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마인드 업로딩
SF멜로 연재소설 《다시, 만나러 갑니다.》
수현은 한 손에 로또 당첨금을 확인하는 종이를 들고 있었다. "1등, 80억." 그 단어들이 기계적으로 떠올랐지만, 그 순간은 무의미했다. 수현의 머릿속은 비어 있었다. 로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재민이 없다면?
그날 아침만 해도 평범했다. 로또 당첨금을 수현과 함께 수령하러 갈 준비를 하던 재민. 커피를 내리고, 그녀에게 미소를 지었다. 《 이제, 우리 진짜로 <여행> 가야겠네.》 그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은 항상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진지함이 숨어 있었다. 재민의 웃음을 보며, 수현은 혼자 남겨질 재민이 가여웠다.
둘이 길을 걷는다. 하늘은 짙게 가라앉아 있다. 재민의 발걸음은 무겁다. 그가 걸어가던 도로 위엔 어두운 그림자들이 내려앉고 있었다. 갑작스레 불어오는 바람. 수현의 손에 들려 있던 로또가 바닥에 떨어졌다. 소리 없이 추락한 로또는 도로 한복판으로 날려갔다. 수현은 망설였다. 그 짧은 망설임 동안, 재민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내가 주울게.”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수현을 위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재민은 바람에 날려 떨어진 로또를 주우러 도로로 나섰다. 그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하늘은 잿빛 구름으로 덮여 있었고, 바람은 차갑게 불어왔다. 마치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순간이었다. 그 찰나의 평온은 곧 산산조각 났다.
재민이 로또를 주워 들고 일어서는 순간, 왼쪽에서 차 한 대가 엄청난 속도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소리는 귀를 찢는 듯한 타이어의 비명과 함께 재민을 덮쳤다. 수현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녀의 눈앞에서 일어난 비극. 너무나도 강력했다, 자신이 말기암 환자인 것도 잊게 할 만큼. 그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렸다.
< 차와 충돌하는 둔탁한 소리, 재민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다시 바닥에 내리 꽂히는 장면.> 그의 몸이 찰나의 순간, 고요한 정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현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손에 있던 핸드백은 어느새 땅으로 떨어졌다. 모든 세상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 수현의 주변이 마치 일지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춰 보였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잿빛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순간. 수현의 마음속에는 오직 차가운 절망만이 남았다. 재민의 따스한 눈빛도, 다정한 위로도, 수현을 웃게 해 주었던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당연했던 모든 것은 이제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알 수 없다. 삶의 끝은. 그 누구도. 닥치기 전까지는.
예고 없이 찾아온 교통사고. 긴급한 상황 속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병원에 도착한 순간, 재민은 이미 의식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손을 잡았을 때의 그 차가운 감촉이 그녀의 손바닥에 남아있다. 그의 온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재민이 죽는 순간까지도 손에 꽉 쥐고 있던 1등 당첨 로또 한 장. 《 당신은 정말 이기적이야. 죽는 순간까지도 나를 위해서, 그렇게 가버리면 내 마음은 어떡해.》 수현은 모든 게 자신의 탓만 같았다.
수현은 그날 밤, 병실 창가에 앉아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왜 재민이 죽어야 했을까? 왜 하필 오늘?" 로또 당첨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초현실적이었다. 당첨금이 주어지는 순간에,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되다니. 신의 장난이라기엔 너무나도 가혹했다. 그녀는 그 큰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어떻게든 사용해야만 했다.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기억 업로딩 프로그램>이었다. 사망 직전의 기억을 데이터로 보존할 수 있는 기술. 재민의 기억을 '불멸'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그녀는 이미 그 기술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사용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그 기술이 생긴 이래, 많은 사람들이 사망 직전의 기억을 업로드했다. 하지만 영구적인 불멸의 존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그 비용은 바로 80억이었다.
"당첨금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면" 수현은 생각했다. 마음 한편에서 불안한 떨림이 느껴졌다. 기억을 보존한다고 해서, 재민이 정말로 그 재민일까? 이 상념이 그녀를 괴롭혔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만약 이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재민의 기억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며칠 후, 수현은 병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재민의 기억을 업로드했다. 재민의 기억과 의식이 데이터로 변환되어 서버에 저장되는 과정은 무척 차가웠다. 마치 기계가 그를 삼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계 속으로 그의 기억과 감정이 녹아들었지만, 그곳에는 온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수현은 그를 영원히 보존할 방법을 찾아 나섰다. 로또 당첨금은 재민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지만, 그 결정은 가혹했다. 그 돈이 무한한 생명을 보장할지라도, 그것이 그가 다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게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수현은 마지막으로 모니터 속의 그를 바라보며 결심했다. "네 기억을, 네 영혼을... 영원히 남기고 싶어." 그렇게 그녀는 다시 한번 그를 데려오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앞으로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3개월. 그 기간 안에 남편 재민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