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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Feb 23. 2024

하루 치의 그림자

"어느 별에서의 하루"(창비 시집 1996)

지상에서 가장 작은 불을 켤 수밖에 없는 이를 위하여,

눈물 하나가 끌고 가는 눈물을 위하여,

하루 치의 그림자밖에 없는 이를 위하여,


<중략>


그대여, 길이 될 수밖에 없다.


-강은교, '새벽바람'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되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가난한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겠다. 많은 이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고자, 함께 살고자 한다.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어렵다. 가난함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특히나 용납되지 않는 것 같다. 자본의 힘이 날카롭게 우리 삶을 파고들어,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마저도 칼질해 놓는다. 우리가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돈이 우선되는 가치 전도 현상 때문이다.

 나도 당장에 아파트를 사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 매달 갚아가는 돈만 해도 100만 원이 넘는다. 우리 사회에서 집 하나 얻어 살려면 100만 원의 무게를 감당하라고 압박하는 것 같다. 집 없이 자유롭게 살 수는 없을까. 이 돈을 모아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면 더욱 많은 사람과 경험을 내 삶에 축적할 수 있을 텐데, 현실에서는 해야 하는 일들이 과제처럼 쌓여있다. 결혼, 출생, 부양.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이리도 무거운 일이라는 게 서글퍼진다.

 마음이 가난한 자로 산다는 건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실천의 문제인 것 같다. 가난하려면 베풀어야 하는 것인데, 내 마음속의 이기를 이겨내는 일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늘 합리와 다투며, 합리의 손을 들어준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비합리일지 모르는데 말이다. 살다 보면 합리가 비합리로, 비합리가 합리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번주는 부디 합리로서의 비합리를 실천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하루 치의 그림자밖에 없는 이를 위하여 사는 하루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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