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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남PD Oct 17. 2019

#11. '이러다 다른 여자가 채 가는 거 아냐?'

'얜 이래서 싫고, 쟨 저래서 싫고..' 비로소 남자 보는 눈이 생기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일 없이(?)' 하룻밤을 보내고 여행에서 돌아왔다. 여행 이후? 우리는 완전 '꿀 뚝뚝 커플'이 됐다. 그가 좋아졌다. 좋아졌지만 여전히 이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거나, 이 남자보다 더 괜찮은 남자가 나타나도 이 남자와 헤어지지 않겠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넌 아직 정신 차리려면 멀었어. oo이도 괜찮았고, 그 누구냐, 의사 걔도 괜찮았고, 그 ooo 기자도 괜찮았고, oo도 괜찮았어! 너 좋다는 애들 다 뿌리치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너 잘 생각해 봐. 지금 네가 그럴 땐 지!"
"자기야,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줘?"
"그냥~! 내가 자기를 챙겨줄 수 있다는 게 좋아. 자기를 챙겨주는 그 느낌이!"
"자기야, 여기 계단 너무 많다. 조심해!"



짧은 하룻밤이었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24시간을 꼬박 붙어 보았던 그의 순간순간 모습은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나면서 있었던 일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얜 이래서 싫고, 쟨 저래서 싫고!' 마치 '소개팅 게임'을 즐기며 평생 이팔청춘, 인기몰이를 할 줄 알던 30대 딸의 철없는 모습에 모든 걸 포기하며 혼내던 울엄마의 체념, 내가 뭐라고 그저 나에게 잘해줄 수 있음에 그저 행복함을 느낀다는 그 남자의 말, 세상엔 예쁘고, 몸매 좋고, 어린 여자가 널리고 널렸지만 나를 지상 최대의 공주님처럼 아끼고 보호해주는 그의 배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와의 인상 깊은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연인이 인연이 되는 것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마치 마법처럼, 물 흐르듯, 무엇에 홀린 듯 그렇게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연인은 비로소 인연이 된다.



퍽!!!

'이러다가... 다른 여자가 채 가는 거 아니야?'


영화 같았던 우리의 늦깎이 연애 단상에 빠져 있을 무렵, 난데없이 '이 남자를 다른 여자한테 빼앗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나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내가 밀어버린 커다란 샌드백에 뒤통수를 맞은 것 마냥,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남자... 분명 진짜 좋은 남편이 될 거야. 다른 여잘 만나도 나한테 만큼 잘해주겠지? 내가 정신 못 차리고 또다시 이 사람을 밀어내면... 나는 후회할 날이 오겠지? 내 인생에 이 남자만큼 나한테 진심으로 잘해주는 남자가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밀어내면... 안될 것 같아...'


그리고 지금까지 받기만 했던,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더 잘하는 건 당연하다'는 '연애 갑질'을 반성했다. 그리고 그에게 나의 진심을, 내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구남친: 자기야, 나 일단 식장 예약했어. 나 오늘 건강 검진하러 갔다가, 결혼도움방이 있길래 찾아갔지. 식장 예약 문의 메일도 안 열어 보고, 답도 없고, 전화도 안 받길래 사무실로 찾아갔어.
나: 진짜야????? 날짜는?
구남친: 그게 문젠데 말이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한 달 반도 안 남았어;;; 25일, 다음 달.
나: 어???? 다음 달 25일? 헐! 근데 날짜가 주는 느낌은 좋다! 몇 시?
구남친: 오후 세 시 반.


장난처럼 주고받았던 대출 이야기도, 결혼하면 어디서 살지도, 얼마나 있다가 결혼을 하면 좋을지도, 그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진심으로 들었고, 함께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검진을 하러 갔던 그가 사내 예식장을 떡하니 예약을 해 두고 왔다. '사내 예식장에서 결혼하고 싶다'며 스치듯 했던 나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진짜로 예약을 해 두고 온 것이다. '추첨이 아니면 안 되는데, 어떻게 했지?' 또 한 번 반했다, 그에게. 나는 그의 이런 추진력이 좋다. 웨딩플래너도 없이 우리가 결혼 준비를 약 한 달 반 만에 끝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꼼꼼한 체크와 기획력, 그리고 추진력이 더해진 결과였다.


구남친: 혹시 식장 비는 날 있을까요?
결도방: 아마 없을 거예요. 잠시만요.
구남친: 확인 한 번 해봐 주세요.
결도방: 아... 있긴 하네요. 하나 취소된 거. 근데 못하실걸요? 보통 취소되면 재추첨을 하는데, 이 날은 한 달 반 밖에 안 남아서 비워 두는 거예요.
구남친: 그래도 가능하면 예약은 걸 수 있는 거죠? 예약, 일단 해 주실래요?
결도방: 그래요? 못하실 텐데...?


임직원들의 결혼을 도와주는 곳이 있는데, 사내 식장에서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이 곳에서 진행하는 추첨에 당첨이 돼야 사내 예식장을 사용할 수 있다. 메일 답장을 기다리다 못한 그는 결혼도움방을 찾아 갔고, 누군가 취소한 날짜에 식장을 예약해 두고 왔다. 꼭 사내 예식장에서 결혼을 하고 싶었던 나 역시, 싫지 않았다.


그날 밤. 밤 12시가 넘은 시각, 우리 집 안방.


나: 엄마, 아빠. oo이가... 결혼식장을 예약했다네?
엄마, 아빠: 뭐!!!?
나: 예식장 있잖아, 사내 예식장. 거길 예약했대요, oo이가. 다음 달 25일이래... 웃기지. 말도 안 돼.
아빠: 가만있어봐. 그래? 아이고! 한 달 반 밖에 안 남았네?
엄마: 뭐? 한 달 반? 그 안에 어떻게 준비를 해.
동생: (울먹이며) 어???? 진짜야? 그럼 언니 진짜 시집가는 거야?


주무시려고 침대에 누워계시던 부모님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셨고, 내 동생은 마치 내가 내일 당장 결혼을 하는 것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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