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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남PD Sep 23. 2019

#7. "대출? 엉엉엉... 대출 안 할 거야 무서워"

서촌 데이트하다 통곡한 사건

어제부로 나는 임신 7개월 차 임신부가 됐다. 배도 꽤 나왔고, 몸의 변화도 조금씩 익숙해져가고 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우리의 2세는 우리를 얼마나, 어떻게 닮았을지 궁금하고, 이렇게 갑작스레 찾아와 주어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또 행복하다. 조금씩 불어 가는 몸무게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0.5kg에도 벌벌 떨던 7개월 전보다 6킬로그램이나 더 쪘지만, 나와 나의 남편은 그저 행복할 뿐이다.


서촌에 오니 문득 결혼하자고 조르던 구남친의 모습이 생각난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자던 남친은 정말 한 달도 안돼 계속 결혼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겨댔다. 나는 그런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내가? 결혼?'  그를 만났다.


"우리가 결혼하게 되면 말이야..."


서촌 데이트를 하던 그날도 나의 구남친은 혼자 '결혼 상상'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결혼이 하고 싶은가...'


내가 너무 무심한가... 싶어 그의 이야길 좀 구체적으로 들어 보기로 했다. 얼마나 구체적으로 결혼 준비가 돼 있는지 물어볼 요량이었다.


나: "그렇게 결혼이 하고 싶어?"
구남친: "응! 하고 싶어, 자기랑!!"
나: "왜? 내가 좋아?"
구남친: "당연하지! 너무 좋아, 자기가."


결혼하고 나서, 1년 즈음이 지난 후에야 물어봤다. 왜 그렇게 결혼 이야길 많이 했느냐고. 사귀기로 하면서 그는 결혼 이후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더랬다.


나: "그때, 자긴 왜 그렇게 나랑 결혼이 하고 싶었어?"
구남친: "그냥, 사실 난 그때 나이가 있었으니까, 결혼할 생각이 아닌 사람이랑은 사귈 생각도 없었어. 그런데 자기를 만난 첫날, 자기가 나한테 '어? 갤럭시 S6 쓰시네요?', '어? 트래커 쓰시는 분들 많이 못 봤는데, 시계 말고 트래커 쓰시네요!' 했을 때, '아 이 사람 참 밝고 긍정적이구나, 우리는 참 통하는 게 많구나, 괜찮다... 이런 사람이라면 결혼을 생각해 봐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내가 적극적으로 대시했던 거고, 사귀고 난 담서부터는 난 자기랑 결혼하고 싶었으니까, 꾸준히 결혼 이야길 언급했던 거지. ㅎㅎ"


그랬었구나... 몰랐다. 그저 잘 들어주어야겠다, 이 사람이랑 나는 비슷한 점이 꽤 많구나, 재밌다, 인상이 좋다, 귀엽다 생각하며 했던 나의 모습에 그는 어렴풋이 결혼이란 걸 생각했었다고 했다. 나있는 그대로를 예쁘게 봐준 그가 새삼 고맙다.


지치지도 않고 줄기차게 결혼 이야길 하던 그가 안타까워 '그래, 그럼 내 남친의 결혼 계획이나 좀 들어볼까?'하고 본격적으로 '결혼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나: "자기, 결혼할 준빈 돼 있는 거야?"
구남친: "지금부터 하면 되지! 자긴 결혼식은 어디서 하고 싶어?"
나: "나는 회사에서 하고 싶어!"
구남친: "오 그래?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호텔 같은 데 말고?"
나: "응! 결혼식장에 돈 많이 들일 생각 없어. 그냥 밥 맛있고, 주차하기 좋은 데. 그런 데가 결혼식장으론 딱인 것 같아"
구남친: "좋아! 그럼 신혼여행은?"
나: "난 옛날엔 유럽이 좋아서 휴가도 유럽으로만 다녔는데, 신혼여행은 휴양지가 좋을 것 같아."
구님친: "좋다, 나도 그러면 좋을 것 같아."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길 하면서 어느 카페엘 들어갈까 카페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 "자기야, 그럼 집은?"
구남친: "자기는 어디에서 신혼생활 시작하고 싶어?"
나: "음... 나는 회사 좀 가까운 우면동?"
구남친: "어??? 우.. 우면동?"
나: "응! 우면동! 거기 좋더라고"
구남친: "음... 자기야, 경기도권은 안될까? 거긴 엄청 비싼 동네야."
나: "얼만데?"
구남친: "10억은 할 거야, 아마..."
나: "그렇게 비싸? 그러면... 판교!"
구남친: "판.. 교? 판교도 좀 비싸긴 할 텐데.. 그래도 한번 알아보자!"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본격적인 나의 '예산 탐색'이 시작됐다.


나: "자기 돈은 얼마나 있는데..?"
구남친: "한... 7천 정도 될 거야. 그리고 대출을 좀 받아야 하고."


응? 뭣이라? 대출? 그리고 예산은 7천...? 그동안 돈은 안 모으고 뭐했대? 대출? 대출을 해야 한다고? 망했다... 대출을 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길을 걷다가 눈은 새빨갛게 변했고, 서럽다 못해 목은 꺼이꺼이 메여왔다. 갑작스러운 나의 울음보에 놀란 건 그였다.


구남친: "자기야! 왜.. 왜 그래??? 응? 울지 마... 울지 말고 우리 잠깐 어디 들어가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응?"
나: "나 대출하기 시러어.... 엉엉엉... 나 대출 무서워... 대출 안 하면 집 못 구하는 거야?"


그렇게 놀란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이 서른일곱까지 엄마, 아빠와 살아 보다 보니 대출은 평생 해 본 적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렇게 철이 없을 수가 없다. 짧지 않은 연차에 비해 모은 돈이 많지 않았지만, 우린 맞벌이를 할 거고, 둘이 벌면 대출은 금세 갚을 수 있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잡을까, 말까... 그의 손을 마주 잡기 전, 고민과 생각이 많아졌다.


'이제 이 사람이 너무 좋아졌는데... 돈이 없어... 난 대출 안 하고 결혼하고 싶은데...'


"난 대출 안 할 거야. 못해... 무서워. 나... 결혼 안 할 거야."



꺼이꺼이 숨 넘어갈 듯, 결혼 안 할 거라며 길거리에서 울음 터뜨린 여자, 그 여자를 놓치고 싶지 않은 남자. 그의 표정이 너무도 어두워졌다. 그 밝은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어두운 것은 처음이었다. 울면서도 가슴 한편이 찌릿...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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