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보람찬 하루였다. 사실은 최근 10여 일 간이 그랬다. 내 기억이 맞다면 최근에 신춘문예 공모전에 원고를 마지막으로 보냈던 게 대략 8년 전이었던 걸로 알고 있었다. 어차피 나와는 인연이 없는 일이고, 그 세계는 미친 척하고 다리 하나 슬쩍 들이밀 수 있는 데가 아니기 때문에, 소설을 틈틈이 쓰고 있지만 따로 응모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11월 말경에 느닷없이 응모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원래 문청들 사이엔 11월과 12월에 앓는 가슴앓이를 두고 신춘문예 열병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유명한 증상이다.
실컷 잘 있다가 그 병이 도진 것이다. 그것도 무려 8년 만이었다.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부터라도 써야지,라고 하며 설칠 이유도 없었다. 이미 써 놓은 것만 해도 스무 편이 넘으니 제일 탐나는 것 몇 개만 골라서 정성껏 다듬으면 될 일이었다. PC 하드디스크에서 고이 잠들어 있던 녀석들을 깨웠다. 그렇게 해서 간택받은 녀석은 모두 셋이었다. 중편 1편과 단편소설 2편이었다. 대충 살펴보니 죄다 기준 분량을 넘어선 것들이라 가지를 치듯 쳐내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마음에 걸리는 건 200자 원고지 250~300매인 중편소설이었다. 이에 비해 70매 혹은 80매 내외인 단편소설은 근심거리도 아니었다. 어떤 걸 다듬어 응모할지를 정했으니 다음 차례는 보내야 할 곳과 마감 기한 확인이었다. 당연히 나는 서로 다른 세 곳에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단편소설은 모든 일간지에서 다 접수받지만, 내가 알기로는 중편은 딱 한 곳만 받는다. 하필이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메이저 일간지였다. 어차피 당선에 목을 매지 않는다면, 즉 제출에 의미를 둔다면 메이저 일간지에 못 보낼 이유도 없었다. 못 먹어도 고. 꽤 이름 있는 메이저 일간지 세 곳을 선정했다.
마감 기한은 촉박한 곳도 있었고, 여유 있는 곳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기한이 얼마 안 남은 곳이 중편소설을 접수하는 곳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 중편은 단편 분량의 3.5배쯤 되기 때문에 손 보는 것도 부담스럽긴 하다. 이 모든 정보를 확인한 날짜가 11월 24일이었다. 그런데 중편소설은 11월 28일까지 원고가 도착해야 했다. 단편 중 하나는 12월 4일 소인 유효였고, 다른 하나는 12월 8일까지 도착해야 했다. 여기에서 소인 유효는 마감일 당일에 우체국 소인만 찍혀 있으면 마감일자를 넘겨서 도착해도 접수를 받는다는 뜻이고, 도착분 유효인 두 곳은 무조건 마감일 내에 원고가 도착해야 한다는 뜻이다.
퇴고 순서는 보나 마나 11월 28일 마감인 중편이 우선이고, 다음은 12월 4일 자 단편, 맨 마지막은 12월 8일 자 단편으로 정해야 한다.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11월 28일 도착해야 하는 중편을 3일 안에 발송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27일에 빠른 등기로 보내야 28일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최대 3일이 남은 셈이었다. 미리 써 놓은 게 있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새로 써야 했다면 중편소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고작 3일 간,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는 모르겠는데 영혼의 절반은 갈아 넣어 다듬었다. 딱 마감 전날인 27일에 우체국에서 중편소설을 발송했다. 마감을 지킨 것이다. 실타래가 꼬여 있으면 차근차근히 풀면 된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세 편 중 한 편을 완성하고 나니 다른 두 편은 비교적 수월하게 작업을 했다. 시간적인 여유도 더 있었고, 일단은 분량면에서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12월 4일 마감 단편은 3일에, 12월 8일 마감 단편은 오늘 오후 3시에 보냈다. 사실 말이 8일이지 중간에 주말이 이틀 끼어 있어서 결국 오늘이 아니면 마감을 넘기게 되는 꼴이었다.
원래 내 당선 가능성은 2%다. 즉 당선될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는 말이다.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잘 알고 있으니 아쉽지는 않다. 처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만 다해서 보내자고 마음먹었으니 후회도 없다. 더군다나 나 자신과 한 약속을 지켜내지 않았는가? 솔직히 나는 그것만 해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충분히 보람 있는 일이기도 했다. 문득 살면서 나 자신과 한 약속을 몇 번이나 지켰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면 오늘은 최근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가장 뿌듯한 하루가 아닐까 싶다.
딱 오늘 저녁만 내게 휴식 시간을 줘야겠다. 그래 봤자 결국 또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