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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Mar 01. 2016

해가 지면

하늘 찌를 듯 높이선 뭉툭한 건물 너머로 해가 진다.
도시의 노을은 건물에 가려져 빛을 잃었다.
사람들은 건물 사이로 스며든 황금빛을 눈치채지 못한다.

네모난 사무실,
허옇게 빛을 뿌리는 형광등을 피해
노을의 끝자락마저 사라진 거리에 나섰다.
가로등 칙칙한 빛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는다.
해가 지고 달이 뜬 하늘조차 쳐다보지 못하고
그저 땅만 보고 습관처럼 집으로 향한다.
먹이를 물고 땅속 집으로 향해가는 검은 개미처럼...

어제는 오늘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했고,
오늘은 내일의 어제에 의미가 없는 날이 되었다.

그저 해가 뜨고 지는 날의 연속일 뿐이다.
그러나 어제의 어제와 내일의 어제가 쌓여서 내일은 의미를 갖는다.
하루하루 순간을 보면 우연이고 악연이었던 것들이,
긴 시간을 두고 되돌아보면 마디마디 필연이고 연분이었다.

해가 졌지만 진 것은 아니다.
내일 다시 뜨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태고적부터 뜨고 지고를 반복했을 뿐이다.
사람 또한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해왔다.
태어나서 죽었다고 흔적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 그대로 과정이고 의미이다.

누군가의 가슴속엔 애틋한 사랑으로 남고,
누군가의 기억 속엔 아련한 추억으로 남으며,
누군가의 마음속엔 구절초 향기 같은 가족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가 진 지금,
나는 어둠을 핑계로 하루를  내려놓을 수 있다.
오늘 하루 나는 나였는가?
아내의 남편으로,

부모님의 자식으로,
아이의 아빠로,

친구의 친구로,
회사의 직원으로 가 아닌
나로서 나였는가?
오롯이 나를 닮은 나였는가?
타인의 타인일 수 있었는가?


해가 진 이제,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는
나만의 시간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나 아닌 누군가에게
어떤 흔적으로 남을지는 나의 몫이 아니다.
스쳐가는 나를 바라보고 느꼈을
그 사람들의 몫이다.

나뭇잎은 해를 나누어 품었고,

그대로 줄기가 되고 열매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어 품었고,

나의 말은 그의 것이 되고, 그의 말은 나의 것이 되었다.
도란거린 말은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지만,
몇 조각 말은 가슴속에 남아 그를 기억하게 한다.
미처 꺼내 놓지 못하고 가슴속에 남은 말 한 마디는
가슴속 다락에 넣어두고 만다.
해가 지면 불현듯 꺼내 볼 날이 있을 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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