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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Sep 06. 2022

엄마의 마지막 소원


  옅은 약품 냄새, 누가 보든 말든 의무적으로 켜져 있는 티비,  조용한 듯 하지만 웅성웅성 소음이 끊이지 않는 곳.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던 곳에 와 있다.

  나는 하얀 침대 시트 위에 올라앉아 엄마를 뒤에서 꼭 안고 있었다.

  “아이고~ 딸내미가 안아주니 기분 좋으신가 보네~ 얼굴이 좋으시네!”

  같은 병실 어느 간병인 아주머니께서 나를 보며 웃으셨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 참고 엄마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엄마는 배인지 옆구리인지가 꼬이듯 자꾸 아프다고 했다. 옆구리의 통증이 심할 때면 온몸을 베베 꼬았고 소리를 지르며 알 수 없는 상대를 향해 욕을 퍼붓기도 했다. 그런 엄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꼭 안아주는 것뿐이었다.

  참지 못할 고통에 몸부림치느라 여기저기 부딪혀 엄마의 가느다란 팔다리는 온통 멍 투성이었고 그 힘을 당해낼 방법이 없는 나는 엄마를 꼭 안아 손깍지를 끼고 통증이 줄어들 때까지 버티며 기다렸던 거다.

  다행히 뒤에서 엄마 허리에 팔을 감아 안고 있으면 엄마도 조금 괜찮은 것 같다고 했다.


  병원을 당연히 가야 했지만 혼자 엄마를 간호하는 건 너무 무서웠다. 겁쟁이에 쫄보인 나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늘 조마조마 두려웠다. 하지만 엄마 얼굴을 보지 않고 집에 있는 것도 무서운 건 매 한 가지였기에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지 않을 만큼 늘 달달 떨고 있었다.

  그날도 언니와 교대를 하려고 병원에 갔다.

  엄마가 평소와 조금 달랐다. 남들은 전혀 눈치 못 채는 우리만 아는 변화. 조금은 낯선 엄마의 모습 그리고 말투.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이뇨제가 들어갔다고 했다.

  소변을 스스로 보지 못한 지 벌써 며칠 째. 손과 발은 물론이고 온 몸이 퉁퉁 부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이뇨제를 쓰긴 쓰지만 약물을 쓰면 쓸수록 정신이 혼탁해졌다. 그래서 자주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애써 모른 척 엄마 앞에서 평소와 다르지 않게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일부러 더 떠들었다.

  잠시 집에 다녀온다는 언니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옆구리에 신호가 오는 듯 보였다. 통증이 심해지고 난 뒤에는 내 힘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을 정도의 괴력이 생기는 엄마였기에 일찌감치 침대 위로 올라가 엄마를 뒤에서 가만히 안았다.

  “미야~ 여기가 왜 이렇게 아프지... 엄마 나중에 다리가 마비돼서 내내 누워있어야 되는 거 아이가”

  발음이 많이 어눌했다.

  “누워있으면 되지...”

  울음이 목 끝까지 차올라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누워있으면 우야노.. 너거 밥도 못해주고.. 우야노”

  일부러 쿨한 척, 내가 울고 있단 걸 숨기려고 엄마를 안고 좌우로 흔들면서 말했다

  “밥은 우리가 하면 되지. 이제 다 컸는데. 별 걱정을 다 하네... 빨리 집에 가기나 가자”

  "미야, 아직 춥나? 꽃 필 때 멀었나?"

  "어 엄마. 아직 좀 춥다. 따뜻해지면 꽃구경도 가자"

  엄마가 웃었다.

  “미야, 미역 무칠 줄 아나? 식초 넣고 새콤하게 무쳐서 콩나물도 넣고 비벼 먹었으면 좋겠다. 쓰읍..”

  며칠째 쌀밥을 먹지 못했던 엄마는 정말로 침이 나오는 건지 입맛을 다셨다. 평소 비빔밥을 참 좋아했던 엄마지만 미역초무침은 사실 엄마가 자주 해주던 반찬은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미역초무침 얘기에 당장이라도 해와야 할 것만 같았다.

  “어, 엄마. 우리 집에 가면 해 먹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엄마 등에 얼굴을 묻고 나는 한참을 흐느껴 울었고 우리 엄마는 고통을 잠시 잊은 건가, 간병인 아주머니가 봤을 때는 그렇게 웃고 있었나 보다.


  이틀 뒤 엄마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대구에 있는 큰 병원으로 서둘러 달리느라 사정없이 흔들리는 구급차 안에서 나는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의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보았고 비명소리를 들었다. 내 인생 통틀어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었다. 무섭고 겁이 나서 엄마 팔을 꽉 붙들고도 덜덜 떨리던 내 손등은 마구 할퀴는 엄마의 손톱에 긁혀 핏방울이 맺혔다.


