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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

나도 모르게

by 최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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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뻔한 질문이었다.
구남친의 물음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저녁에 공연 보고 나왔는데, 오빠가 몰래 데리러 왔을 때."


그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던 걸까.
살짝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기억 속엔 그 순간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랑이란 건, 그렇게 늘 단순한 것 같다.


결국, 기억에 남는 건 화려한 이벤트도,
누군가에게 자랑할 법한 특별한 순간도 아니었다.


-

철없던 시절, 나는 상대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손편지, 독서, 화장품 선물 같은 지극히 나의 취향에 맞춘 미션(?)을 주곤 했다.


그는 하나하나 내 요구를 맞춰주어 고마웠지만, 그 순간에도 어쩐지 마음이 허전했다.

사랑이란, 계산된 노력보다 더 자연스럽고 예기치 않은 곳에서 피어나는 거란 걸 그땐 몰랐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기억에 남는 건,
고가의 선물도, 어렵게 예약한 레스토랑의 음식 맛도 아니다.


내 마음 깊숙이 자리한 건,


이른 아침, 말없이 내 손에 쥐여주던 따뜻한 커피의 온기.
길가에 가만히 서서, 멀리서 다가오는 나를 보고 환히 웃던 얼굴.
그리고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들을 알아채던 순간들.


사랑이란 건, 말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서로의 마음을 채워주는 것이란 걸.


가끔은 거창한 노력보다, 일상의 작은 행동이 더 크게 남는다는 걸.


그 섬세한 순간들이 내 감성 속 예리한 유리조각처럼 박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결국 사랑이 끝난 후에도 남아 있는 건 상처의 깊이가 아니라,
소박하지만 마음 깊이 일렁이던 그 순간들이다.



<애인은 기간제 베프>는 밀리의 서재 [밀리로드]에서 연재중입니다.



인스타그램: @choida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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