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도피도 결국엔 현실

#071

by J임스

#071


자는 동안 내내 선풍기 바람을 배에 맞아서일까 속이 더부룩하다.

할머니는 어릴 때 가만히 선풍기를 맞고 자는 내게로 와서 당신 손으로 배를 비벼주곤 했다.


관석이가 아침에 굳이 나오겠다는 걸 한사코 말렸다.

한국에서 보는 편이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다만, 버스를 보니 다시 관석이가 생각이 났다.

이곳에서 탈 수 있는 가장 최고급의 버스 티켓을 끊어준 것이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심지어 인터넷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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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의 일정은 비록 짧았지만, 충전된 몸과 마음을 가지고 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씨엠립에 도착해서는 다시 뚝뚝을 잡아 타고 숙소를 찾아 나섰다.

마켓들이 즐비한 거리에 내려서 이리저리 알아본 끝에 7불짜리 방을 구했다.


여전히 천장에 팬(Fan) 하나 달랑 달린 방이었지만, 실내가 넓고 무엇보다 창문이 있어서 좋았다.


로비로 내려오니 나를 데려다준 뚝뚝 기사가 아직도 남아있다.

나를 보더니 주머니에서 앙코르와트 지도를 꺼내어 데이투어(Day Tour)에 대해서 설명한다.

아무래도 이곳 뚝뚝 기사들의 주 수입원이 아닐까 한다.


아직 아무런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일단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나의 조심스러운 거절과는 상관없이 그는 토라진 얼굴로 숙소 밖을 나갔다.


어느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서 천천히 앙코르와트를 둘러보고 싶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생각을 좀 더 해봐야지.


일단 오늘은 시간이 벌써 늦은 관계로 앙코르와트에 가기엔 무리라고 판단이 되어

숙소 로비에 있는 여행자들로부터 정보를 조금 수집해 보았다.


저녁엔 야시장(Night Market)을 구경했다.

마켓이 곳곳에 너무 많을뿐더러, 나는 쇼핑중독에 가까운 지병도 있는 관계로 꽤나 피곤한 일이었다.


마켓 구석에 귀걸이와 목걸이를 팔고 있는 한 상인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차림새와 생김새가 현지인은 아닌 것 같았다.


유키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인 여성이었는데,

캄보디아에서 머무르는 동안 본인의 수공예품을 직접 마켓에서 판매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모양과 가격 모두가 아무래도 조금 부담스러워 귀걸이 대신에 맥주를 한잔 사기로 했다.

곧 끝난다고 하길래 곁에서 잠시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에 지나가는 여행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판매를 권하는 나를 보더니, 그녀가 맥주는 자기가 사야겠다라며 웃는다.


결국은 그녀에게 맥주를 얻어 마시는 대신에, 나는 지금까지의 여행기를 전했다.

그녀는 지루할 법도 한 이야기들을 내내 지친 내색도 없이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녀가 본 캄보디아와 이곳의 이야기들, 그리고 사람들.


캄보디아로 넘어온 후로, 점점 더 눈에 보이는 모든 현실들이 불편해졌다.


그건 내가 순수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되려 내가 속물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현실을 피해서 왔는지도 모르는데도

여행을 계속할수록 점점 더 적나라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 길에선 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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