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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Sep 06. 2022

주근깨 빼빼 마른 까망머리 앤

꿈꾸는 다락방


  어린 시절 살았던 내 기억 속의 첫 번째 우리 집은 낡은 기와집이었다.

  어린아이의 눈에도 그리 좋은 집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그곳에서의 고운 추억이 많아서인지 아직도 가끔 꾸는 꿈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때 우리 부모님은 벼농사를 지으시다가 내가 예닐곱 살 즈음에 논을 밭으로 갈아엎어 과수원을 하셨었는데 그야말로 나무에 둘러싸여 있던 그림 같은 집이었다. 아니 사실, 그때의 나에게 그 집은 친구들을 초대하기 부끄러울 만큼 깔끔하게 가꾸어져있지도 않고 허름해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지긋지긋한 곳이었는데 그런 집이 지금 나에게 그림 같은 집이라니...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화되기도 한다던데 아마도 그곳이 추억 가득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라서 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인생 통틀어 제일 빈곤했던 시절이었는데도 그때 차곡차곡 쌓아둔 나의 감성이 지금껏 살아오는 밑거름이 되었다 해도 될 만큼 마음만은 풍족했던 때이기도 했다.

  아주 오랜만에 내가 살았던 그림 같은 낡은 집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대문을 들어서면 큰 감나무가 지키고 서 있고, 마당 왼편으로는 부모님이 손수 일구신 텃밭에 여러 종류의 과실나무가 많았다.

  담벼락을 따라 꽃사과나무, 배나무, 석류나무, 자두나무, 단풍나무가 심어져 있고 텃밭 한가운데에 둥글고 예쁘게 가지를 펼친 앵두나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앵두나무는 겨울이 되면 여느 다른 나무보다도 유독 볼품이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선명하진 않지만 가지가 뾰족뾰족하다 느낄 만큼 가늘어서 그랬던 것 같다.

  옆집의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부러웠던 어린 맘에 동생과 색종이로 이것저것 만들고 오려서 앵두나무에다 걸어두고서 트리랍시고 기쁜 맘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하지만 매서운 겨울바람에 색종이는 찢겨 날아다니고 전보다 더 지저분하고 볼품없어져 버린 앵두나무를 보며 절에 다니던 엄마는 눈을 흘겼다. 오 마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앵두나무 뒤로는 심은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조금 작고 앙상한 배나무가, 그리고 그 사이 작은 밭에 여름이면 흰색, 보라색의 도라지꽃이 만발하였는데 꽃이 활짝 피기 전 봉오리가 맺혔을 때 우리는 활동을 시작했다. 어릴 때 즐겨 먹던 보석반지사탕같이 생긴 그 꽃봉오리는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는데 손으로 터트리는 재미가 대단했다. 통통한 그것을 만질 때도 터트릴 때도 손맛이 아주 좋았지만 폭하고 바람 빠지며 터지는 소리에 재미는 배가 되었다. 도라지를 죄다 밟아놨다고 혼나기도 많이 혼났지만 도라지꽃이 피기 시작하면 절대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는 놀이였다.

  도라지 앞으로 파놓은 땅에 대파가 가지런히 줄지어 눕혀있고, 장독대와 물이 있는 수돗가를 지나 담이 끝나는 제일 뒤편에 또 한그루의 감나무가 지붕에 걸쳐져 있는 풍경의 낡은 집.

  그 집에서 내가 특히 좋아한 장소가 두 군데 있었는데 하나는 지붕 위였다.

  지붕 색이 붉었는지 파랬는지 헷갈릴 만큼 어렴풋하게 기억나지만 모양은 부드러운 곡선인데 질감은 거친 빛바랜 기와가 왜 그렇게도 예쁘고 좋았는지.

  수돗가 옆 감나무를 타고 지붕 위에 올라가 살금살금 기와를 밟으며 마당을 내려다볼 때의 기분은 짜릿했다. 기와끼리 겹쳐진 부분을 잘 밟아야 했는데 가장자리를 잘못 밟으면 기와가 깨져버리고 말았다. 집안에 있으면 그 소리가 들렸던 건지 기와 깨지는 소리에 엄마의 목청이 찢어질 때면 얼른 담벼락 아래로 뛰어내려 집을 반 바퀴 돌아온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문 앞에서 노는 척 시치미를 뗐다.

  내가 밟아 깨버린 기왓장이 얼마나 됐을까. 그렇게 혼이 나고도 엄마 몰래 지붕에 올랐다. 어디서 본건 있어서 낮고 단단한 지붕 한쪽에 누워 혼자 낭만을 즐겼다. 바람소리도 듣고 손가락으로 하늘에 다 대고 그림도 그렸다. 방에 들어갈 때 옷을 단단히 털고 들어가도 틀림없이 들키고 말았다. 케케묵은 기와이끼가 머리며 옷이며 엉덩이에 들러붙은 까닭이었다.


  두 번째 공간은 다락방이었는데 제일 좋아했던 곳이기도 하고 가장 그리운 공간이기도 하다.

