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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Jul 16. 2021

8년 만에 친구에게 연락했다

안녕, 잘 지내?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모여있어 정신없는 어떤 행사장,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인사하기 바빴다. 등 뒤로 땀이 흘러내렸다. 더워서인지 긴장되어서인지 아니면 당황스럽기 때문인지 그 이유를 명확히 할 여유도 없다. 중요한 자리인 것 같다. 반가운 얼굴도 간간히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인사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고등학교 동창들이 우르르 몰려왔고 그중 O와 눈을 마주쳤다. 눈물이 났다. 찔끔 차오른 게 아니라 엉엉 울 정도로 눈물이 났다. 꿈에서 깼다. 엉엉 울었다는 건 목에 차오르는 약간의 답답함이 확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꿈에서 덜 빠져나왔는지 아직은 O의 얼굴이 선명했다. 머리맡에 있는 메모지과 볼펜을 더듬거리며 찾았다. O의 이름을 적고 그 옆에 '연락하기'를 적었다. 순간 긴장이 풀렸는데 볼펜촉이 나왔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칵-딸칵- 볼펜촉을 확인하고 다시 메모지에 O의 이름과 연락하기를 적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처음 적었을 때도 볼펜촉은 나와있었는지 같은 자리에 2번이나 겹쳐서 적혀있었다. 비몽사몽이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벌써 꿈 내용은 아득해졌다. 꿈의 내용, 그 밤의 감정이 아침에 명확히 기억날 리 없다. 그래서 '간밤에 이런 일이 있었지.'하고 넘겨버렸다. 사실 2번이나 적었던 '연락하기'의 진심을 잊지 않았지만 제정신을 차린 아침에, 해가 쨍쨍한 아침에 연락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그래서 우선 미뤄버렸다.


그러다가 점심 즈음 버스를 기다리며 멍 때리던 중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오늘 뭘 해야 했더라... 이런 생각 끝에 O의 이름이 번뜩 지나갔고 지금 연락해야겠다는 용기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내 번호는 바뀐 적 없지만 휴대폰을 몇 번이고 정리하며 주변 사람들의 번호가 날아간 적이 많아 자연스레 인스타를 들어갔다. O가 꿈에 나온 게 어쩌면 무의식의 반영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최근에 O의 계정을 발견하여 팔로우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카톡보다는 좀 더 가벼운 인스타 DM창을 켰다.


음... O야, 잘 지내? 아니 내 꿈에 네가 나와서 안부차 연락을 했어. 까지 쓰고 다시 지운다. 고쳐 쓸수록 어려워진다. 세어보니 8년 만의 연락이다. 하고 싶은 말은 잘 지내? 하나였지만 구구절절 말이 길어진다. 친구가 연락을 받고 최대한 덜 놀라도록 장판 판매, 다단계, 종교 권유, 기타 등등의 이유가 아니라 정말로 안부가 궁금해서 연락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DM을 보내고는 바로 긴장감이 몰려왔다. 답장이 오려나? 어떤 답이 오려나? 답이 오면 어떡하지? 등등의 생각이 지나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장이 안 올 수도 있겠다. 내가 너무 갑작스러웠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다음날 저녁, 거의 체념했을 때 답장이 왔다. 연락해줘서 고맙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답문. 내 연락이 안 반가우면 어떡하지 걱정하고 긴장했던 게 사르르 녹아내렸다.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자신의 지금 상황을 짧게 설명하고 나의 안부를 묻고 가까운 거리라면 보고 싶다는 다정한 답장이었다. 경기도 용인, 친구는 지금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지역에서 지낸다고 했다. 근처라면 만나서 8년의 공백을 조금이라도 메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컸다. 대신 고등학생 때도 야무졌던 O가 8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 상상해본다. 그리고 우리가 만날 날을 그려본다. 이렇게 연락하였으니 다음번에는 연락하기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타이밍이 맞다면 얼굴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많이 떨렸지만 연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은 서로의 일상을 응원하며 마무리되었다. 당장 보진 못하지만 오랜만에 연락하는 친구에게 일상을 응원받고 나니 그날 하루가 특별해졌다. 이 연락이 O의 하루에도 작은 기쁨이 되었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만나 그때 연락했었지? 하며 대화를 시작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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