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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랭 Dec 03. 2017

너라는 개 고마워 : 9. 첫겨울

너 같은 강아지는 처음이야.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는 도시에서 엄마의 고향인 시골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그 집에서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이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집에는 늘 강아지가 있었다. 버스에 치여 안타깝게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도 있고 갑작스럽게 홀연히 사라져 버린 강아지도 있었다. 많은 강아지 친구들을 만나고 또 헤어졌다. 이맘때쯤 꽉 여민 옷사이로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고 숨 쉴 때면 하얀 입김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겨울이 되면 그때 그 강아지들과 함께했던 겨울이 떠오르곤 한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중학교 때 '만두'라는 하얀색 작은 강아지를 길렀는데 겨울에 눈이 많이 왔던 날이 있었다. 눈이 소복이 쌓일 만큼 많이 와서 오랜만에 신이 났다. 아빠와 함께 옷을 두껍게 껴입고 마당으로 나갔더니 만두가 하얀 토끼처럼 눈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만두는 눈 밭 사이를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앞발로 눈을 헤집기도 하고 코로 흩뿌리기도 했는데 나보다도 더 신이 나 보여서 한참을 웃었다.


이번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그 사이에 우리는 첸과 함께 사진도 찍었고 '오스트리아'를 신혼여행지로 선택하고 핀에어와 숙소를 예약했고, 한복도 대여하고 메이크업도 받고 드레스도 골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보니 조금씩 가족이 된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 의미는 첸과 함께 살게 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설레는 시간들이 아닐 수 없었다.



결혼하기 전에 식이가 종종 일 때문에 집을 비울 때면 신혼집에 가서 첸을 봐주곤 했다. 며칠뿐이긴 하지만 잘 돌봐주고 싶어서 출근하기 전 캄캄한 새벽마다 첸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새벽 공기는 더더욱 차가웠다. 숨을 쉴 때면 하얗게 입김이 피어올랐는데 첸의 코에서도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첸은 자꾸만 바들바들 떨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추위를 많이 타는 강아지도 있다는 것을. 나에겐 만두 같은 강아지의 기억이 있어 강아지는

털때문에 따뜻할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씰룩대며 걷는 첸의 엉덩이를 보니 목욕을 막 마치고 나온 벌거벗은 아기가 같았다. 털이 있으나, 털이 없는 것 같은 첸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니, 원래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라는 강아지는 털이 짧고 추위에 약한 종이라고 했다. 그래서 실내에서 키우기 적합한 종이라고. 첸에게 어서 옷을 사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옷이 없었던 첸은, 창문을 열어놓아 조금만 실내온도가 떨어져도 바들바들 떨었고 전기장판 위에서 몸을 지지는 것을 좋아했다. 너무 건조하고 더워 헥헥거리면서도 다시 또 전기장판을 찾았다.


첸과 맞이한 첫 번째 겨울, 새로는 해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알아가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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