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진기한 광경을 보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도 보이지 않던 모습이 요즘 들어 자주 눈에 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고나 할까? 원래 지하철이나 기차를 타면 사람들은 딱 두 부류로 갈린다. 하나는 말할 것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한 부류는 눈을 감은 채 좌석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가운데 같은 객차 안에서 독서 중인 사람이 한 명 있을까 말까 했던 게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일까? 내가 탄 지하철 객차 안에 무려 세 사람이 책을 읽고 있었다. 나이는 채 마흔이 안 되어 보였는데, 죄다 남자들이었다. 꽤 이례적인 일인 데다, 더 놀라웠던 건 세 사람 모두 멀리 떨어져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즉 일행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얼마나 진지하게 읽고 있었는지 보는 내가 다 흐뭇할 정도였다.
좋은 모습은 그저 좋게 보면 되는데 또 내 고질병이 도지려 했다. 순간적으로 또 뭔가가 느닷없이 유행 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사람들은 어떤 유행이 생기면 따라 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 유행 현상 때문에 한동안 독서 열풍이 분 적도 적지 않았다.
언젠가 미하엘 엔데를 책으로 처음 만난 날 너무도 깊은 감명을 받아 내가 마치 '모모'의 전도사라도 된 것 마냥 사람들에게 그 책을 추천하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모'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꽤나 흐뭇하여 가족에게 얘기했더니 한참 동안 웃었다. 그러면서 어떤 드라마 얘기를 꺼냈다. 아마도 제목이 '내 이름은 김삼순'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거기에 나오던 남자주인공이 극 중에서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보였는데, 그가 읽던 책 중의 하나가 바로 '모모'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며 그땐 멋쩍게 웃어넘겨야 했다.
그때의 그 고약한 기억 때문이 아니겠나 싶다. 또 무슨 드라마에서 누군가가 독서하는 모습을 보고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이 때문이었다. 뭐, 이유야 어떻건 간에 책 읽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화는 어렵다고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한 것도 교양이 부족하기 때문일 테다. 물론 교양의 부족은 고스란히 책을 읽지 않는 데에서 온다. 시대가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교양을 쌓는 데에 사실상 독서를 능가할 만한 건 없다.
나도 책을 꽤 좋아하다 보니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으면 무슨 책을 읽고 있나 싶어서 눈길이 간다. 제목이 보이면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그 책에 대한 정보를 훑어보곤 한다. 그러다 가끔 괜찮아 보이는 책을 발견하면 독서리스트에 슬쩍 끼워 놓는다. 며칠 뒤 공공도서관에 가서 그 책을 빌려오거나 때마침 중고 물품으로 나온 게 있으면 구매하기도 한다. 내가 몰랐던 책을 우연찮게 알게 되는 기쁨이 생각보다 꽤 쏠쏠하다. 그런 사소한 일도 독서의 폭을 넓히는 일이 아닐까?
언젠가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전공서적을 제외하고 1년에 평균 1권의 책을 읽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명색이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고작 그것밖에 안 읽나 싶었다. 물론 현재 그들의 독서량은 나도 모른다. 백 번 양보해 독서 인구가 늘었다고 해도 다섯 권 안팎이지 않을까? 국내에서 최고 명문으로 손꼽히는 대학교의 학생들이 그 정도라면 다른 곳은 말하나 마나가 아닐까 싶었다.
아침부터 흐뭇한 모습에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열심히 책을 읽고 있던 그 세 남자분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그들의 보람 있는 하루를 빌어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