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죄책감에 오히려 더 웃을 수 없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너무 힘든 중에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순수한 웃음이 낯설고도 죄스러워 흠칫 놀랐던 순간이 있었다. 다시는 웃을 수 없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사무치는 그리움에 엉엉 울다가, 이 세상에 우리 엄마가 더 이상 없는데도 아무 일도 없는 듯 그대로 흘러가는 세상이 원망스럽다가, 또 아무렇지 않게, 그렇지만 어떠한 감정도 없이 일상생활을 하다가.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인지도 헷갈렸다.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또 현실을 깨닫고..
이 모든 게 한동안 계속 반복됐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난한 사람이었던 내가 짧은 토막 웃음을 한 번 두 번 보이더니 점점 웃음소리를 되찾았다. 물론 그 사이사이 마치 나는 웃으면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은 생각에 혼란스러움도 함께 느끼면서.
돌아서 생각해 보면 그건 자연스럽고 너무도 당연한 거였는데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엄마를 배신하는 거 같은 생각이 컸다. 이제 엄마는 이 세상에 없는데 음식을 맛있게 먹고 즐거워하고 기쁨을 다시 느낀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특별히 애를 쓰지도 않았다. 그래서 언제부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날이 자연스레 찾아왔다.
어느 순간 억지웃음도 아닌, 그리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목청껏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움의 크기가 줄어든 건 아니었어도 더 이상 슬픔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되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참뒤에야 깨달았다. 자연적으로 치유가 되어간다는 걸. 죽음이란 것도 결국은 살아가는 동안 있을 수 있는 당연한 일일 뿐이었다는 걸.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는 말을 실감했다. 분명히 엄마라는 사람은 내 삶에서 큰 존재였는데 엄마도 나도 각각의 다른 인생일 뿐이었구나 싶었다.
알면서도 쉽게 인정할 수 없었던 일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나니 그제야 울지 않고도 엄마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그런 일이 조금 일찍 찾아온 게 세상 억울하긴 매 한 가지였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