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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Sep 18. 2016

가을 전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
씹어먹어도 될 만큼 자디잔 가시가 많은 전어를 엄마는 얼멍덜멍 석쇠에 끼워 연탄불 아궁이에 올려두셨다. 뿌려둔 소금이 고소한 전어 기름에 녹아 어슷어슷 칼집따라 전어의 몸속을 파고들 때쯤, 입 안엔 고이다 넘친 침이 어린 목구멍을 파고들었다.
엄마가 구워주신 전어의 살에선 설탕이 뿌려지지 않아도 언제나 단맛이 났다. 단맛은 엄마의 젖 맛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단맛을 좋아한다. 어머니 무덤가에 열린 개똥참외가 살아생전 엄마 젖 맛이란 내용의 노래 타박네를 흥얼거려본다. 먹어보지 못했으니 개똥참외의 맛을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젖 맛이라 하니 전어처럼 단맛이려니 추측할 뿐….

구운 전어 반토막에 밥 한 그릇 뚝딱 비워내고도 입맛을 다시던 어린 자식들을 위해 엄마는 매번 전어의 머리만 드셨다. 엄마가 전어 머리만 드신다는 것을 의식할 때쯤 나는 스스로 다 자랐다고 생각하던 사춘기였다. 사춘기가 뭐 큰 벼슬이라도 되는 양 갖은 위세를 부리는 아들의 입에 전어가 넘어가는 걸 흐뭇하게 보셨던 엄마와 아버지. 그 모습이 보고 싶어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아버지께서는 전어를 자주 사오셔서 엄마에게 내밀었다. 손맛까지 더해 구수하게 구워주시던 엄마는 이제 우리 곁에 없다. 엄마가 가시고 없이 맞이하는 첫가을이다.

전어는 여전히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누군가의 식탁에 올라 사연을 만들고, 추억을 불러오고 있을 것이다. 우리 식탁에서 그랬던 것처럼….

열어둔 창문 너머로 가을바람이 흘러들어온다. 바람따라 들어오던 빗방울은 그물코에 걸린 전어처럼 방충망 코에 걸려 아롱다롱 맺혔다가 주르륵 기다란 사각형 막대그래프를 그려낸다.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로 걸려야 할 빗방울은 베란다 가로 틀에 은구슬로 걸렸다.

바다에서 일어나 구름 타고 바람처럼 흘러내린 가을비는 속절없이 비 맞고 선 상사화에게 바닷속 가을 전어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전한다. 가을비는 내게 왜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의 이야기는 해주지 않는 걸까?

후드득 창가에 떨어지는 빗방울 따라 나뭇잎이 떨어진다. 떨어진 나뭇잎을 보니 전어를 닮았다. 가을비에선 봄 여름 내내 몸집을 키워 온 전어의 구수한 냄새가 난다. 계절이 가을로 농익어간다. 대롱대롱 베란다에 매달린 가을도 익어간다.

가을 전어. 엄마를 대신해 때때로 아내가 전어를 구워준다. 이제는 아내가 엄마다. 엄마가 머무시던 부엌에서 전어를 구우면 엄마가 돌아오실까? 엄마가 돌아오시면 그 옛날 엄마께서 구우시고도 머리만 드셨던 전어의 몸통을 몇 마리라도 드시도록 해드릴 수 있는데…. 이가 없으신 엄마를 위해 전어의 잔가시가 아무리 많아도 다 골라내고 다디단 살만 드릴 수 있는데….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그물에 들어와 버린 전어가 바로 나다. 아내를 잃고 꺼져가는 촛불처럼 날로 쇠약해지시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눈물이 뚝 떨어진다. 가을도 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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