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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Nov 12. 2021

목이 늘어난 반팔티는 언제 버리는 게 좋을까?

반팔의 쓰임은 끝이 없다.

나는 정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잘한다. 몇 가지 예시를 들자면 휴대폰 속 사진 파일은 USB나 클라우드에 '2014년>1월 인도 해외봉사', '2016년>2학기 휴학' 이렇게 연도별로, 사건별로 정리해서 옮겨둔다. 책상 정리도 주기적으로 한다. 못해도 1년에 한 번씩은 다 엎어서 버릴 물건은 버리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정리를 한다. 깔끔하게 정리해야 속이 시원하고 무엇이든 더 잘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액세서리도 통에 길이별로, 색깔이나 느낌 별로 분류해놓았다.


물론 옷 정리도 잘한다. 계절이 바뀌면 그 계절 옷이 손에 잘 닿도록 순서를 바꿔놓고, 몇 년 주기별로 안 입는 옷들은 과감하게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목이 늘어난 반팔티, 고등학교 체육복, 고등학교 반티는 내 옷장에 이상하리만치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다. 정리를 할 때마다 고등학교 반티는 추억이기에, 체육복은 지금도 집에서 편하게 입기에 버리기 힘들다. 그런데 목이 늘어난 반팔티는 추억이 담긴 것도 아닌데 쓰임을 다하더라도 버리기가 어렵다.




반팔이 옷장에 자리 잡는 과정은 이렇다. 여름에 입게 될 반팔티를 구매한다. 목이 튼튼하고 재질이 좋은 걸로 사도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여름을 보내고 나면 목이 늘어나 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그럼 그 반팔들은 가을, 겨울 동안 자연스레 내 잠옷이 된다. 잠옷이 된 반팔들은 계속 옷장에 남게 된다. 그렇게 여름부터 돌아오는 봄까지 사계절을 함께하고 또 몇 년이나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입은 옷이 있나 하고 살펴봤는데 대학교 2학년 때 샀던 반팔이, 그러니까 2014년에 입었던 옷이 잠옷이 되어 아직까지 옷장을 지키고 있었다.


매년 잠옷이 되는 반팔이 쌓여만 가니, 옷장 한 구석에서 진작에 독립하여 잠옷만 두는 칸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최근 드디어 그 칸의 지박령이었던 고등학교 체육복이 나오게 되었다. 고무줄이 늘어나 더 이상 입을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문득 반팔티의 생존 여부도 고민하게 되었다. 도대체 목이 늘어난 반팔티는 언제 버리는 걸까? 구멍이 날 때까지 입는 건가? 반팔티를 몽땅 버리면 당장 무엇을 잠옷으로 입어야 할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결국 나는 오늘도 반팔티는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집에서만 입을 수 있는 새파란 체육복...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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