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싫어하는 단어가 있다.
'회복탄력성 :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에 대한 인식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
왠지 거부감이 드는 단어다. 상처를 받은 채로 덮은 채로 살고 싶을 때가 있다.
극복할 의지가 없다. 극복하고 싶지 않다. 더 높이 뛰어오르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나에 정체하고 싶을 때가 있다.
상처를 받은 채로 무딘 척 살아가는 건 나약한 걸까? 꼭 시련과 상처를 발판으로 난 더 단단해져야 하는 걸까?
난 이대로 살면 안 되는 건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단어다.
꼭 그 시절마다 유행하는 말들이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처럼. 그러고 보면 청춘에는 왜 이렇게나 많은 수식어들이 붙는지 모르겠다. 비바청춘, 청춘영화, 청춘드라마 등등... 멜론에서 청춘이라는 단어만 치면 노래가 주루룩 나온다 (중년찬가, 노년 드라마는 없다?)
청춘은 마음이 요동치는 계절인가 보다. 청춘을 담은 이야기들은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없고, 바람을 견디면 끝내 성장으로 막을 내린다.
인생은 왜 이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지 시련과 실패와 고통과 상처 없는 삶은 없다.
청춘이라, 처음이라 힘이 들고 발버둥 쳐서 이겨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 나는 그렇게 이겨내서 더 성장했는가? 그건 모르겠다. 답 할 수 없다. 여전히 나는 마음이 단단한 사람은 아니다.
오늘의 나는 내 청춘의 끝자락인지 더 이상 성장을 위해 아등바등하고 싶지 않다.
안락한 현재에 안주하고 싶다.
지금 나는 아주 포근한 소파에 콕 박혀 앉아있다.
움직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곧 답답해져 창밖을 보고 싶어 잠깐 일어날 것이다.
난 오래 앉아있지는 못하는 호기심 많은 사람이니까.
내일 제주도를 간다. 귀여운 재이랑, 남편이랑.
새로운 창을 있는 힘껏 열어보면 다시 일어나 집밖으로 나가고 싶어 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