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 내린 일요일

40일 차

by 다작이

가만히 보니 어제와 오늘은 꽤 묘한 날이었다. 날짜로 보면 어제가 8월 31일, 지난달의 마지막 날이었다. 게다가 오늘부터는 9월이 시작되는 날이다. 묵은 달이 가고 새 달이 온다는 점에선 오늘처럼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에 새로운 달이 출발한다는 게 더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사실 오늘처럼 날짜와 요일과 달이 딱 맞아떨어지게 돌아가는 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오늘 같은 날이라면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거나 어떤 다짐을 두기에도 제격이 아닌가 싶다.


일요일 오후를 보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어제는 하루 온종일 비가 흩날렸다. 비를 바라보며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셨고 우산을 쓴 채 돌아다니기도 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비인데 그런 내게도 어제의 비는 조금은 반가웠다. 마치 지나가는 달에 대해 자질구레한 미련 따위를 남기지 말라는 듯 곳곳을 쓸어내려주는 비처럼 여겨졌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 묵은 때를 말끔하게 털어낼 수만 있다면 아마 최적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오늘은 이론적으로만 보면 계절, 가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 지긋지긋했던 여름이 어제를 기점으로 드디어 끝났다는 뜻이다. 물론 오늘인 9월 1일이 왔다고 해서 여름이 끝났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이치상으로만 그렇다는 뜻이지 실제로 이 더위가 가려면 족히 한 달 정도는 더 지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제 그렇게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도 폭염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온몸이 땀으로 젖는 건 여전했다.


달력상에서만 그렇다는 뜻이지 이 길고 지난한 여름이 언제쯤 물러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어쨌건 간에 오늘은 9월 1일, 가을이 시작되는 첫날이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 하늘이 더없이 높고 푸르다는 말은 아직 못 할 것 같다. 높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알고 있는 가을 하늘의 빛을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 않을까?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 매직도 올해엔 없다는 보도도 있었으니 그저 납작 엎드려 남은 여름의 기운이 물러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테다.


날씨야 어떻건 간에 나는 내 할 일을 해야 한다. 체감상으로는 여전히 여름 속에 있지만, 이미 가을이 왔다고 가정하고, 9월의 계획을 수립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가을이라고 하면 우선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부터 생각난다. 그만큼 책 읽기에 더없이 선선해졌다는 뜻이리라. 오죽하면 평소에 책 읽는 데 등한시했던 사람들도 몇 권의 책 정도는 읽을 정도니까. 사실 나는 가을에 몇 권의 책을 읽겠다거나 어떤 책을 읽겠다는 따위의 별도의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꼭 가을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틈만 나면 책을 자주 읽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계절보다도 가을에 더 많이 읽는 건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읽은 책의 권 수를 일일이 세어보진 않았지만, 책 읽기에 이만큼 좋은 계절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결국 또 글쓰기로 넘어가야 한다. 지금 내게 글쓰기만큼 중대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라면 글을 쓰기에도 제격이다. 폭염에 지친 나머지 별다른 이유 없이 늘어지거나 나태해질 가능성도 이젠 거의 없다. 여름 한창때보다는 남은 시간을 더 효율 있게 활용하게 될 거라고 기대한다.


그러고 보니 이번 가을은 글쓰기에 있어서 두 가지 정도의 진척을 이루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쓰고 있는 장편소설을 마무리해야 한다. 한창 쓰다 막힌 건 맞지만, 중요한 시기마다 내 발목을 붙드는 걸 보면 가장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또 그동안 써 놓은 많은 글도 다시 꼼꼼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내 배 아파가며 낳은 내 자식들이다. 버릴 것과 보관해야 할 것을 추려야 한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작업이다. 남아있는 양을 생각하면 과연 얼마의 시간이 더 소요될까 싶다.


9월의 첫날, 그리고 한 주간의 첫날이 되었다. 게다가 오늘은 직장에서 큰 변화가 있는 날이다.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진 않는다고 해도 이왕이면 좋은 일이 더 많은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글을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