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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남PD Nov 30. 2019

#14. "여보...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어."

내가 남편 말을 잘 듣게 된 첫 번째 에피소드

결혼한 지 일주일.


"자기야. 우리 혼인신고하러 가자, 주말에!"
"벌써???"
"응? 벌써라니~! 일주일이나 지난걸?"
"음... 내 친구들은 결혼한 지 3년 만에 막 혼인신고하고 그러던데..."
"하하하하! 그럼 나랑 결혼 무를 거야? 가자~ 주말에!"


아니 뭐 무를 건 아닌데...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너무 일찍 하는 것 같잖아. 결혼도 일찍 했고만. 뭐 쨌든 무를 건 아니니까!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주말에 남편을 따라 주민센터엘 간 우리.


"저희 혼인신고하러 왔어요!"
"혼인신고는 주민센터에서 안돼요. 구청 가서 하셔야 합니다."
"아... 그래요?"
"신고서는 여기 있으니까 가져가시면 되고요, 신고는 구청으로 가시면 돼요!"


'킄! 다행이다 ㅎㅎㅎ'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날 우리는 혼인신고서 종이만 달랑 하나 들고 주민센터를 나왔다.


"가자!"
"어디?"
"구청!"
"지금?"
"으응!"
"어... 자기야,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어. 쫌만 더 이따가 하면 안 될까?"
"ㅎㅎㅎ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 알았어! 그럼 자기가 원할 때 하자!"


나의 망설임에 남편은 후훗 웃으며 알겠다고 했고, 우리는 집에 와서 혼인신고서를 작성했다. 거 뭐, 혼인신고는 쉽진 않았다. 증인들의 서명도 받아야 했다. 지인들의 사인을 받아 혼인신고서를 작성을 해 두었고, 그러고는 한 달이 더 지났다. 결혼한 지 한 달만에 남편은 3주간 장기 출장을 떠나야 했고, 찔찔 짜면서 남편을 타국으로 보내야 했다. 남들이 보면 달, 아니 3년쯤 떨어져 있어야 하는 줄 알았을 거다!


"여보! 우리 혼인신고해야 할 것 같은데?"
"ㅎㅎㅎ 응? 출장 가서도 혼인신고하자는 우리 남표니~"
"ㅎㅎㅎ 그게 아니라, 담주 월요일까지 회사에서 받은 대출 때문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메일이 왔어~!"
"켁! 정말? 힝... 그럼 언제 해??"
"자기가 내일 좀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에에?? 나 혼자?? 혼인신고를 나 혼자 가서 하라고???"
"어.. 미안해. 자기가 해야 할 것 같아. 그래야 월요일에 제출하지..."


오마이... 남편은 출장 가 있고, 외롭게 홀로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니.... 회사에서 해 주는 대출은 이율이 낮아서 꼭 유지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하...


다음 날 아침.


바쁜 오전 업무를 정리하고, 혼인신고에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 점심시간 서초구청으로 향했다, 매우 쓸쓸하게.... 혼인신고를 위해서는 혼인신고서 1통, 각각 가족관계증명서 각 1통, 두 사람의 신분증, 두 사람의 도장이나 사인, 그리고 증인 2명의 날인이 필요하다. 날도 추워서 눈발이 조금씩 날리던 그 날, 지하철을 타고 양재역으로 향했다.


"저기... 혼인신고하려고 왔는데요..."


우씨... 남편도 없는 사람 마냥 혼자 가서 혼인신고를 하려니 왜 이리도 기분이 꿀꿀한지. 눈구름을 잔뜩 머금어 꾸물꾸물해진 하늘만큼 기분이 다운되는 하루였다.


"이혼신고하려고 하는데요!"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려는 찰나, 카랑카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치고 들어왔다. 강아지 한 마리를 팔에 안고 맨 얼굴에 수면 바지 같은 걸 입은 한 여자가 서류를 제출하겠다고 했다. 혼인신고를 하려는데 바로 옆에서 이혼신고를 하고 있는 사람의 말이 치고 들어오니 괜히 기분이 찝찝했다. 그 사람이 서류를 제출하기를 기다렸다가 나도 서류를 제출했다. 혼인신고 과정은 도장 몇 개 꽝꽝! 찍고, 컴퓨터에 일부 자료를 입력하면 됐다.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아 나와 남편의 혼인신고가 완료됐다.


"자기야, 나 다했어, 혼인신고."
"ㅎㅎㅎ 힘들지? 혼자 가게 해서 미안해. 고생했다!"
"우씨... 이런 거 나한테 혼자 시키고..."
"하하하! 그러게, 그날 나랑 갔을 때 하지. 그럼 편했잖아. 자긴 편하게 보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니까.... 그날 할걸... 자기가 하자고 할 때, 우아하게!"


그렇게 금요일 점심을 후다닥 보내고 '나의 외로운 혼인신고' 절차는 끝이 났다. 그 날을 기점으로 나는 '남편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할 몇 가지 사건'을 겪게 된다. 몇 번의 사건을 겪고 나서 나는 대부분 남편이 하자는 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다. 몇 번을 해 보니, 남편이 하자는 대로 하면, 실수가 적고, 프로세스도 줄일 수 있더라. 험난한 신고 뒤, 우리는 그 주 주말 주민센터에 설치된 기기에 가서 혼인증명서를 발급받았다. 내가 정식으로 유부녀가 된 날! 남편은 신나 하며 인사팀에 자료를 제출했다.



정식으로 '유부 클럽' 입성하게 된 꽁든 부부. 어렵게 어렵게 손에 쥐게 된 '혼인관계증명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보다 남편이 훨씬 꼼꼼하고, 생각이 깊다. 그래서 웬만한 일은 남편이 하자는 대로 하면 실수가 적다. 그의 그런 면이 참으로 마음에 들고, 그래서인지 내가 굳이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됐다. 결혼을 하게 되면 누구 한 사람이 가정 내 업무를 처리할 때 키를 잡게 되는데, 남녀의 특성상 아내보다는 남편이 그 키를 잡으면 좀 더 편안해지는 것 같다. 호르몬의 특성상, 남자들은 키를 쥐고 앞에서 진두지휘하며 처리하는 것에 능하며, 여자들은 반대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두고 가장 합리적일 것 같은 두세 개 안을 제시하는 것에 능하다. 이제 막 하나의 가정을 꾸린 부부가 있다면, 왠지 내가 더 잘할 것 같아도 남편에게 그 키를 쥐어줘 보자. 생각보다 남편들은 꽤 많은 일을 꽤 꼼꼼하게 잘 처리할 수 있다. 만약 뭔가 빠질 것 같다 싶으면, 우리는 몇 가지 안테나로 수신한 정보를 바탕으로 대안을 제시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남자들은 뭔가 자신이 책임을 지고 리더, 가장이 된 느낌을 가질 수 있어 좋고, 이러한 기분은 남편들이 가사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게 만드는 거름이 된다. 반면 여자들은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익숙해지면, 남편들이 집안일의 중요한 부분을 리드하게 되므로 좀 더 편안하고 우아한 가정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친구 따라 '3년 후 혼인신고설'을 하려 했던 나의 계획은 무산이 됐지만, 거진 한 달여 만에 유부녀가 된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유부 월드 정식 입성! 그 화려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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