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빨리 많이 읽는 편이다. 좋았던 구절을 곱씹고 한 번 더 느끼기도 전에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래서 너무 좋았던 책일지라도 감동이 금세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책을 또 읽게 되는 경우는 잘 없었다. 결말까지 본 반전 영화처럼 손이 잘 안 가게 된다. 이런 스스로를 알기에 책을 읽을 때 좋은 구절은 사진을 찍고 노트에 옮겨 적으면서 흔적을 남겨둔다. 그렇게 언젠가 그 구절을 보게 될 미래의 나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둔다.
그러다 최근에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어 졌다. 솔직하게 말하면 오래전부터 꿈꿔온 일이다. 나에게 큰 울림을 준 책이 누군가에게도 그런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 너무 설렜다. 그렇게 얼굴을 모르는 누군가와,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책으로 서로의 세계를 넓혀가는 게 너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러려면 짧게라도 어떤 책인지, 나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는지 추천사를 써야 할 텐데 좋은 책, 인생 책이란 건 남았지만 명확한 문장으로 표현하기에는 기억이 흐릿했다.
그래서 몇몇의 책을 골라 다시 읽게 되었다. 어떤 책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으로 먼저 걷고 있는 작가의 에세이였고, 어떤 책은 다음 세대에 부끄럽지 않도록 지금의 궤도를 수정하자고 이야기하는 소설이었고, 어떤 책은 거의 100년 전에 쓰인 고전이기도 했다. 보통 종이책이나 전자책으로 빌려 읽었는데 이번엔 종이책을 사서 나에게 와 닿는 문장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그 당시에 노트에 남겼던 흔적 덕분에 더욱 선명하게 과거의 나를 그릴 수 있었다. 어떤 책의 어떤 문장에 감동받고 감탄했는지 뿐만 아니라 무슨 고민을 했는지까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감동의 크기는 달라졌지만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내가 똑같은 문장에서 감탄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미래의 내가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하다면 지금을 점검해본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듯이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내가 될 테니까." 좋은 책에는 언제 읽어도 마음속에 새기고 싶은 문장이 있나 보다. 생각해보니 과거에 만난 여러 책의 좋은 문장들, 여러 작가의 따뜻한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음이 조급해지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불안했는데 좋은 문장들이 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힘이 난다. 그리고 이 문장들이 나를 또 격려한다. 미래의 나를 위해서라도 지금의 나를 점검하면서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