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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janice Mar 25. 2023

부족한건 나였음을

아이의 부족한 모습에 마음이 아린다. 잘했으면 좋겠는데, 불안해하는 연약한 마음이 내게 온전히 전달된다. 이내, 나 또한 불안해진다. 미간은 찌푸려지고 온몸은 걱정으로 둘러싸인다. '어떻게든 되겠지..' 라며 무심하게 놓아버렸던 지난날의 부족했던 관심이 내게 비수가 되어 꽂힌다.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이. 얼마 전 학교 선생님의 상담전화를 받고 심란한 마음이 돋아났다. 남자아이기에 축구에 관심이 많은 건 알았지만 실제로 잘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국대 경기가 있으면 꼬박꼬박 챙겨 보고 응원도 곧잘 하는 아이의 모습에 그저 흐뭇한 미소만 지을 줄 알았을 뿐. 학교에서도 그럭저럭 모든 면에서 무난하게 지내고 있으려니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럭저럭 잘 지낸 게 맞았고.



그런데 한 가지 사건이 있었음을 알았다. 아이들끼리 축구 경기를 종종 하는데 그때 팀을 정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잘하는 아이들끼리 대표가 되어 가위바위보를 하고, 이긴 아이가 선호하는 아이를 픽 하는 방식으로 팀을 꾸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늘 내 아이가 마지막에 남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크게 울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선생님은 현명하셨다. 그렇게 팀을 나누는 방식은 문제가 있음을 아이들에게 인지시키셨고 누가 누구를 선정하는 방식이 아닌 그야말로 랜덤으로 팀이 결성될 수 있게 룰을 변경하라고 권고하신 것이다. 그 이후로 내 아이도 더 이상 울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내 아이는 운동신경이 부족하다. 나는 원래부터 운동엔 젬병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잔병치레도 많았고 그래서일까, 체육시간이 제일 싫었다. 그렇다 해도 난 여자였기에 체육을 잘하지 못한다고 차별받거나 서러웠던 적은 없었는데, 내 아이는 달랐다. 남자아이에다 축구는 그들의 세계에서 이른바 서열을 결정짓는 하나의 룰인 듯하다.



우리 부부가 활발해서 주말이면 산으로, 들로, 축구장으로, 농구장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갔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집돌이 집순이인 남녀가 만나 조용한 주말을 보내기에 익숙했던 터라, 우리 아이도 자연스레 내향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가끔 어딘가 나가자고 해도 집이 좋다는 아이이니까. 나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나의 무심했던 지난날에 대한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생각 끝에 우리 부부는 아이를 축구교실에 보내기로 했다. 오늘 마침 그 일을 겪고 난 후의 첫 주말이라 급하게 주변 축구교실을 검색해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1회 체험을 하고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도착한 풋살장에는 20여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이 많은 아이들 틈에서 우리 아이가 제대로 된 체험을 할 수나 있을까. 가벼운 스트레칭부터 공을 끌고 왔다 갔다 하는 기본 동작 등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역시나, 우리 아이는 그중 가장 뒤처졌다. 본격적인 축구를 시작하기도 전인데 공을 몰고 가는 모습부터가 어정쩡했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갔지만 계속 우리 부부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아이에게 불안한 모습을 들켜선 안됐다. 내가 보일 수 있는 가장 밝은 모습을 하고 힘껏 손을 흔들어주었다.



곧 이어진 연습경기.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고 힘차게 공을 차는데 우리 아이만 저 멀리 혼자 멀뚱히 서있었다. 남편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져갔다. 어렸을 적 축구 좀 깨나 했다는 사람이다. 심란하고 속상한 마음이 내게까지 전달되었다. 하긴, 나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으니. 남자아이들에게 축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남편의 굳어진 얼굴을 보고, 또 내 아이와는 다르게 전력으로 질주하며 축구를 즐기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덩달아 조급해졌다. 무언가 이대로면 큰일 날 것만 같은 불안함을 느낀 것이다. 아이는 계속 우리 부부를 쳐다보았다. 어딘지 불안해 보이면서도 자꾸 눈치를 보는듯한 모습. 속상했다. 그리고 더 이상 보고 싶지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쳐다보았다. 아마 이 모습을 아이가 보고 있을 텐데. 짐작했지만 내 마음이 속상한 게 우선이었을까. 이기적이게도 눈길을 돌린 나는 복잡한 생각을 바닥으로 던져버리려 애쓰고 있었다.



어느덧 길었던 1회 체험이 끝나고, 도망치듯 우리에게로 달려온 아이는 의외로 괜찮았다는 얘기를 건넸다. 내가 어색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첫 만남에 안 어색한 게 이상한 게 아니냐며 오히려 의젓하게 나온다. 아빠는 심각하다. 기본부터 가르쳐 주겠다며 아이를 재촉한다. 아이는 어딘지 주눅 들어 보였다. 왜인지 금방 울 것도 같았고. 아빠 엄마에게 늘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아이인데, 오늘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애써 담담해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 또한 생각에 잠겼다.



못하는 걸 보완해 주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차라리 잘하는 걸 더 잘하게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도 남자아이들에게 있어 축구는, 내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으니, 적어도 중간은 가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아이의 의지로 데려온 것이 아니었기에 이런저런 상념이 자꾸만 일어났다. 뭐가 정답일까. 아이는 그래도 내일 또 한 번 와보겠다는 말을 했다. 네가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건넸지만, 아이는 괜찮다고 답한다.



이미 여기까지 데려온 게 누군데, 갑자기 아량을 베풀듯 선택의 자유를 주겠다고 말하는 나 자신이 우습다. 아이를 위한다고 하는 일들이 오히려 아이에게 짐이 되는 게 아닐까.. 아직도 이 작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게 온전히 아이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내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한 자기 위로의 방편이었을까.



아이는 나의 소유가 아니다. 아이는 아이 그 자체이다. 아이에게서 나를 지워내야지. 부족한 모습에 마음이 아린 건 나일뿐이다. 아이는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아이는, 본인의 모습을 애써 보지 않고 바닥으로만 향했던 내 눈에 더 큰 상처를 입었을지 모르겠다.



부족한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음을 이 밤, 글을 쓰며 비로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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