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 없는 우리끼리 뭉쳐보자고
웬만해선 누군가를 부러워 하지 않고 산다. 모든 인생의 상황과 타이밍은 각자 다른 것이라 생각하면서. 솔직히 얘기하면 내가 그런 감정에 유독 취약한 편이라 더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여도 여전히 견딜 수 없이 부러운 것이 딱 하나 있다면? 두둥- 바로 마음 맞는 자매가 있는 사람들.
나는 남동생이 있지만, 남동생과 자매는 아주 많이 다르다. 남동생도 아주 착하고 성실한 아이지만, 내가 동생과 제대로 교감한다 느꼈을 때는 20대 초반 시절,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남자들의 심리를 집요하게 물어봤을 시기 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남자 심리는 개뿔 내 앞가림이 더 중요해지면서 그런 교감조차 안 하게 됐지만. 아무튼, 다르다. 다르단 말이다!
얼마 전 엄마랑 통화 중 이런 대화를 했다.
- 엄마 : 가만히 보면 너희 아빠는 누구한테 전화도 많이 하고 어디서 전화도 많이 오고. 아무튼 사람 참 좋아해~ 엄마는 생각해보면 친구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그렇게까지 친구가 필요하지도 않은 것 같고...
- 나 : 엄마가 왜 친구가 안 필요해. 이모들이랑 맨날 붙어 다니잖아. 여행도 자주 가고 통화도 엄청 자주 하지 않아? 그리고 나랑도 통화 자주 하잖아.
- 엄마 : 그건 그렇지. 근데 이모들은 자매고 너는 딸이잖어.
- 나 : 아빠는 마음 털어놓을만큼 친한 형제가 없나부지. 그니까 친구랑 얘기하나부지. 엄마는 나랑 이모들이 있으니까 친구가 딱히 필요 없는거구.
- 엄마 : 아하, 그런가? 그런 것 같다.
- 나 : 복희씨는 복 많아서 좋겠다. 자매도 있고 딸도 있어서. 나는 둘 다 없는데...
이미 가진 사람들은 모른다. 그게 얼만큼이나 큰 복인지를! 자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혈연으로 끈끈하게 연결된, 투닥거리는 것 같아도 웬만한 잘못으론 끊어지지 않을, 명절마다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베스트프렌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베스트 프렌드와 함께 영원히 깨어지지 않는 가족이라는 그룹 안에서 같은 소속감을 갖고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지.
그래서 그런 생각도 한다. 나와 친구로서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언니나 여동생이 있는 친구들은 항상 자매가 1순위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고. 당연하다. 내게 자매가 있었어도 그렇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쨌든 난 자매가 없다고요. 그걸 알고 나서 언제부턴가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친구가 나보다 더 친한 친구(=자매)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의 쓰라림과 질투심. 하지만 30살이 넘은 어른으로서 그 감정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내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거리감이라는 이름의 안전장치를 두는 것이다. 혼자 과하게 기대했다가 실망하지 않도록.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이건 서로를 위한 일이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와 같은 첫째딸 포지션의 친구인 '버섯'과 더욱 끈끈함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자매가 있었으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라는 순수한 바람과 함께, 남동생만 있는 첫째딸이 짊어져야 하는 자잘한 무게들도 함께 공유하곤 한다. 엄마의 환갑 여행을 기획하며 머니건과 레터링 케이크를 주문하거나, 세련된 스튜디오에서 가족사진 촬영을 예약하고, 엄마와 아빠의 작은 분쟁들을 시시때때로 조율하는 일 등.
버섯과 나는 서로 의자매가 되어주기로 했다. K-장녀연합이라고 이름도 붙여보았다. K-장녀연합 강령 하나. 우리는 둘 다 할머니가 될 때까지 자매같은 친구로 지내야 한다. 둘. 우리는 행복도 불행도 공유하고 함께한다. 셋. 둘 중 한명의 남편이 바람나면 몽둥이를 챙겨서 같이 때려주러 간다. (이런일이 발생한 적도, 발생하지도 않길 바라지만 막연히 자매간 우정의 심볼 같이 느껴져서 포함하였다.)
지금까지 의자매로서 한 일은 아주 가끔 버섯네 집에 부모님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내가 맛있게 먹었던 제철과일이나 과메기를 보내드리는 정도였다. 하지만 뭐, 혹시 모르지 않는가. 언젠가는 우리가 서로 언니 노릇을 톡톡이 해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