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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Apr 17. 2019

자기계발서의 갈림길에 서다

나를 버리고 가신 님 발병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잘못된 걸까?

사랑하는 사람은 살기를 바라고, 미워하는 사람은 죽기를 바란다. 똑같은 사람을 두고 한 번은 잘 살기를 바라고 한 번은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야말로 미혹이다. (논어12.10)



<논어 속 감정읽기> 첫모임을 시작했다. 첫 번째 감정은 사랑이었다.

논어에만 세 가지 사랑이 나온다. 우리의 사랑도 여러 가지다.

남녀의 사랑, 부모-자식 간의 사랑, 스승-제자 간의 사랑, 동료 간의 사랑...

하지만 이 감정은 다 '사랑'으로 불린다.


사랑과 미혹에 관한 논어의 구절을 읽고 땅이 꺼져라 한숨 소리가 들렸다.


어떤 사람은 회사 동료를 떠올렸고,

어떤 사람은 자신을 버린 옛 애인을 생각했다.

나는 맞댄 등을 빼버린 동료를 생각했다. 그때 엉덩방아를 크게 찢었다.

그 사람이 잘 되었을까, 안 되었을까?


솔직히, 그 사람 불행했으면 좋겠어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제주시 아라동 시옷서점에서 <논어 속 감정읽기>를 한다.


"나를 버리고 가신 임은, 10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아리랑의 노랫말처럼 버림받은 기분은 잊을 수 없다.


저마다의 추억에 빠져있을 즈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아직 수양이 덜 되어서 이 모양인 것 같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자기계발서의 갈림길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자기계발서는 이 순간 자신의 현재 상황을 부정하고, 더 나은 모습을 스크린에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았을 때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기껏해야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미혹들을 다스리는 것일 텐데,

그것마저 눌러버리면 순수한 감정은 햇빛에 쪼그라든다.


나를 배신한 사람이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자책하는 것이 옳은 길일까?


자기계발서 사고방식은 자기부정의 서사다.

자기를 부정하고 근사한 대상을 지향하는 것인데,

문제는 '근사한 지향'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이다.


이에 반해 인간적인 사고방식은 가만히 놔두는 것이다. let it be!

나를 버리고 가신 임이 발병 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점을 찍는 것이다.

그냥 점만 찍어 두고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찍어둔 점들은 어느 날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나를 비춰줄 것이다.


논어 속 감정 읽기가 끝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재밌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 중에서 '김옥순의 텃새' 이야기가 참 재밌었다.

나만 알고 있기는 아까워서 적어 둔다.


우리 집에 암탉 두 마리, 수탉 한 마리를 키우는데요. 암탉이 알을 못 낳는 거예요. 시장에 가서 말씀드리고 암탉 두 마리를 더 사왔어요. 그런데 글쎄 앞의 암탉 두 마리가 텃새를 어찌나 부리던지 새로 들어온 암탉들이 기를 못 펴고 온몸에 상처 투성이인 거예요. 다시 시장 아저씨께 말씀드렸더니 알 못 낳는 암탉을 알 잘 낳는 암탉으로 교환해주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 날 저녁 텃새왕 암탉 점순이를 세워두고 경고했죠. "야, 김먹순 너 이 녀석! 알도 못 낳으면서 얘들을 괴롭혀?. 너 한번만 더 괴롭히면 다시 팔아먹는다." 먹순이가 야단을 알아들었는지 한동안 구석에 숨어서 나와 눈 안 마주치려고 발버둥을 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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