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든 대가의 말은 맥락이 다 살아 있기 때문에 활용이 무궁무진하다. 그것은 생활의 대가인 보통 사람의 말도 마찬가지다. 논어와 도덕경이 속담과 격언의 향연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장 르누아르의 《나의 인생 나의 영화》라는 자서전을 읽고 그의 영화를 전작할 뻔했다. 프랑스혁명을 다룬 영화 <라 마르세예즈>(1938)에서 그리스 아고라 광장의 질척질척한 사나이들의 뜨거운 사랑은 촌스러웠지만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가 한 말 중에서 영원히 내 가슴에 남아 있는 빛나는 말은 무성영화에 대한 것이다. 미국 이민자 1세대의 고단한 삶에서 무성영화의 시대는 꽃폈다. 그들은 영어를 할 줄 몰랐기에 무성영화는 영화 그 이상의 의미였다. 장 르누아르는 영화 역사상 그 시대가 가장 아름답고 위대했으며 영화산업과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까지 그 영광을 재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르누아르 감독의 이 말이 생각난 것은 뜻밖에도 그림책 《제랄다와 거인》을 읽으면서였다. 라디오 방송 코너의 시즌2(탐나는 문학)에서 논어를 그림책과 같이 전면적으로 콜라보하기로 하고 원고를 쓰는데 갑자기 장 르누아르가 튀어나왔다.
공자가 말했다. “‘벼슬에서의 선배들은 예악에 대해서 촌스럽고, 후배들은 예악에 대해서 군자다웠다’고 한다. 만일 예악을 쓴다면 나는 선배를 따르겠다.”(논어, 11.1)
사람은 아날로그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새겨진 강한 기억과 감각을 그리워한다. 유년시절은 논어에서 말하는 선진이다. 선진은 선배라는 뜻이지만 내 개인으로 한정하면 촌스러웠던 시간을 의미한다. 촌스럽고 철없던 그 시절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제랄다를 배움과 관련해서 생각하게 될 줄도 몰랐고, 이처럼 깊은 배움을 알려주는 책인지도 몰랐다. 논어의 거울로 보니 비로소 보였다. 자세한 내용은 라디오에서.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반 jibs 라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