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현수는 창가에 서있다.
어스름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다. 고요한 아침 공기.
깊은 생각에 잠긴다. 마음은 불안과 고독으로 엉망이다. 오늘은 그의 일과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날이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도전. 나의 고통을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한다. 침묵은 더 이상 옵션이 아니다.'
현수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중요한 미팅을 시작한다. 새로운 프로젝트 변경 제안이 김 대표의 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김 대표의 목소리는 냉정하고, 그의 말은 날카롭다.
"현수 씨, 이런 변경은 우리 업체의 운영 방식과 맞지 않습니다. 지금껏 이런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당신의 제안은 우리의 작업 흐름을 방해해요. 이는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현수는 답답함과 함께 심리적 압박을 느낀다. 머릿속의 모든 신경조직이 산산이 끊어지는 느낌. 갈등은 격화된다. 현수는 김 대표의 압박을 견디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정신과에서 받은 필요시 약을 입에 세 봉이나 털어 넣는다. 물을 벌컥 들이마신다. 정신이 이내 겨우 차분해진다.
현수의 팀장은 이 상황에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수에게 모든 책임을 떠맡긴다.
미팅 후, 김 대표는 현수를 개인적으로 만나 더욱 심각한 위협을 가한다. 그 공간은 CCTV도 없는 사각지대. 김 대표는 현수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시도한다. 귀에 대고 위협적인 말을 남긴다.
"네가 얼굴 좀 반반하게 예쁘게 생기긴 했지. 그거 믿고 까부는 건지 모르겠는데. 내 말대로 일처리 안 하면, 이사회에 말해서 너 해임시키라고 하는 수가 있어. 조심해."
이 사건은 현수에게 깊은 충격과 수치심을 안긴다. 그는 이를 회사에 알릴 용기를 내지 못하고 혼자서만 끙끙 앓아눕는다. 결국 풀배터리 종합심리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중증우울증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진단서를 제출하고 며칠 쉬기로 한다. 그러나 진단서는 사장에 의해 반려되고, 현수는 무단결근으로 처리된다.
사장의 반려 사유는 이랬다.
"진단서는 직접 와서 제출해야 함. 이런 중요한 문서를 우편이나 전자 메일로 처리할 수 없다."
심리적 충격으로 사람들 얼굴 보는 것조차 두려운 현수로서는 우편으로 발송하는 것도 사실 큰 용기였다. 그런데 트라우마가 발생한 그 공간이 있는 그 건물로 직접 와서 제출을 하라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였던 것이다.
한편, 사장은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끝내 진단서를 직접 제출하지 않은 것을 빌미로 인사위원회에 중징계를 요구한다. 현수에게 공문 하나가 날아온다. 조만간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라는 통지였다.
사람이 아픈 것도 슬픈데, 거기에 위로는 못해줄망정 사장은 오히려 그를 절벽의 끝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현수는 법적 조언을 구하기 위해 변호사를 만나 상황을 설명한다. 변호사는 법적 대응을 제안한다.
"현수님, 이건 명백한 성추행입니다. 그 충격으로 출근을 못한 것을 무단결근 처리하는 것은 과도한 재량권 남용입니다.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우선, 현수님의 진술을 바탕으로 공식 불만불만을 징계위원회에 접수하고, 징계위원회 변론 준비를 최대한 신경 써서 진행해 봅시다."
현수는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그동안 정신과 병원을 다녔던 진료 기록, 상담기록 등 증거자료를 모으기 시작한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첫걸음을 내딛는다. 동시에, 심리적 회복을 위해 전문가인 지은을 만나기로 한다.
현수는 지은과의 첫 상담을 위해 조용한 상담실에 앉아 있다. 심리상담실은 따뜻한 조명으로 가득 차 있다. 부드러운 색상의 벽과 편안한 의자가 긴장을 완화시킨다. 지은은 현수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차분한 목소리를 사용한다.
"현수 씨, 오늘 여기 오시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거예요. 여기는 현수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곳입니다. 처음으로 어떤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으신가요?"
"사실... 말하기도 힘든 일이에요. 제가 최근에 겪은 일이 저를 굉장히 힘들게 하고 있어요. 저는... 제가 당한 성추행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지은은 공감하는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보며 그의 말에 집중한다. 그녀는 현수가 이야기하는 동안 메모를 하며 가끔씩 중요한 순간에 적절한 질문을 던져 그의 생각을 더 깊이 이끌어낸다.
"그 사건이 현수 씨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그 순간, 제가 느낀 건... '완전한 무력감'이었어요. 마치 제 모든 통제권이 빼앗긴 것 같았죠. 그리고 그 후로는 끊임없이 불안하고, 자꾸만 그 순간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저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두려움이 저를 짓눌러요. 주변에선 왜 경찰을 부르지 않았냐고 오히려 저를 뭐라 하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이. 두 발이 시멘트 바닥에 굳어버린 느낌이라."
"현수 씨가 겪은 그 무력감과 불안, 죄책감은 매우 강력한 트라우마 반응입니다. 이 감정들은 트라우마 사건 후 매우 일반적인 것들이죠. 지금 현수 씨가 겪고 있는 이 반응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 봅시다. 그다음은 이 감정들을 조금씩 다루어 나가면서, 현수 씨가 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볼게요."
지은은 현수에게 감정을 다루는 구체적인 기법, 예를 들어 깊은 호흡과 마음 챙김 명상을 소개한다. 그녀는 현수가 자신의 감정을 차분하게 관찰하고 그것들에 이름을 붙이는 연습을 시작하도록 격려한다.
"우리는 호흡을 사용하여 현재 순간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과거의 트라우마 사건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현재에 더 집중할 수 있어요. 이 방법을 통해 현수 씨가 경험하는 감정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을 겁니다."
현수는 지은의 안내에 따라 눈을 감고 깊게 호흡을 시작한다. 지은은 그의 호흡을 조절하는 동안 부드럽게 말을 이어간다.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느리게 내쉬어 보세요. 각 호흡에 집중하면서, 현재 이 순간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해 보세요. 이 과정을 통해 마음이 조금 더 평온해질 수 있습니다."
현수는 처음에는 긴장되고 어색함을 느끼지만, 점차로 호흡에 집중하면서 신체의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고, 마음도 조금씩 안정을 찾는다. 몇 분 후, 그는 눈을 뜨고 지은을 바라본다. 그의 눈빛에는 약간의 안도감이 서려 있다.
"정말 이상하네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마음이 좀 더 평온해진 것 같아요."
"매우 잘하셨어요, 현수 씨. 이런 식으로 마음 챙김을 꾸준히 연습하면, 점차적으로 감정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앞으로도 이런 기법을 일상에서 활용해 보세요. 그리고 매주 이 시간에 만나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면 좋겠어요."
심리상담은 현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점점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자신감을 회복해 간다. 상담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더 깊이 소통하며,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용기도 점점 키워 나간다.
상담 후, 현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새로 배운 기법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걷는다. 걸음은 이제 좀 더 가볍고, 얼굴에는 조금씩 회복의 미소가 돌아온다. 자신이 경험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 시작한다.
'이 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감정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