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시간
근처만 가도 향기가 진동하는 포도.
새콤한 맛이 너무 강해서 즐겨먹는 과일은 아닌데, 또 안 먹고 두자니 금방 상해버린다. 다른 과일보다 여름과일들은 특히 금방 무르고 상하는 것 같다. 전에는 꾸역꾸역 먹거나 미련스럽게 버렸을 텐데 이제는 잼이나 마리네이드, 콩포트를 만들어 둔다. 오늘은 가지에 이어 진한 보랏빛이 매력적인 포도로 잼을 만들었다.
껍질까지 한 번에 다 삶아서 만들기 때문에 깨끗한 세척은 필수다. 베이킹파우더로 한번 싹 씻어내고, 두 번째로 식초물에 5분 정도 담가 둔다. 그래야 더 깨끗하게 세척이 된다고 하니 번거로워도 꼭 두 번씩 세척하는 것을 추천.
포도잼을 만들기 전에는 포도를 씨앗을 분리하고 갈아준 다음에 끓여야 하나 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포도알을 모두 따서 냄비에 푹 끓이면 된다. 처음에는 연기가 올라와서 냄비가 다 타는 건가 했는데, 포도에서 뭉근한 물이 나오고 알아서 껍질도 벗겨진다. 그러면 중약불에서 알맹이를 뭉개 주면서 계속 끓여준다.
씨앗까지 다 끓여서 없어지면 좋으련만, 씨앗과 굵직한 과육은 그대로 남기 때문에 한번 걸러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씨앗 빼고는 포도가 통째로 다 들어간 셈이다. 걸쭉하게 걸러진 포도즙을 설탕과 함께 끓여주기만 하면 잼이 완성된다.
잼 농도를 확인하는 방법을 검색해보니, 찬물에 떨어트리면 그 농도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잡혔는데, 직접 해보니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잼 농도가 진하지 않을 때에는 찬물에 떨어트리면 마치 잉크가 떨어지듯 물에 쉽게 섞였는데, 농도가 나오고 나서 떨어트려보니 마치 젤리처럼 가라앉는다.
이때의 희열과 뿌듯함을 모두 느껴보았으면.
만든 직후에는 살짝 묽다는 느낌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시중에서 판매하는 잼처럼 제법 단단해졌다. 먹어보니 달큰하니 맛이 좋다.
후덥지근한 주방에서 잼을 만들고 나니 맘이 개운해졌다. 자칫 물러져서 버릴 포도였지만 2주일은 끄덕 없이 먹을 수 있는 새로운 식량으로 탄생했다. 통밀빵에 슥슥 발라 먹으니 여름이 한 입에 들어오는 것 같다. 보랏빛이 가득 채운 8월의 레시피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