  딸 다섯이 쪼르르 누워 잠드는 가운데 방 한쪽 벽에는 내 키 정도의 높이에 정사각형의 작은 문이 두 개 있었다. 발뒤꿈치를 들고 발가락으로 꼿꼿하게 서서 제자리에서 두어 번 콩콩 점프하다가 팔과 다리에 온 힘을 다해 벽을 타고 올라가면 먼지 그득한 다락방이 있었다.

  우리끼리 그냥 부르는 말로 다락방인 거지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조금 큰 벽장에 가까웠다. 신문지로 바닥을 깔아 놓았던 그 안에는 갖가지 책들이 마구 섞여 있었다. 케케묵은 언니들의 오랜 일기장부터 방학 탐구생활, 백과사전부터 표지가 찢어져버려 제목도 알 수 없는 동화책들까지, 그곳은 나에게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다락방을 정리해놓으면 올라가서 다 헤집어놓고 먼지투성이가 되어 내려온다고 엄마에게 등짝도 많이 맞았었다. 그래도 올라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곳.

  방학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다락에 기어 올라가 언니들의 지난 방학 탐구생활을 찾아내서 보고 베끼거나 일기를 보고 쓰기도 했다.

  버리기엔 아까운 것들 그렇다고 특별히 아끼지는 않는 책이나 잡지 같은 것들은 일단 다락방에 밀어 넣고 볼 일이었다. 언제고 요긴하게 쓰일 날이 오기 때문이다. 문이 좀 높았기에 그렇게 밀어 넣다 보면 안쪽으로 깊숙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문 앞에 쌓이기 일쑤였고 재수가 없는 날엔 문을 열다 떨어진 책에 발등을 찍기도 했다.

  엄마의 성화에 우리 딸들은 정기적으로 다락방 비우기를 했다. 모든 책을 다 꺼내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정리했는데 잊고 있던 일기장이나 메모장 같은 걸 발견하면 추억을 회상하느라 그마저도 한참이 걸렸다. 엄마는 잡동사니에 쓸모없는 것들이라고 했지만 의외로 생각지도 못한 보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적어도 나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다락방엔 작은 전구 하나도 없이 늘 어두컴컴했는데 그 때문에 안에서 뭘 찾거나 하려면 늘 문을 열어놔야 보였다.

  한 번은 다락방을 깔끔하게 정리한 날 동생과 기어 올라가 문을 닫았는데 다락의 젤 앞쪽에 창이라고 하기에도 우스운, 내 머리통 하나 겨우 들락날락할만한 구멍이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그 구멍으로 얼굴을 쏙 내밀면 마당이 다 보였다. 어쩐지 2층 집에 있는 것 같은 설렘이 있었다(그 시절 나에게는 2층 양옥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 뒤로는 혼자 다락방에 앉아 문을 닫고 작은 창에서부터 들어오는 설렘을 만끽하곤 했다.

  처음엔 어두운 그곳이 어쩐지 무서워 문을 빼꼼 열어두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꼭 닫고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굳이 그 먼지 많고 어두운 곳에서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기대어 책을 찾아봤다. 동생이나 언니랑 싸우거나 엄마에게 혼이 났던 날엔 나는 주워온 아이임에 틀림없다며 다락방에 숨어 울기도 했다. 자존심에 누가 찾기 전까지는 내려오지도 않다가 창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누군가 내 이름을 말하는 것 같으면 슬쩍 내려왔다. 그러는 동안 나는 다락방 안에서 봤던 책을 보고 또 보고. 책 먼지에 코가 간질거리면 창밖으로 코를 내어 숨을 쉬어가며 보고, 보고 또 보고.


  어둡고 퀴퀴한 책 냄새가 그렇게 났어도 유독 겁이 많은 내가 그 다락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작고 소중한 창 하나 덕분이었다.

  창이 작아 들어오는 빛도 크지 않았기에 책만 비춰볼 수 있었고 내가 보려는 것은 훤히 다 보였기에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천장에 거미줄이 가득 쳐져 있었대도 빛이 거기까지 차마 닿지 않았기에 나는 모를 일이었다. 모두가 잠든 밤에 온 세상이 그렇게 어두운데도 작은 창을 비치는 달빛은 왜 그리도 밝게 느껴졌었는지.

  밝고 넓은 곳보다 작고 여린 빛이 비치는 그곳이 더 마음 놓이고 편했다. 누구의 말보다 위로가 되었다.

  언젠가 나도 내 방을 갖고 싶다며 다락방에 전구 하나만 달아주면 거기서 숙제도 하고 잠도 자겠다고 했다가 엄마의 따가운 눈흘김에 빠르게 포기했던 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허리를 세우지도 못하고 쪼그려 앉아 기어 다녀야만 했던 그 좁고 낮은 다락방에서 예쁜 꿈을 참 많이도 꾸었다.

  다락방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온 몸이 간지러운 것 같았지만 그와 다른 이유로 내 마음도 함께 간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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