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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남PD Nov 26. 2019

#13. "무지개 때문인가?"

어쩌다 보니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는 부부가 되었다!

우리는 10월의 어느 맑은 가을날 결혼을 했다. 식장이 너무 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많은 하객분들이 오셔서 축하를 해 주셨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서야 수백 통의 톡을 확인했다.



"야, 너네 잘 살겠다! 오늘 하늘에 웬 무지개가 떴더라! 비도 안 오는데! 천생연분인가 봐. 잘 살아라!"



우리 결혼하던 날, 식장 하늘 위에 빼꼼히 얼굴을 내민 무지개.



남편 친구들과 몇 명의 지인들이 비슷한 사진들을 보내왔다. 비가 오지도, 습하지도 않았던 그 날, 맑고 푸른 하늘에는 선명한 무지개가 둥실~ 떠올랐다. 그 무지개 덕분인지, 우리가 진짜 운명이어서인지, 아직도 우리는 깨 볶으며 꿀 뚝뚝 흘리며 살고 있다.


"그거, 3개월이면 사라질 거다!"


3개월이 지났고, 우린 연애 때보다 서로가 더 좋아졌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말했다.


"길어 봐야 6개월이야."


좀 두렵기도 했고, 걱정도 됐다. 결혼 위기라는 6개월이 지났지만 우리 사이는 더 쫀득해졌다. 그 후로도 사람들은 쭈욱 말했다. "1년이 최대치!"라든가, "3년 되면 진짜 서로 의리로 살 거다!"라든가, "5년이면 진짜 가족이지 가족!"라든가. 결혼 만 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의리' 보다는 '사랑'으로 살고, 퇴근 후 "왔어?" 보다는 "오늘은 나 얼마나 보고 시퍼쪄~?"라며 '뽀뽀'로 재회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아직도 이렇게 '죽고 못 사는 부부'로 살 수 있었던 건, 의도치 않았던 몇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결혼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일들이 있다.




"항상 남편 것 먼저 챙겨. 속옷 한 장도 남편 거를 위에, 네 거를 아래에 놓고."


결혼하기 며칠 전, 결혼하면 해야 할 것들을 하나, 하나 알려 주시며 엄마가 가장 먼저 하셨던 말씀이다. 결혼할 무렵, 나에게는 '저렇게 살고 싶다'하는 '로망 부부' 세 커플이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 부부가 우리 엄마, 아빠다. 젊은 시절 두 분은 매우 강성인 할머니 때문에 적지 않게 토닥토닥 싸움도 하셨고, 고생도 많이 하셨다. 하지만 두 분의 사이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돈독했다. 엄마는 아빠랑 다툼이 있어도 새벽에 일어나 '갓 밥'을 지어 출근하는 아빠의 아침상을 차리셨고, 그런 정성을 아는 아빠는 항상 먼저 "미안해~ 저녁에 보자!" 하며 엄마의 새벽밥을 맛있게 뚝딱 하고 출근을 하셨다. 부부 사이에 싸울 일이 없을 수는 없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막말은 않으셨고, 절대 각방은 쓰지 않으셨다. 화가 나면 "난 이러이러해서 화가 났고, 다음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그 자리에서 마음속 이야기를 하셨고, "그건 내가 잘못했어. 하지만 이런 부분은 당신의 오해도 있으니 이번엔 이해를 좀 해줘"라고 다름을 조율해 나가셨다. 나의 첫 번째 로망 부부처럼 살기 위해 결혼하고 지금까지 내가 항상 빠트리지 않고 하는 것이 있다. 아침밥 챙기기, 옷 다리기, 머리 해 주기가 그것이다.


"아냐, 나 밥 안 먹어도 돼~! 아침 회사에서 나오는데 뭐. 회사에 가서 먹자!"


'결혼하면 꼭 아침밥은 챙겨 줘야지!'라고 생각했던 나는 남편에게 함께 아침밥을 먹고 출근하자고 제안했고, 남편은 "힘들게 밥 할 필요 뭐 있어~"라며 아침은 각자 회사에서 해결하자고 했다. 하지만 야근이라도 하거나 회식이라도 있으면 하루에 얼굴 보며 밥 한 끼도 못하게 될 터였고, 그게 싫어 아침은 꼭 함께 먹고 싶었다. 나는 그보다 30분 먼저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했고, 나의 남편은 결혼 이후 '갓 밥 먹고 출근하는 남자'가 됐다. 결혼한 지 5년 차가 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침밥을 함께 먹고 출근을 한다.


