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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남PD Oct 09. 2019

#10. 1박 2일 여행이 나에게 남긴 것

결혼 전, 꼭 해 보아야 할 1박 2일 여행  

최소한 60평은 될 것 같은 방 두 개짜리 호텔방에서 우리는 색다른 데이트를 했다. "뭣이야? 결혼 전 남자랑 1박 2일 여행이라고? 노노노! 절대 불가!"를 외쳤던 나로서는 이날 우리의 남해 여행이 얼마나 중요한 경험이었는지 모른다. 만약 결혼을 전제로 진지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면, 꼭 한 번쯤 연인과 한 방을 써보는 여행을 가볼 것을 추천한다. 단 며칠만이라도 한 공간에 있으면서 우리는 그에 대해,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알아차릴 수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사회 경험이 다양할수록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상대에 대해 알게 된다. 사귄 지 얼마 안돼 수미칩을 들고 집 앞으로 찾아왔던 구남친에게 나의 쌩얼을 보여주기 싫어 집으로 돌려보냈던 나는, 그 이후에도 1분이라도 얼굴을 더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운동 후, 자기 전, 출근 전 마르고 닳도록 찾아오는 남친에게 나의 쌩얼을 공개했고, 여행지에서는 조금 더 편안하게 그를 볼 수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남해를 돌아보고 숙소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나니 구남친은 고새 콜~ 콜~ 단잠에 빠져 있었다.


"자기야~ 나 다 씻었어!!"
"어? 자기가 왜 여기 있어???"
"어?????"


완전 황당!!! 지금 생각해도 웃긴 이 상황은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구남친의 넘치고도 넘치는 저녁잠 때문이었다. 사실 장시간 쌩얼을 유지해야 했기에, 씻고 나서도 피부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해야 했기에, 샤워 시간이 평소보다 좀 길어지긴 했지만, 이렇게 곯아떨어졌으리라곤!!!


'피곤했나 보네... 하긴 하루 종일 운전했으니까... 고생했어요!'


씻고 나오니 예쁘게도 잠든 구남친이 귀여워 한참을 보다가 "이제 놀자"며 깨웠더니 여기 왜 있냐니! 오, 마이, 갓!


결혼 5년 차인 지금도 자다 일어나면 엉뚱한 말을 하거나, 곤히 자다 깨서 와이프와 눈을 마주치고는 갓난아기처럼 활짝 웃어 보이는 건 여전하다.


"뭐야~~~ 나 다 씻었다고~~! 여기 남해잖아!"
"아! 맞다. 우리 지금 여행 왔지? 헤헤헤, 자기 잘 씻었어??"
"응~~~ 아까 주문한 와인 마시자!"


각종 핑거푸드와 시큼 알싸한 와인 한잔을 마시며 우리는 결혼 이야기, 가족 이야기, 가치관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철학 같은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린 시절은 어떠했고, 살면서 어떤 남자를, 어떤 여자를 배우자로 맞이하고 싶었는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잊지 못할 순간들을 이야기했다. 여행 오기 전에도 밤새 전화 통화를 하다 스르륵 잠이 들었지만, 여행지에선 더 할 말이 많았다. 그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대해 들으니 그가 더 좋아졌고, 나도 모르게 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해 풀어놓게 됐다. 그의 동료들 이야기, 그의 가족 이야기, 그가 살아온 이야기는 그가 나의 결혼 상대자인지 파악하는데 좋은 판단 기준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내가 자기한테 차일 거라고 했어. ㅍ차장이 만약에 차이면 말하래, 술 사준다고."
"왜? ㅎㅎ 웃기네,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해?"
"자기는 유명하니까. 자기 기사, 자기 블로그 보는 사람이 많으니까. 나만 몰랐지, OOO PD라고 하니 다들 '혹시, 설마 남OO PD 아니에요?'라고 묻더라고. 그래서 앞으론 더 조심하려고. 자기 소문나면 안 되니까!"


안팎으로 날 아껴주는 구남친의 배려는 나를 더 그에게 가까이 가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우리는 두 개의 방 중 조금 더 아늑한 방에서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그때부터 구남친의 팔베개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쭈욱~ 이어지고 있다. 내 남자의 품은 항상 보들보들하고, 포근하고, 따뜻하고, 잠이 잘 온다. 사실 잠자리에 들어 꽤 오래 지나야 잠이 드는 나는 그날 구남친의 품에서 마법처럼 스르륵 곤히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전날 먹은 와인과 각종 먹거리로 얼굴은 좀 부었을 것이고, 눈곱도 꼈을 것이고, 머리는 부스스했을 것인데, 그는 나에게 "아침에 보니까 더 예쁘다!"라고 인사를 했다.


"자긴 화장 안 하는 게 더 예뻐. 깨끗해 보이고, 청순해 보이고!"
"거짓말! 나 못생겨 보여서 싫어~ 보지 마~! 화장 안 하면 안 돼."
"아냐, 난 안 하는 게 더 좋아."


화장을 안 하고는 동네 마트도 안 가던 내가,구남친의 이런 칭찬에 '용기'를 내기 시작했고, 요즘은 간혹 쌩얼로 동네 나들이도 서슴지 않는다. '내 남자가 예쁘다는데 뭐가 제?' 하면서! 그렇게 눈을 뜬 우리는 조식을 먹으러 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내가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하고, 머리만지는 동안, 그는 방을 정리하고, 쓰레기들을 모으고, 버릴 것과 가져갈 것을 정리하고, 여행 짐을 정리했다. 내가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방은 깨끗하게 정리됐고, 나는 내 몸만 쏙 빠져나와 조식을 먹으러 나갈 수 있게 됐다.


"자기야, 이거 먹을래?"


밥 먹을 때에도 나는 접시 하나만 달랑 들고 서서 그를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면 됐다.


'이 남자랑 결혼하면... 항상 이렇게 아기처럼, 공주처럼 보호받으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여행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남긴다. 함께 여행갈 사람이 있다는 것, 같은 것을 볼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1박 2일 여행 동안 내 가슴에는 이런 확신이 가득 찼다.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고, 대화를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멋진 풍경을 보지만 무엇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함께한 사람의 값진 모습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의 구남친은 먼저 퇴근할 아내를 위해 여전히 매일 아침 깨끗이 청소를 하고, 매주 화장실 청소를 하고, 매주 차 청소를 해준다. 1박 2일간의 여행은 나에게 참 많은 것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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