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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Feb 22. 2024

잠시 숨어있기

<한 사람의 닫힌 문> (박소란 시집. 창비 (2019))

전기장판에 누워 겨울을 난다

어떤 슬픔에도 끄덕하지 않는다


-박소란, <전기장판> 중

 

 눈이 내렸다. 내가 사는 집은 천장이 높아 춥다. 기온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건 발가락이다. 이불 밖으로 발을 뻗으면, 그 짧은 시간에 빼앗긴 온기라도 기어이 보상받고자 이불 안으로 파고들게 된다. 최근에는 퍽 따스한 날씨 더니, 오늘 아침엔 발바닥이 좀 시렸다.

 문을 열어보니 눈천지다. 지난밤에 비가 오더니만, 어느새 눈으로 바뀌어 소복하다. 그러고 보면 눈은 빼기를 숨기고 있다. 비에서 몇 개를 빼면 눈이 되는가 하는 상념에 잡힌다. 요즘은 이상기후라고 하니, 빼기를 제법 많이 숨겨야 눈이 될 수 있겠다 싶다.

 나는 허회경의 노래를 좋아한다. 가사가 시적이다. 함축적이지만 이해가 제법 또렷하게 된다. 허회경 노래 '난 아무것도 상관없어'를 듣다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엄마는 모든 것은 있다가도 없댔는데' 눈을 보면서 느낀다. 눈은 어쩌면 늘 우리 곁에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온도가 맞지 않아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다들 서로의 온도가 달라서, 잠시 숨어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기장판에 묻쳐서. 비로소 우리는 어떤 슬픔에도 끄떡없다. 사라진 것들이라 믿은 것들이, 사실은 숨어서 찾아주길 기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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