"900원이면 드라이할 수 있는데, 맡기자!"


결혼하고 가장 어려웠던 '난 코스'는 다림질이었다. 지금이야 비즈니스 캐주얼로 바뀌어서 스팀다리미 정도로 다 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엔 와이셔츠를 입어야 했기에 다리미로 줄을 빳빳하게 세우는 것이 중요했다. 결혼 전에 내 옷도 다려 입지 않았던 나는, 남편이 회사에 출근할 때 입어야 하는 와이셔츠에 가끔 줄을 두 개 세워 놓기도 했고, 삐뚤어진 바지 주름을 바로 잡지 못해  그대로 입혀 보내기도 했었다. 힘들고 잘하지도 못했지만, 매주 주말 황금 시간대에 내가 남편의 옷을 다렸던 이유는, 내 간절한 마음이 꼭 이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보가 하는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잘 되기를... 항상 즐겁게 회사 생활할 수 있기를...' 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남편의 옷을 다렸고, 그동안 남편은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차 내부 세차를 말끔하게 해 두고 왔다. 아무리 "자긴 쉬어~"라고 해도 그냥 쉬질 않는 착한 남편이다.


"머리 내가 할게! 나도 할 수 있어!"


사실 이건 두세 달에 한 번씩 펌을 하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고안해 낸 방법이었다. 선물 받은 작은 아이롱기가 있는데, 그걸 쓰면 빠르고 쉽게 초강력 직모를 자랑하는 남표니 머리에 컬을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번 시도를 하다 보니 바쁜 아침, 3분이면 펌 헤어를 연출할 수 있게 됐고, 나는 5년간 '꽁든 모닝 헤어숍'을 열고 있다. 남자들은 보통 무언가를 받으면 10배 정도 불려서 주는 습성이 있는데 우리 남편은 자신이 보고 괜찮아 보이는 걸 꼭 실행에 옮기는 아주 좋은 습관이 있다. 매일 자신의 머리를 세팅해 주는 날 보며 내 남편은 매일 저녁 내 머리를 탈탈 털어 뽀송하게 말려 주고, 팔베개를 해서 꿀잠을 재워 준다. 남편 품에서 자는 잠은 정말로 달콤하다.




나의 두 번째 로망 부부는 나의 절친 작가님 부부다. 만난 지 12년이 훌쩍 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낸다. 작가님의 남편은 반도체 관련 한 중견기업에 다니시는데, 매일 저녁 아내와의 대화로 하루를 마무리하신단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컨설팅에 능한 작가님의 설루션은 작가님 남편의 회사 생활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때로는 업무적으로 중요한 판단이기도 했고, 때로는 조직 관리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아내의 '여자로서의 촉과 판단'은 훌륭한 결과를 도출할 때가 종종 있다. 그 덕분인지 젊은 나이에 작가님의 남편은 임원 승진을 했고,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했다.


'나도 결혼하면 남편 내조, 저렇게 해야지!'


항상 다짐했었다. 결혼하고 나는 퇴근하면 꼭 나의 하루에 대해 남편에게 쫑알쫑알하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퇴근 후에는 나의 이야길 들어주었고, 남편도 서서히 자신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랬고,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고...


"여보야, 그런데 말이야. 친구들이 집에 가서 회사 이야기하지 말래."
"왜??"
"와이프들이 싫어한대, 집에 와서 회사 이야기하는 거."
"그래? 난 재밌는데?"
"아니래. 그래서 나도 좀 줄여 볼까 해."
"난 좋아! 회사 다니다 보면 즐거웠던 날도 있을 거고, 뿌듯했던 날도 있을 거고, 위로받고 싶은 날도 있을 텐데, 그럼 그거 누구한테 말할 거야?"
"걍... 뭐 회사에서 이야기하고 말지 뭐."
"그럼 막,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바에 가서 바텐더랑 이야기할 거야?"
"아니~! 그런 일은 없지."
"남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데가 없어서 외로운 거래. 결혼해도 외로운 이유가 바로 그거래. 난 자기가 외로운 남편이 되는 게 싫고, 자기의 하루가 궁금해~!"


곰곰이 생각하던 남편은 "그래, 그렇겠다! 결혼했는데 외로울 순 없지!"라며 그날 있었던 일들, 그날 자신이 느꼈던 기분들, 그런 기분에서 했던 생각들을 조금씩 나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수백 개의 촉과 안테나가 있는 여자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자보다 더 다양한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 이야기 속에는 남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설루션들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여보, 내일 가면 꼭 이거 먼저 해요!"


