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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가 죽음에 이를 무렵.

체념하면 끝이다.

by 연금술사

언젠가 길을 가는데

비둘기 한 마리가 도보 한 가운데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움직이질 않았다.

깜짝 놀라 비둘기를 피해 지나가면서

문득 고개를 돌려 비둘기를 바라보는데,

어디선가 봤던 눈빛에 나도 모르게 흠칫하였다.


어디서였을까?

분명 어디에선가 봤던 눈빛인데?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문득 비둘기의 입을 보았다.


아!... 비둘기의 부리가 깨져있었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바로 옆을 누가 지나가는 데도

그렇게 서 있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이.



날개 하나쯤, 다리 하나쯤 어떻게 되어도...

비둘기는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칠 것이다.


그렇지만. 부리가 깨진 경우에는?


먹이를 먹을 수 없으니,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비둘기는 그렇게 삶을 체념한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정년퇴직 후, 말기암을 발견하시고 투병에 들어가셨다.


병원에서 치료받는 동안, 아버지는 희망을 놓지 않으셨다.


퇴원하시면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시리란 말씀도 하셨고,

그리고 앞으로 몇년은 더 살지 않겠냐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때 아버지와 주고 받았던 대화 하나하나가 모두 기억난다.


그러다가.

암덩어리가 온 몸에 퍼져 투병이 막바지일 무렵,


아마도 돌아가시기 한달 전쯤.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통증에 힘들어하실 무렵.


내가 잠을 자고 방에서 나오면

아버지는 늘 거실 쇼파에 앉아계셨다.

통증 때문에 새벽 내내 잠을 주무시지 못하고.

그 때 아버지의 그 눈빛....


그때 아버지도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던 것이다.


그 눈빛을 비둘기에게서 다시 보고.

나는 한참 그렇게 말 없이 서있었다.


어쩌면 인생은 체념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 그리고 체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살아가는 원동력인 희망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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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Ruby La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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