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또한 인간관계니까... (끄덕)
지금은 하늘이 내린 효녀인 양, 세상에서 제일 사이좋은 모녀인 양 글을 쓰지만 나의 모녀관계에도 암흑기는 있었다. 대략 대학 졸업반 때부터 몇 년의 취준생 시절을 거쳐, 취업 2년 차 정도까지. 어느 정도였냐면, 엄마가 너무 미워서 엉엉 운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엄마와 싸우고 나면 너무 서러웠던 나. 울면서 친구들과 통화하고, 당시의 남자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웃긴 건, 그때 엄마랑 뭐 때문에 그렇게 싸웠는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다. 크게 기억나는 것들은 보통 내 상황에 대한 것들 때문이었다. 내가 취준생이었을 땐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은 모습에 답답해하던 엄마의 한 마디 때문에, 취직 후에는 돈을 더 열심히 모으라거나 주말에도 자기 계발을 해 보라는 잔소리 때문에 등등.
그때의 나는 내 상황을 온전히 이해해 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짜증이 나기만 했다. 엄마와의 싸움이 너무 지긋지긋하다는 나에게 어느 날 내 친구가 한마디 했다. "다혜야. 내 생각엔 둘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의 문제야. 상황이 해결되면 둘의 관계도 해결될 거야."
신기하게도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내가 안정적인 직장에 자리를 잡고, 엄마가 걱정할 일을 덜 하게 되면서, 또 엄마도 엄마의 일을 갖고 바빠지면서 우리의 관계는 드라마틱하게 변화했다. 싸우지 않는 건 물론이며 어느샌가부터 서로를 걱정하고, 애틋해했다.
좀 더 나이가 먹은 뒤 그때를 돌아보니 나를 가장 걱정하는 사람이 엄마였기에 그런 말들을 했구나 싶었다. 엄마도 사람인데 앞가림 못하는 자식이 오죽 답답했을까. 답답한 마음에 몇 마디 하면 파르르 해서는 울고 불고 난리 치는 딸이 얼마나 미웠을까. 나야말로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받으려고 했던 철부지가 아니었는지.
그때를 지나고 나니 이젠 가끔 엄마가 하는 잔소리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옳든 틀리든 나를 위해 하는 말이겠거니, 한다. 저 시절의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여전히 괴로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을 지난 나는 조금 더 단단하고, 무던해졌다.
부모 자식 관계는 언제나 순수하기만 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환상이라 생각한다. 어느 면은 한없이 순수하지만, 결국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곳은 냉정한 현실이라는 점도 잊어선 안된다. 현실을 먼저 살아낸 사람이 하는 모진 말들은, 어쩌면 스스로도 아픔을 견뎌가며 던지는 우려의 말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