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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둘째 날, 공항에서 노숙을 하다

by 다정

우여곡절을 겪으며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에 도착해서도 마음을 놓을 순 없었는데 뉴질랜드 입국심사는 악명이 높았다. 신발에 묻은 흙도 털고 들어가야 한다며 뭐라도 잘못 걸리면 벌금이 400달러였다. 이를 대비해 캐리어에 든 음식과 약을 리스트로 미리 정리해 뽑아 뒀고 당당히 입국심사원에게 보여줬다. 초록색 카드를 주길래 너무 잘 정리해서 한 번에 통과한 줄 알았다. 오빠에게 파란 카드랑 빨간 카드는 경고 같은 거야~ 하며 아는 체도 했지만 사실 약물 확인 직원한테 한 번 더 가야 하는 카드였다. 정말 다행히도 비상약이라는 것만 말하고는 빠르게 통과할 수 있었다. 그제야 크게 한시름 덜었다. 우리 여행에 더 이상 우여곡절은 없어야 된다는 생각에 작은 일에도 마음을 졸였는데 큰 산을 넘긴 기분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공항 노숙이 남아있다. 공항에서 깔끔하게 세수하고 양치도 했지만 잠들기에 마땅한 곳은 없었다. 의자에서 기대어 잠들자니 이렇게 저렇게 해도 불편했다. 밤을 새워야 하나 싶었는데 오빠가 빈 원형의자를 발견해 거기서 누워 잠들었다. 웃긴 사실은 결혼식을 하고 처음으로 몸을 뉘이는 날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 자고 일어났는데 오빠는 여전히 깨어있었다. 보아하니 거의 한숨도 못 잔 게 분명했다. 정신을 차려 공항을 살피니 새벽이라 내려간 셔터가 올라가 있어 공항 안쪽에 들어가 오빠가 잘만한 곳을 찾아봤다. 평평하고 푹신한 의자들은 많았지만 거의 아침이라 오빠는 또 잠들지 못했다. 결혼식 끝나고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나를 지켜준다고 밤까지 새운 오빠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컸다. 최대한 오빠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오빠는 쉬게 두고 공항을 이리저리 살폈다. 출국장이 있는 2층에 Mama’s Kitchen이라는 한식당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 오빠에게 보여줬다. 오빠는 한식을 보고 입맛이 도는지 밥을 먹자고 하였고 냉큼 올라가 같이 메뉴를 고민했다. 연어가 든 김밥과 초밥, 후라이드 치킨으로 그제야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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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이후 두 번의 밤이 지나고 드디어 퀸즈타운에 도착했다. 어떤 곳으로 떠나든 비행시간이 이보다 길진 않을 것이다. 힘겹게 돌아온 퀸즈타운은 착륙하자마자 우리에게 신세계를 보여줬다. 비행기에서 내리기도 전에 창 밖으로 보이는 하얗고 커다란 설산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청명한 하늘 아래 설산과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이 그동안의 어려움을 보상해 주는 것 같았다. ‘미쳤다’만 반복하며 짐을 찾고 공항 유리창 너머의 풍경에 감탄하고 공항을 나와 렌터카 업체를 찾으러 가는 길에도 내내 감탄했다.


주차장에서 우리가 빌린 렌터카를 봤는데 뽀얀 갈색의 도요타 SUV였다. 내부 컨디션도 좋아서 기분이 좋았다. 오빠는 키로수를 보더니 정말 뽑은 지 얼마 안 된 새 차라고 했다. 우리의 결정이 좋았다며 내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오빠는 인생 첫 좌측통행 운전을 앞두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빠의 처음인 순간을 기록하려고 옆자리에서 영상을 켰는데 오빠가 “아냐!”라고 해서 황급히 끄고 얌전히 있었다. 이 순간 오빠가 얼마나 정신이 없었냐 하면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 도로에 나갈 계획이었는데 무작정 주차장을 나가는 길을 탔다. 옆자리에 조용히 있으면서도 이상함을 느끼고 ‘엇?’하고 놀랐는데 오빠도 놀랐다. 아마 너무 긴장해서 무의식적으로 그랬던 거 같다. 나가고는 바로 교차로였다. 오빠는 운전 법칙을 중얼중얼 거리며 운전을 시작했고 나는 몸도 안 풀렸을 텐데 적응도 안되었을 텐데 걱정하며 오빠 옆자리를 지켰다. 시내까지 가는 풍경이 너무 이국적이고 예뻤지만 감탄을 속으로 삼키며 오빠가 무사히 도로에 적응하기를 기다렸다. 숙소 근처까지는 잘 찾아왔는데 여러 리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도로 공사에 맞물려있어 그 주변을 한참 돌아야 했다. 그래도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주차까지 하고 나니 진짜 뉴질랜드에서 운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오빠가 운전을 앞두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는 후에야 알게 된다.


곧바로 체크인도 했다. 어제 전화까지 걸어 비행기를 놓쳤다고 설명해서일까 이름만 확인하더니 가여워하며 바로 키를 주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옮기고 나서야 한시름 놓았다. 드디어 숙소, 침대, 안락한 우리의 공간이었다. 피곤하긴 했지만 여행이 늦어졌다는 생각에 바로 시내까지 걸어갔다. 여러 상점이 모여있는 시내를 구경하며 걷다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퍼그버거로 향했다. 뉴질랜드에 오는 모든 관광객이 먹는다는 명성에 맞게 줄이 길었고 퍼그버거 근처에는 퍼그빵집, 퍼그술집도 있었다. 어느 나라든 가게가 잘되면 그 근처에 또 다른 가게를 내는가 보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퍼그버거와 바닐라 콜라까지 야무지게 사서 호수 앞으로 갔다. 적당한 자리에 앉아 버거를 먹으려 했는데 우리가 버거를 들고 있는 게 보이는지, 냄새가 나는지 오리 커플 한쌍이 내내 우리 앞을 서성거렸다. 조금 위험하다고 느껴 자리를 옮겨 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파인애플이 든 버거였고 오빠는 패티가 두꺼운 버거였다. 상큼한 파인애플이 버거의 느끼함을 덜어줘 너무 맛있었다. 바닐라 콜라는 인위적인 바닐라 향이 너무 강하게 났다. 다신 먹지 말자고 다짐했다. 저녁으로는 당근과 양파, 버섯, 고기를 구워 와인과 함께 먹었다. 길었던 여행의 시작이 드디어 끝나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 기절하듯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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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이야기책 제작을 위한 질문>

Q. 비행기에서 내려 신혼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Q. 가장 이국적이라고 느꼈던 풍경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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