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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FOLK - volume6> 그리운 아빠

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

by 작은 책방

정확한 기억이 아닐 수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제일 은행에 다니시던 아빠가 IMF로 명퇴를 하시고, 평일 저녁 식사 시간을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살인적인 야근으로 아빠가 퇴근하는 모습조차 잘 보지 못하던 시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1, 중3 두 딸의 가장이 하루아침에 멀쩡히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하고 벌이도 없이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으니 얼마나 마음이 힘드셨을까, 싶지만 그 당시에는 네 가족이 저녁을 같이 먹고 시간을 보낸다는 게 참 좋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아빠는 늘 밥상에서 아재 개그를 그렇게나 많이 하셨다. 사춘기 두 딸은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열 번 중 한 번이라도 얻어걸려 우리가 피식 웃기라도 하면 그걸 또 그렇게 재밌어하셨다.


고등학생 딸들에게 학교 공부며, 성적이며, 어느 대학에 가고 싶냐는 질문을 할 법도 한데, 단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하시지도 않고 주야장천 자신의 개그를 펼치셨다. 아빠는 마치 웃기는 것이 인생 최대 목표인 사람 같았다.


생각해보면 웃을 일 없을 법한 상황에서 늘 웃으며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 웃음이 비록 실소였다 하더라도.


요즘 즐거울만한 일이 별로 없다. 물론 한국 사회를 덮은 큰 슬픔도 있겠지만, 경기는 점점 안 좋아지고 회사도 어려워지는데 개인적으로 영어 등급이 만료되 때아닌 시험공부까지 해야 하는 판국이다. 신나는 일이 없는 건 괜찮지만 자꾸만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럴 땐 그냥, 맛있는 음식 먹으며 되도 않는 농담도 섞으면서, 네 얘기 내 얘기 정신없이 쏟아내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나를 그리고 너를 언제든 포용한다는 큰 믿음을 품고 말이다.


이모 집의 식탁이나 다른 집 식탁에 둘러앉았을 때는 배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내 육체를 살 찌운 진짜 원천은 바로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내가 듣기 좋아하는 이야기는 반드시 대단한 결론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이야기나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아니어도, 누군가의 인생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전달될 때 느껴지는 그 안락함이 좋다.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줄거리가 아니다. 바로 상대의 이야기가 말할 가치가 있고, 또 들을 가치가 있다는 서로 간의 동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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