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정'이 많다. 딸내미들 이름에도 정이 들어가고(아들내미는 정과 비슷한 성) 심지어 내 이름 다정(多情)은 많을 다에 정 정자를 쓴다. 읽히는 그대로 정이 많다는 뜻이다. 다정한 나를 키워준 것도 먹는 것이다. 마음을 전할 때도 먹는 걸로 표현하고 안부를 묻을 때도, 걱정을 할 때도, 엔간해선 먹는 게 짱이다. 서로 만났을 때 밥은 먹었는지를 확인하고 안 먹었다고 하면 세상 제일 큰일이 난 것처럼 반응한다. 집에 뭐가 있는데 그걸 먹을래 아니면 배달을 시켜줄까 하는 이야기를 꺼낸다.
먹는 것에 진심인 우리 가족은 먹는 것으로 통한다. 우리 가족 중 한 사람이 타 지역으로 놀러 갔다 오면 그 지역의 유명 빵집을 들러 빵을 사 온다. 진주로 여행을 갔던 언니는 수복 빵집의 찐빵을 사 왔고 대전으로 결혼식을 갔다 온 나는 성심당을 들러 튀소와 부추빵을 사 왔다. 빵순이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전국의 유명한 빵집을 거의 다 아는 나는 언니 덕분에 수복 빵집의 단팥 소스를 뿌려먹는 찐빵을 맛볼 수 있어서 신기하고 좋았다. 소금은 끊어도 설탕은 못 끊는다는 자칭 타칭 디저트 러버 언니는 내가 짜잔 하고 들고 온 성심당 빵을 보고 신나 하며 멀리서 온 나보다 빵에 더 관심을 가졌다. 어쩔 땐 앞뒤가 바뀐 것 같지만 어쨌든 멀리서도 서로를 생각했다는 의미가 담긴 '입으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먹는 것은 우리 가족에겐 정이고 사랑이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나도 먹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주에는 작은 집에 놀러 갔다. 명목상의 이유는 작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라떼'를 보기 위함이지만 최근에 작은 집이 이사를 하기도 했고 그 집에 사촌동생이 돌아왔기에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같은 동네에 사는 가족은 이런 거지 하면서 갔다. 당연히 빈손으로 갈 수는 없었다. 아침 일찍 문 여는 빵집을 들렀다. 어떤 빵을 사 갈까, 작은 빵을 여러 개 사갈까, 롤케이크를 사 갈까 등을 고민하다가 종류별로 사기로 결심했다. 사촌동생의 취향에 맞을 듯한 블루베리 크림치즈 파운드케이크와 호불호가 안 갈리는 카스텔라 그리고 이 집의 베스트 메뉴인 마늘빵도 샀다. 근처에 있는 무인 건어물 판매 상점에 들러 술을 즐기시는 작은어머니를 위해 안주용으로 먹을 건어물까지 샀다. 다행스럽게도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받는 사람의 취향을 고민한 만큼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배로 더 기뻤다.
그렇게 앉아서 라떼도 보고 이야기를 실컷 하고 나오는데 웃긴 점은 우리도 종이가방 하나 가득 먹을 것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언니 이것도 먹어봐. 맛있더라." 하면서 챙겨주는 사촌 동생을 보면서 벌써 이렇게 어른이 되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먹는 것으로 마음을 전하는 건 우리 가족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고 느꼈다. 누구든 좋아하는 사람에게 먹는 것으로 마음을 전하는 게 한국인이라면 모두 그런가 싶었다. 이러나저러나 역시 먹는 게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