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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랭 Nov 11. 2017

너라는 개 고마워 : 4. 서열정리

친구인가 주인인가 부하인가.

첸을 처음 데려왔을 때, 나는 강아지를 이렇게 혼자서 본격적으로 키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어릴적 시골에 살 때에는 늘 집에 강아지가 있긴 했지만 그땐 밖에서 자유롭게 키우던 아이였고 나는 그저 예뻐해 주는 역할밖엔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아지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강아지를 데려온다는 이야기를 하자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조언을 해 주었다.


"강아지는 서열이 중요해."


강아지에 대한 조언으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였다. 강아지를 키울 때는 복종훈련을 확실히 해서 서열을 잡아둬야 예절 바른 강아지가 된다는 것이다.


복종을 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규칙들이 있었다. 산책을 할 때는 먼저 가지 않도록 줄을 짧게 잡아 주인보다 앞서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밥은 주인이 먹고 나서 주어야 한다, 잠을 잘 때에는 주인과 반드시 분리하여 자야 한다 등등.


제일 처음 시도한 것은 TV 볼 때 따로 휴식을 취하는 것과 잠을 잘 때 각자의 침대에서 자는 것이었다. 먼저 TV를 보며 쉴 때 첸을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서 쉬도록 만들었다.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을 때 방석위에 얌전히 앉으면 간식을 주고 뛰어나오려고 하면 혼을 내었다.


울타리에 갇힌 첸은 낑낑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 그 모습을 무시하자 끄어엉끄어엉 사람이 울듯 울어제꼈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졌지만 첸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지쳐서 목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그제야 간식을 하나 던져주고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밤에는 조금 심각했다. 불을 끄고 첸을 울타리에 넣어두고 침대방으로 돌아왔는데 5분이 채 되지 않아 옆집까지 들릴 정도로 울어대는 탓에 결국 풀어주곤 했는데 행여나 꺼내 주지 않고 잠이 들 경우엔 새벽이 되면 울타리를 탈출한 첸을 이불속에서 발견하곤 했다.


오빠는 완강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불쌍했다. 그냥 사랑받고 자라온 강아지라면 어떻게든 교육시켜보고자 했겠지만 주인에게 거절당한 경험이 있는 첸에게 지금 필요한 건 서열 정리나 복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곁으로 와서 애교를 피우긴 했지만 그게 우리를 주인으로 생각해서였다기 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게 더 큰 것이 아닐까.


그 이후로 나는 그냥 마음을 열어버리기로 했다. 첸에게 사랑받는고 있다는 행복함을 먼저 전해주고 싶었다. 같이 산책을 하고 같이 TV를 보고 같이 나란히 누워 잠을 잔다. 신랑이 있을 때에는 침대에 올라오지 않지만 내가 있으면 늘 침대에 올라온다. 아침엔 밥을 달라고 나를 밟고 다니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첸과 동급이거나 더 밑일지도 모르지만 내 무릎에만 올라오면 잠이 들어버리는 첸을 볼 때면 그래, 그러면 좀 어때.라는 생각을 한다.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무거우니 좀 밟고 다니는 건 자제해줬으면...



* 네이버 도전만화

<너라는 개 고마워> 웹툰버전도 재미있게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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