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겨울, 매일의 기록
현행의 프로젝트이자 미진한 사진생활의 일부인 'A Whole Photography of Mine(내 사진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진행함에 있어서 어느새 2015년(分)까지 다다랐다. 인생의 쉼표와 쉼터와 같았던 2014년을 통해서 '사진의 무게'를 이해했다면, 이어지는 겨울에는 신촌의 모처(금호 XXX)에서 생산적 비생산을 도모하며 월동(越冬)을 준비했다.
나의 동거인(Jon)은 매일의 아침을 온전히 잠으로 채우는 당신의 라이프 사이클이 괜스레 미안했던 까닭인지 아니면 정말 아우의 인생 PD(혹은 지도교수_박사 수료)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낸 과제인지 알 길이 없으나, 어느 날 내게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집요하게 기록하는 것에 대한 옅은 스케치를 전했다.
특별하거나 근사한 주제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었다. 아마 기억에 형도 그 당시에 사진이 아닌, 글쓰기 훈련을 비슷한 방식으로 수련하고 있던 차였다. 하버드 글쓰기 훈련 뭐시기- 였던가. 여튼.
늦잠이 기호인 게으른 몸을 일으켜, 꼭 매일 아침 열 시에 집 문 밖으로 나간 후, 약 한 시간 가량을 대중없이 헤매고 또 사진에 담아내는 '10 A.M. Hongdae'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을 했다. 매일 아침의 열 시.
계절과 빛 환경이 사진의 구성을 유익하게 하는 시간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걸음을 나서는 첫날부터도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 의문스러웠다. 작은 메모용 수첩과 펜을 같이 들고나갔는데, 작업의 수고가 무의미한 결과물로 수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매 컷의 촬영 정보(조리개, 셔터, ISO, 컷 상세)를 수기(手記)로 기록했다. 현상한 사진을 대조하여 뇌출계(본인의 뇌와 경험을 활용한 노출계_권장 X)를 업데이트할 기회로 삼기로 한다. 물론 돈이 많이 드는 업데이트였다.
유달리 추운 겨울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생수 한 컵과 바나나 한 개를 챙겨 먹은 뒤, 잠옷 차림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검은색 대장급(800 fill) 패딩 하나만을 두르고 다녔기 때문에 겨울의 한기는 몸의 빈틈을 자꾸만 파고들었다. 그런 연유로 무의식적으로도 걸음은 대체로 빛을 좇았다. 빛을 내는 해(Sun)를 올려다보고 인식하기를 넘어서, 빛이 공간에 안착하고 드리워지는 입체감에 대해 사유(思惟)가 깊어진 시기가 이때이기도 하다.
오전 10시, 겨울, 홍대의 골목은 어느 것 하나 크게 부산한 것이 없었다. 검정의 외투에 비스듬히 메어진 중량감(重量感)의 카메라 역시 차분히 자신의 때를 기다렸다. 대체로 니콘의 F3를 사용했는데 독특한 측광방식(중앙중점식)을 지녔기 때문에 사소한 사물에도 시선을 머무르고 집중하기에 좋았다. 아마 오랜 기간을 두고 작업 중인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Nothing But Nothing)'의 발전 또한 이 시기에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을 평생의 업(業)으로 생각하는 자아정체성과는 별개로 먹고, 자고, 입는 일련의 의식주(衣食住) 활동을 위해서는 나 역시 직업(職業)이라는 것을 가지고 산다. 이에 있어서 대체로 9-6시의 사무직(Office Worker)을 수행했기 때문에, 늘 거리에서 현재의 좌표가 곧 직업의 현장이 되는 순간에 관심이 많았다. 타인의 삶의 현장에서 인간으로서의 미묘한 동질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애정을 그들에 대한 겸손한 기록으로 대체하는 작업의 일환인 'Worklife' 시리즈도 2015년의 겨울에 유난히 많이 발견되었다.
2개월, 3개월에 이르는 '열 시 홍대' 작업은 장소와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지속하고자 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하나의 계절만을 남기고 마무리되었다. 생산적인 비생산을 위해 형제는 곧 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큰 이벤트는 없었지만 나는 무척이나 자주 그 해의 겨울이 기억난다. 단 하루를 거르지 않았고, 누가 정해주는 이도 알아주는 이도 딱히 없었음에도 쉽사리 멈추지 않은 일이 스스로 대견스럽다. 집으로 돌아온 오후에는 꽤나 자주 형과 커피를 사이에 두고 만담(漫談)을 나눴다. 저녁에는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파티며, 홍대의 지리적 이점(利點)을 만끽하며 보냈다.
시간을 최상의 가치로 둔다. 대체재(代替財)가 없기 때문에 귀하기로는 시간만 한 것이 없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최대한 즐기며 사는 것. 그것이 참된 진리 중 하나라고,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는 '열 시 홍대'의 작업 과정을 돌아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당장의 결과물은 차치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한 인간의 일생(一生)을 두고 치를 업이라면, 평가에 연연하기보다는 그저 언젠가 두고 다시 보더라도 부끄럼과 후회가 없었으면 한다.
#열시홍대
#내사진의모든것
#배우고때때로익히면또한즐겁지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