간혹 나의 설루션이 필요할 때, PD의 촉, 여자의 촉으로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것들을 알려준다. 그러면 나의 남편은 그걸 유념해 두었다가 반드시 하곤 했는데, 그런 솔루션들이 도움이 된 경우가 꽤 많았다.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부부의 대화는 행복한 결혼 생활의 필수템이다.




세 번째 부부는 친구 J의 부부다. 꽤 오래전 결혼을 한 내 친구 부부는 5년 정도 신혼 기분을 만끽하며 놀다가 딸 둘을 낳았다. 친구의 남편은 꽤나 센스가 있고 아내를 잘 챙기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 친구가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했더니 커피를 내려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오빠가 커피 한잔을 내리는데 계속 머신이랑 식탁 사이를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지. '오빠, 왜 그렇게 일을 비효율적으로 해? 그냥 한 번에 다 할 수는 없어?' 그랬는데, 오빠가 '그럴 수도 있는 거야~ J야.. 어느 날은 한 번에 가지고 올 걸 두 번에 나눠서 가지고 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두 번에 할 걸 한 번에 다 가져와서 편하기도 하고. 다 그럴 수 있어'라더라고. 근데 오빠 출근하고 나서 오후에 내가 커피를 내려 먹으려고 했더니 난 오빠보다 훨씬 더 많이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생각했지, '아,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너무 미안해서 오빠한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했어, ㅋㅋㅋ"


친구 부부의 그런 모습이 참 좋았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나도 '그럴 수도 있는 거야~!' 하는 남자랑 결혼해야지!'


그리고 운명처럼 그가 내 곁에 찾아왔다. 키도, 외모도, 직업도, 경제력도 나의 이상형과는 많이 달랐지만, 내가 정해 놓았던 그 이상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 나타났던 것이다. 실제로 나의 남편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야. 세상에 딱 하나만 정답인 경우는 없어. 누구에게나 때는 있고, 정답은 달라질 수도 있고! 그게 우리 삶이잖아"라는 말을 종종 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딱 날 찾아왔을까! 혹시 연애 중이거나, 결혼을 생각하는 남자가 있고, 그 사람만의 장점이 있다면 "난 자기의 이런 면이 정말 좋아!"라고 꼭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콕! 집어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모르는 게 많으니까!


"여보~ 내가 결혼 전에 내 이상형이 '어, 그럴 수도 있는 거야~'하는 남자였거든? 근데 자기가 그런 남자더라? 그래서 결혼했어, 자기랑! 자기는 참 멋져, 그런 면이"




"좋은 아내가 될게요~!", "좋은 남편이 될게요~!" 매일 다짐하는 우리.



남녀의 감정은 생각보다 매우 단순한 체인에서 돌아가고 있다. 별 거 아닌 작은 칭찬에 남자는 '응? 내 여자가 이런 걸 좋아하고 고마워하네? 그럼 담엔 더 잘해 줘야지!' 하고, 별 거 아닌 작은 챙김에 여자는 '어머! 이 남자... 날 이 정도로 생각해주고 있는 거야? 좀 감동인데?' 하면서 그 남자를 더 신뢰하고 좋아하게 된다. 남녀가 그런 과정을 거치면, 여자 친구, 혹은 아내가 원하는 남편은 장점은 더 극대화되고 반대로 싫어하거나 단점인 부분은 점점 줄게 된다. 서로에게 가장 잘 맞는 '나만의 스타일'로 '시그니처화' 된다고 할까?  


5년 간의 이러한 생활을 통해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 더 사랑하고, 어제보다 조금 더 편안해졌다. 철없던 시절, 이 남자의 단점, 저 남자의 단점을 기어코 찾아 이 남자와 내가 맞지 않는 이유, 더 이상 만날 필요가 없는 이유를 기어코 찾아내고 있었다면 아마 아직도 난 혼자였을 것이다. 아직도 주위에는 안타까운 후배, 동생들이 많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참으로 이상하지만, 자신에게는 절대 우위의 잣대를 세우며 참 괜찮은 상대를 놓치고 있는 걸 보면, 나의 안타까운 과거가 떠오른다. 눈 앞에 보이는 조건보다 그 사람과 3년, 5년 10년을 함께하며 살았을 때 매일 조금씩 더 좋아질 수 있는 점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그래아 나의 결혼 생활, 나의 연애 생활은 매일 꿀처럼 달콤하고, 매일 조금씩 더 사랑받는 아내, 사랑받는 남편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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