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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남PD Oct 04. 2019

#9. 엄마, 아빠 허락받고 간 1박 2일 여행

진짜 방 2개짜리 럭셔리 리조트 구해온 나의 구남친

그렇게 나의 구남친은 '공식 남친'이 됐다. 살면서 그렇게 당당하게, 대놓고 오픈해서 남친의 존재를 부모님께 알린 적은 처음이었는데, 부모님이 그렇게 좋아하실 줄은 몰랐다. "누구 만나고는 있냐?"라고 물어보시면, 귀찮은 듯 "아, 그냥, 심심해서 만나는 거야"라고만 말했지, 이 사람이 어떻고, 어떤 성향이고, 성격은 어떠한 것 같고, 이런 일이 있었고... 자세히 이야기해 본 적은 없었다. 만약 지금 연애 중이며, 뭔가 좀 확실한 판단이 필요하다면, 자신의 감정을 더하지 말고 디테일하고, 담담하게 부모님께 이야길 꺼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누구보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분들이니까!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공식 커플이 되었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사이'.


"자기야, 우리 여름휴가 같이 가는 건 어때?"
"뭐? 여행? 어디로? 얼마나?"
"1박 2일로, 국내여행 어때?"


'어머, 이 남자 봐라?'


아니, 사귄 지 얼마 됐다고 여행을 가쟤? 아주 보수 중에 보수였던 나는, 여행 가자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안돼!!! 당일치기 가자! 1박 2일은 절대 안 돼요!"
"왜... 같이 가기 싫어요? 같이 가자~ 응?"
"안돼. 갈 거면 엄마, 아빠 허락받고 가야 해."


나이 서른일곱에 이랬다. 원래 매우 자유롭게 살았던 나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러면, 부모님 허락받고 갈까?"
"허락...? 해주실까..."


'어떻게 말하지......?'


'무슨 여행이야...' 싶었지만, 사실 데이트할 때가 아닌 둘만의 공간에서 이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일단 엄마한테만 살짝 의중을 떠보기로 했다. 이 나이에 묻는 것도 웃기지만, 굳이 거짓말하면서 가기도 싫었기에, 일단 이야기해보는 걸로!


"엄마! 여행가쟤, 1박 2일로."
"oo이가?"
"어. 안되지?"
"다녀와! 니들 나이에 그런 건 알아서 해야지. 뭐 허락을 받고 가."
"진짜? 우리 엄마, 너무 쿨한 거 아냐? 나 1박 2일 가도 돼?"
"그럼! 아빠한텐 엄마가 얘기할게."


그땐 미처 몰랐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쿨한 사람인지! 너무도 쿨하게 '다녀와~'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아빠한테는 엄마가 이야기하겠다며, 재밌게 조심히 다녀오라고 하셨다. 이 기쁜 소식을 들을 구남친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났다.


"자기야. 엄마가 허락하셨어!"
"진짜????????????? 우와!!!! 어머니 너무 감사하다!!!"
"대신, 방은 두 개짜리여야 해."
"응! 알았어! 걱정 마!"


사실 방은 두 개가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진짜 방을 두 개짜리 구하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걸 염두에 둔 건지, 고급 펜션, 콘도를 중심으로 몇 곳을 선정해 톡을 보내왔다.


"자기야, 여기 어때? 바로 앞에 바다가 있고, 펜션도 좋더라고!"
"펜션? 음... 나는 자기야, 숙소가 좀 중요하거든... 그래서 펜션보다는 호텔이었으면 좋겠옹..."
"아, 그래? 알았어! 그러면 남해 갈까?"


남해는 가본 적이 없는 데다, 사진으로 봐도 방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남해는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여행지가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여행 당일이 됐고, 엄마, 아빠에게는 여행지, 숙소 등을 상세히 '고하고', 집 앞으로 픽업 온 남친의 차로 내려갔다. 엄마는 조심히 잘 다녀오라며 '복숭아 킬러' 딸을 위해 빨갛게 잘 익은 복숭아를 정갈히 깎아 팩에 넣어 주셨다.


"우와! 나도 복숭아 좋아하는데~!"
"정말? 나 복숭아 킬러야! 자기랑 나랑은 진짜 비슷한 게 많다. 엄마가 조심히 잘 다녀오라셔!!"



숙소 앞 풍경. 오래간만에 본 초록이 가득한 풍경은 우리 마음까지 푸근하게 만들었다. 내일 아침엔 저기 논두렁에 산책 가야지!



다섯 시간을 달려 남해에 도착했다. 골프 클럽이 함께 있는 곳이라 호텔이라기보다 2-3층짜리 독채 빌라들로 구성된 곳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지어진지 좀 오래돼 보이기는 했으나, 실내는 쾌적하고 아늑했다. 들어가 보니 내부는 왜 이렇게 큰지, 게다가 더 놀라운 건, 진짜 방이 2개다! 진짜로 방 두 개짜리 숙소를 구해온 나의 구남친! 결혼하고 안 사실이었지만, 이 숙소의 가격은 1박에 100만원 가까이 했다. 하... 돈아깝...


'뭐야~ ㅎㅎㅎ 진짜로 방 2개 짜릴 구해 왔네? 여기 좀 비쌀 텐데... 너무 귀여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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