난 거절할 이유를 찾지 않았다.


야오와 지운과 함께 대만 야시장을 찾았다. 

친구들과 만나기 전, 야오와 지운은 야시장에서 갖가지 대만 요리를 소개해 주었다.

대로의 좌우는 물론, 가운데까지 차지한 수만 가지 길거리 음식 앞에서 나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데이지!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아무렇지 않게 지갑을 여는 야오와 지운을 보며 생각한다. 

낯선 이방인에게 이다지도 친절한 이유가 무엇일까.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그들은 짧은 영어로 답한다.

"Guest! Guest!(손님! 손님!)"


우리나라에 온 손님이니, 대접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이다.


이후 다른 친구들과 만나 잊지못할 밤을 보냈다.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서 만나 사회인이 되는 과정을 함께해 왔다.

서로 별 의미 없는 말을 주고받다가도 그새 대화는 진지한 고민거리로 흐른다.


이제는 각자의 삶을 채워가면서도

과거의 추억을 공유하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갈 존재가 침투할 공간은 그들에게 언제든지 있다.


나도 오늘 하루, 그들의 공간에 침투했다.

그들은 자신의 공간을 활짝 열어주었고, 

우린 시계가 새벽 2시를 가리킬 때까지 추억을 만들었다.


인연이란, 스치는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스쳐 가는 순간의 조각보는 시간의 흐름에 그리움으로 물든다.

그리움이 후회로 짙어지지 않기 위해 나는 순간의 인연에 충실히 한다.


중앙 무대의 가수가 부르는 노래에 몸을 젖히기도,

함께 중앙 무대로 나가 노래에 몸을 맡기기도,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서로의 농담에 웃고, 서로의 순간을 함께한다.


함께하는 소중함을 알고 있는 이들이기에,

이방인조차도 품어줄 수 있는 걸까.


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친구들은 어떤 삶의 이유를 가지며 살아가는 걸까?



내 삶의 이유는 그의 남편이 되는 거야,
내 삶의 이유는 매일 행복하게 사는 거야
내 삶의 이유는 부자가 되는 거야. 난 대장이다!
내 삶의 이유는 해적이 되는 거야! 원피스!
내 삶의 이유는 네가 대만을 기억하는 거야
내 삶의 이유는 부자가 되는 거야!



술이 곁들여져 여과 없이 내뱉은 장난꾸러기들의 대답 같지만, 나는 깊이 공감했다.


삶의 이유는, 

대학 때부터 행한 얼토당토않은 농담을 주고받을 친구들과

어느 주말을 함께 보내며 바보같이 웃음 지으며 

삶의 조그만 소망, 그저 단순한 상상,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흉내를 내는 것임을.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달이 지질공원의 암석같이 노랗게 떠있다. 


과분한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어떻게 처음 본 사람을 

그들의 서클에 함께 끼워줄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낯선 사람에게 친절할 수 있을까?


의문은 다짐으로 흘렀다. 


'나도 그럼 사람이 되어야지.'


대만 친구들에게 배운 마음을 꼭 껴안은 채

대만에서의 마지막 밤이 흐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74f4GG643w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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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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