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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Jan 30. 2023

밤이 무서워요


나는 꿈도 잘 꾸지 않고 푹 잘 잔다.

예민한 편도 아니고 잘 뒤척이지도 않는다. 

잠들 때의 자세 그대로 꼼짝 않고 그대로 자다가 눌리는 쪽에 쥐가 나거나 아파서 깰 정도이다.


다만 잠들기 전이 늘 문제였다.

나는 겁이 너무 많았다.

불이 꺼지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결혼 전까지 한 침대에서 같이 자는 내 동생을 어지간히 괴롭혔다. 내 옆에서 붙어 자게 하고 나보다 먼저 잠이라도 들까 봐 내 팔을 간질이게 했다.

동생이 등을 돌려 자면 내 등을 맞대었고, 팔짱을 끼던가 내 다리 위에 동생 다리를 올리게 한다던가 아무튼 신체부위 어디가 닿아도 닿아야 했다.

동생이 먼저 잠이라도 드는 날이면 동생옆에 꼭 붙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렸다.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일부러 동생을 콕콕 건드려 깊은 잠에서 살짝 빠져나오게 했다.

지금 생각하니 좀 짜증 나는 스타일이다. 그래도 언니가 겁이 많다고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준 내 동생이 보살이로구나.


신혼 때는 남편이 밤 12시 전에 꼬박꼬박 집에 들어왔다.

밤 9시면 졸리기 시작하는 내가 눈뜨고 최대한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남편은 친구들 사이에서 '신데렐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일찍 일어나는 남편은 주말이 되면 새벽부터 거실에서 영화를 보곤 했는데, 혼자 자고 있던 나는 잠결에 옆에 사람이 없는 걸 느낀건지 정신도 차리기 전에 밖으로 튀어나가 남편을 찾을 정도였다. 그리고는 거실에서 팔을 베고 누워 다시 자고 일어났다.


어두운 밤에 대한 나의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진 건 아이를 낳으면서부터다.

남편이 늦게 들어와도 괜찮았다.

겨우 젖먹이 아기와 함께 있을 뿐인데도 이상하게 무섭지 않았다. 아기가 먼저 잠들어도 괜찮았고 내 옆에 붙어 자지 않아도 무섭지 않았다.

젖을 먹이고 아기가 잠들고 나면 아이의 가녀린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함께 꿀잠을 잤다.

밤중 수유로 세상이 모두 잠든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너랑 나 둘만 깨어 있어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 작은 존재가 이렇게 큰 힘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엄마가 되었기 때문일까.

모성애가 흘러넘쳐서일까.

그저 밤낮으로 잠을 푹 못 자서 무서움을 잊은 걸까.

어쨌든 그때부터 지금까지 예전만큼 밤이 무섭지는 않다.

자다가도 혼자 화장실도 갈 수 있고 물 마시러 주방에 나갈 수도 있고 혼자 깨어있어도 조금은 괜찮다.

혼자 있는 건 여전히 무섭지만.






뒹굴뒹굴 아이들이 넓은 방바닥을 굴러다니면서 잔다.

잠버릇은 엄마를 닮지 않았는데 어둠에 대한 공포는 닮았나 보다. 


엄마, 나보다 먼저 자지 마.
어두우면 무서워.


내 팔짱을 끼고 이불을 턱까지 끌어당기면서 말한다.


걱정하지 마. 엄마 아직 잠 안 와.
그리고 더우면 이불 안 덮어도 돼. 엄마가 사과 다리 위에 엄마 다리 올리고 잘게.
잘 자.


일찍부터 졸리는 날엔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피곤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를 닮아 이런 것을.

자다가 새벽에 깨지만 말고 이대로 푹 잘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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