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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남PD Sep 27. 2019

#8. "우리 딸~ 요즘 연애한다며?"

얼떨결에 구남친 소개, 나 이러다 진짜 결혼하는 거 아니야?


"언니, 요즘 대출 없이 집 구하기 어려워. 시부모님도 좀 도와주신다며~! 그럼 됐지 뭐! 사서 가면 좋지만, 그런 사람들 많지 않을 거야."


서촌에서 울며 불며 대출 안 한다고 떼를 쓰던 나를 달래던 구남친은 자기가 방법을 알아보겠다며, 사정사정하며 나를 달랬다. 겨우 눈물을 그치고, 난 그래도 판교 정도엔 살아야겠다는 합의(?)를 보고, 울음을 그쳤다. 그런데 나의 닭똥 같은 눈물에 쩔쩔매는 구남친이 왜 그리도 안쓰럽고 귀엽던지. 사실 결혼을 하면 결혼 완전 초반에 매우 매우 별일 아닌 걸로 여자들이 눈물을 보이게 되는데, 그때마다 달래고 얼르는 모습이 참 마음에 들었다. (사실 여자의 눈물은 때론 필요하기도 하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이건 따로 얘기하기로 하고!)


나보다 훨씬 더 철든 내 동생은 '대출 절대 불가·거부론'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요즘 진짜 부잣집에 시집가는 거 아니면 대출 없이 집 못 구한다'고 했고, 엄마에게도 대출에 대한 이야길 슬쩍 흘려 보았다.


나: 결혼하재.
엄마: 뭐? 얼마 됐다고...
나: 몰라, 하재, 자꾸. 난 별로 생각 없어. 대출해야 한대, 집구하려면.
엄마: 얼마나? 대출 없이 요즘 집 구하기 어렵긴 하지. 그 친구 모아둔 돈은 좀 있대?
나: 완전 코딱지만큼 있는데... 그래서 아 대출하면 결혼 못한다고 울었어.
엄마: 집은 어디쯤 구할 수 있는데?
나: 난 우면동 살고 싶다고 했고, 거긴 너무나 비싸다고 해서 그럼 판교 정도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어.
엄마: 판교도 비싸긴 할 텐데... 그래도 판교 정도면 괜찮아.


난 그때 사실 대출 이야기까지 나온 마당이었지만 결혼을 진짜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남자가 어떤 주사가 있는지도 몰랐고, 소위 말하는 4계절을 본 것도 아니고, 남녀 사이에 문제가 있을 때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지도 알지 못했던 데다, 어떤 상황에 화를 내는지, 어떤 경우에 행복해하는지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린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는 항상 나에게 친절하기만 했으니까. '내가 모르는 무슨 다른 모습이 있을 거'라며, '지금 다시 소개팅이 들어오면 또 해볼... 수도 있지' 라며 결정을 미루고 있었더랬다. 하지만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모두 쏟아붓는 '엄마, 동생, 나의 삼각 다이얼로그'에서 '서촌 대통곡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때 엄마와 동생은 직감했다.


'우리 언니 같은 사람이 그런 이야기까지 했어?'

'그 친구가 전혀 싫진 않은가 보네, 그런 이야길 다한걸 보니!'



'나도 엄마, 아빠처럼 저렇게 살아야지~!' 아직도 알콩달콩 젊게 사시는 엄마, 아빠. 우리의 롤모델.


이렇게 본의 아니게 '어쩌면 나도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지도 몰라요'라는 뉘앙스를 엄마와 동생에게 풍기고는 며칠이 지났다. 아마 우리 아빠도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딸의 남자 친구'에 대한 이야길 다 들으셨을 거다, 분명. 울 엄마와 아빠 사이엔 비밀이 없는데, 가끔 아빠가 용돈을 모아 엄마에게 적금 통장을 선물하는 완전 멋진 서프라이즈 외에 두 분 사이의 비밀은 없었다. 그런 엄마, 아빠를 보며 '나도 크면 꼭 저런 부부가 돼야지~!' 했더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결혼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때 되면 가겠지...'


아무튼, 그와 나의 연애는 순조로웠고, 그즈음 가족 여름휴가를 가게 됐다. 아빠와 동생이 시간을 길게 맞추기 어려워 그 해엔 가까운 일본으로 향했다. 오사카와 교토에서 좋아하는 일본 음식을 맛보는 식도락 여행도 너무 좋았다. 1년에 꼭 한 번은 가족 해외여행을 했는데, 국내든 해외든 가족이 함께 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3박 4일간의 오사카 여행 동안 나의 남친은 좋은 대화 주제가 됐다. 예상했던 대로 아빠도 구남친의 모든 히스토리를 알고 계셨다.


"우리 딸, 요즘 연애한다면서? 우리 딸 남자 친구 얼굴 좀 보자."


'으휴... 그럴 줄 알았어... 아직 아빠한텐 말하지 말라니깐...'


빠직! 엄마 한 번 쳐다보고, 동생 한번 쳐다보고! 하긴, 울 아빠 스타일에 엄청 오래 참으신 거라는 생각에 '걍 살짝만 말씀드리지 뭐'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는 계속 눈치를 살피다 여행 분위기를 빌어 먼저 이야길 꺼내셨고, 각자 샤워 후 엄마, 아빠 방으로 모였다.


나: 뭐 그냥. 평범하고, 그냥 만나는 거예요. 아직 뭐 소개할 정도로 편하거나 친해진 건 아니고.
아빠: 에이~ 그래도 얘기 좀 해봐! 아빠 궁금하다~!
나: 아니, 뭐 그냥. 같은 그룹 다니고, 과장급이고, 나이는 동갑이고...


와인에 룸서비스를 시켜 먹으며 구남친에 대한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는 '이때다!' 싶어 궁금했던 걸 다 쏟아부으셨고, 난 또 거기 딱 걸려서 시시콜콜한 에피소드까지 톡! 다 털어놓았다. 그동안 데이트하며 찍어둔, 언젠가 보여드릴 날이 있을 거란 생각에 미리 찍어 뒀던, '남치니 사진'을 공개했다.


엄마: 여보, 괜찮지? 애가 눈이 똘망똘망한 게, 아주 똑똑해 보여!
아빠: 아이고! 인상이 엄청 좋네! 나이도 동갑이고! 부모님은 뭐하신대?
나: 걍... 뭐 동갑이고, 사람은 괜찮은 것 같아요. 똘똘하고.
아빠: 딱 됐네! 인상이 너무 마음에 든다!
나: 근데 결혼하려면 대출도 해야 한대요...
아빠: 요즘 세상에 대출 없이 집 구하기 힘들지. 둘 다 같은 그룹이니까 둘이 모으면 금방 모아.


그 해 가족여행에서 있었던 대화는 우리 커플 이야기, 아니 나의 구남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구남친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부터, 어느 회사에서 무얼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꼼꼼히 묻고 묻고 또 물으셨다. 난 팩트만을 전달했고, 그 당시 그의 소소한 행동에서 느꼈던 나의 감정도 함께 전했다. 부모님께 나의 연애사를 그렇게 소소하게 다 이야기한 적은 처음이었는데, 다행히 가족 모두 구남친을 너무나 좋게 봐주셨고, 3박 4일간의 장거리 여행 회의(?)는 끝이 났다. '그 친구, 얼굴 한 번 보자!'라는 결론을 얻은 채로! 온 집안 식구가 구남친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만난 지 두 달만에 그는 우리 부모님을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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