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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커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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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Dec 12. 2018

핸드드립 이야기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커피가 있지만 핸드드립은 왠지  ‘단 한 잔의 커피’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몇 년 전, 카페에서 호기심으로 원두를 산 것을 시작으로 커피 도구도 하나둘씩 구입하게 되었고 지금은 핸드드립 커피를 매일 마시고 있다. 이젠 그저 미각적인 즐거움만이 아닌 아침을 여는 중요한 의식이  되었다. 전날의 기분과 상관없이 아침에는 커피를 만든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 다시 시작된 오늘에도 새로운 온기가 생길 것 같다.




핸드드립을 위한 준비물

핸드드립을 위한 준비물! 분쇄 원두를 담을 여과지, 여과지를 끼울 드리퍼(Dripper), 입이 가늘고 긴 주전자인 드립 포트(Drip pot), 드리퍼 아래 놓고 추출된 커피를 받을 서버(Server), 원두를 분쇄할 핸드밀 , 좋아하는 원두를 준비한다.



우선 원두를 분쇄한다. 나는 핸드드립을 처음 시작했을 때 산 칼리타의 수동 핸드밀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요즘에는 가정용으로 쓸만한 자동 그라인더도 많지만 원두가 분쇄되는 손의 감각과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게 핸드밀의 장점이다. 약간의 수고로움은 커피 맛에 반영될지도 모른다.



패키지가 너무 귀여운 LION

얼마 전 카페쇼에 갔다가 바닐라 향과 부드러운 맛에 반해 사온 Hawall’s Lion Coffee. 커피 수업을 하면서 원두 읽는 법도 알게 되어서 앞으로는 마신 원두를 기록하기로 했다.(새로운 노트를 살 구실이 생겼다)


다양한 원두가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호감 있게 다가오는 추세이다. 나라, 지역, 농장과 농부 이름, 해발 고도, 로스팅 정도가 적힌 싱글 오리진 원두도 있고, 수입한 원두를 다른 원두와 배합하여 특색 있는 블렌딩 로스팅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원두 봉투에 커피에서 느낄 수 있는 향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기대치를 높이는 요소가 된다. 빵을 고를 때의 설렘처럼 원두를 고를 때도 맛있는 상상을 한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원두가 조금씩 사라질수록 핸드밀 박스에 분쇄 원두가 쌓인다. 마음이 급해서 빨리 돌려도 어차피 넣은 양만큼 움직여야 한다. 서두른다고 해서 더 속도가 나지 않는다. 25초 정도로 빠르게 내리는 에스프레소와는 달리 핸드드립은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를 의식하지 않는 느린 커피이다. 분쇄가 끝난 원두를 여과지를 끼운 드리퍼에 넣을 때 원두 향을 한 번 더 맡게 된다.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향을 맛보는 셈이다.


뜨거운 물을 준비하고 드립 포트도 옆에 둔다. 적정 온도는 90~95도 사이. 끓는점을 넘긴 주전자의 물을 드립 포트에 옮겨 담는 사이에 딱 적절한 온도가 준비된다. 온도계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동안 수돗물을 끓여서 핸드드립을 했는데 정수된 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걸 커피 수업에서 알게 되었다. 물 맛도 커피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니!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원리를 모르고 있었다. 핸드드립의 90퍼센트 이상이 물인데 왜 그냥 지나쳤을까. 그래서 이제는 반드시 생수를 사용한다.  



집중이 필요한 시간

한 손을 탁자에 짚고 드립포트를 기울여 원두 전체를 적셔 준다는 기분으로 1차 추출을 한다. 원두 사이로 물이 골고루 스며들어서 커피가 통과할 길을 만드는 20초가량은 뜸을 들이는 시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짧고 긴 공백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커피에 시선을 뗄 수도 없다. 원두에 뜨거운 물이 닿으면 가스가 생겨서 도톰하게 부풀어 오르는데 크고 작은 거품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젠 본격적인 추출을 시작한다. 추출의 방향은 안에서 밖으로 원을 그리다가 다시 밖에서 안으로 좁혀오는 식이다. 수평(레벨링)을 맞춘 원두 가루에 균일하게 물이 침투해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내릴 수 있다. 원두의 향미와 맛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물줄기를 가늘게 하면서 천천히 2-3회 더 추출을 한다. 추출 시간은 3분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너무 오래 내리면 커피의 좋은 성분은 다 빠져나가고 좋지 않은 맛까지 내려갈 수 있어서다. 마지막 추출수가 다 빠지기 전에 드리퍼를 뺀다.




빵처럼 부푼 원두

신선한 원두는 추출을 할 때 부풀어 오른다. 원두에 뜨거운 물을 넣으면 봉긋하게 발효된 것처럼 올라온 부분을 나는 ‘커피 빵’이라고 부른다. 추출을 할 때면 ‘오늘은 빵 없나?’하고 들여다 보게 된다. 맘모스 빵이나 모카번이 떠오르는 귀여운 모습이다. 선생님은 이 부분을 ‘커피 머핀’이라고 불렀다. 커피 빵이 도톰하게 올라오는 걸 보면 원두를 잘 추출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서버에 한 잔에서 두 잔 분량의 커피가 담긴다. 여기서 꼭 빼먹지 말아야 할 포인트가 있다. 커피의 성분이 가장 많이 추출된 첫 부분과 나중에 내려온 커피층을 잘 섞어주는 교반 작업을 해야한다. 휘휘 저어주는 이 마지막 포인트가 핸드드립을 완성하는 소리이다.


집에서 매일 핸드드립을 하기 때문에 수업이 별로 재미없을 것 같았는데 학원 수업을 통틀어 핸드드립이 가장 재미있었다. 만드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보다 같은 원두로 같은 양을 추출했는데 각자 다른 맛과 향미를 만드는 게 흥미로웠다. 다들 서로의 커피를 마셔보고 떠오르는 맛을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군옥수수 향이 나기도 하고, 초콜릿 향미가 느껴지거나 오렌지 귤껍질을 말린 것 같은 산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나는 아직 향미를 세분화해서 맛을 표현하는 데 미숙하지만 선생님은 사람들이 만든 핸드드립의 맛을 다양한 향미로 평가했다. 커피를 만들고 맛보는 시간이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맛에 대한 감각도 예민해 질 것이다.


  


며칠 전 카페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했는데 자동 핸드 드립 머신에서 커피가 나오고 있었다. 손으로 내릴 때와 비슷하게 가는 물줄기가 자동으로 원을 그리면서 흘러나왔다. 추출구가 세 개나 있는 자동 핸드드립 머신이라니. 인터넷으로 가격을 알아보니 2천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기계가 해줬는데 맛도 좋았다. 그렇지만 핸드드립 기계는 아직 어색하다.


따뜻하게 마시기 위해 워머 위에 서버를 올려 둔다.


느리고 자유로운 커피,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앞에 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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