  대구까지 매일 왔다 갔다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언니가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당시 신혼이던 언니가 고생하는 게 걱정스러웠던 건지 엄마는 나에게 딱 1주일만 회사 가지 말고 엄마랑 같이 있어 달라고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회사로 돌아와 사장님께 부탁을 드렸다. 이제 정말 마지막일 것 같다고, 두려움과 서러움이 밀려와 울부짖었다. 사정을 다 아시던 사장님은 곧 괜찮아지실 거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엄마 간호 잘해드리고 오라며 허락해주셨다.




  내 기억 속 우리 엄마의 마지막 일주일은 고통의 나날이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엄마는 누가 당신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거 같다고 했다) 엄마의 고통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에 따라 엄마의 몸속에 들어가는 약물도 독해진 탓인지 정신이 맑은 날이 잘 없다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할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나를 보는 눈이 흐릿해졌고 말은 느리고 어눌했다.

  가끔, 아주 가끔 괜찮아질 때면 엄마는 또 잊을세라 서둘러 말하곤 했다.

  장롱 두 번째 서랍 아래에 통장이 들어 있다고,

  그동안 남들처럼 학원 한 번 보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엄마 살림 열심히 잘 살았지? 했다.


  마지막 7일이 되던 날, 엄마는 갑자기 호전되어 보였다.

  여전히 기운은 없었지만 나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마치 그동안의 고통이 모두 꿈이었던 것처럼 엄마는 고통도 없었고 기억도 모두 돌아와 평온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나는 사장님께 , 그리고 많이 걱정해주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오늘은 내 이름을 불렀는데 우리 엄마 곧 괜찮아질 것 같다고.

  그날은 병원에서 살던 1주일 중 가장 마음 편하게 밥을 먹고 깊게 잠을 잤던 날이었다.

  다음날 새벽 엄마는 가쁜 숨을 힘겹게 내쉬었다.

  꺽, 꺽, 누워서 숨을 몰아쉬던 엄마는 살아 있는 게 오히려 더 고통스러워 보였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토끼 같은 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눈물범벅이 된 우리 볼을 닦아주려는 듯 천천히 훑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엄마를 가만히 안았다.

  "엄마.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 엄마. 사랑해"

  귀에 속삭이는 내 말을 알아들은 듯 엄마의 고개가 끄덕거렸다. 진작에 이 말을 자주 들려줄걸. 뭐 그리 어려운 말이라고 그렇게도 인색했는지. 후회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나 사는 동안에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이라는 것을 하였다.


  장례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엄마를 보내주고 있었다. 모두 초췌했고 누구도 말이 없었다.

  작은 방 벽에 기대어 몸을 웅크린 채 가만히 있는데 문득 스친 기억. 며칠 전 엄마가 그렇게 먹고 싶다 했던 미역초무침이 생각났다. 그때만 해도 나는 엄마가 이렇게 빨리, 이렇게 허무하게 우리 곁을 떠날지 몰랐다. 언니에게라도 말할 걸, 이모한테 부탁이라도 할 걸.

  무릎을 감싼 두 팔에 얼굴을 묻은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딱 한 숟가락이라도 먹고 싶다던 엄마의 마지막 말을 내가 들어주지 못한 거 같은 죄책감에 가슴이 죄여 왔다.



  그렇게 넋이 빠져 껍데기인 채로 한참을 살았다.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다가도 울음이 터져 나왔고 집 청소를 하다가 엄마 글씨체를 발견하고는 죽기 직전까지 울었다.

  이렇게 과연 살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예고도 없는 깊은 슬픔에 빠져 지내던 중이었다.

  늘 그랬듯 회사 뒷골목에 있는 작은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소박한 가정식 집이었는데 그날 밑반찬으로 미역초무침이 나왔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꾹 참아냈다.

  미역을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고는 오물오물 오래오래 씹었다.

  '엄마, 콩나물이랑 같이 비벼 먹으면 진짜 맛있겠네...' 하면서.

  목으로 넘길 때마다 딱딱한 돌멩이를 삼키는 것처럼 목이 아팠지만 꾸역꾸역 미역초무침을 한 접시 다 비워냈다. 그리고 아주머니께 조금만 더 주십사 하고는 밥공기도 싹싹 긁어먹고 나왔다.

  엄마 생각에 올려다본 하늘엔 연분홍 벚꽃잎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이렇게 금방 찾아올 봄이었는데 먼 길을 가느라 바쁜 엄마는 함께 꽃구경하자던 것도 잊고 조금 서둘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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