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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온기 May 14. 2021

에코달,출발선이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로웨이스트라이프

계기가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 사람들에겐 계기가 될만한 일들이 있는 것 같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거나 책을 보면, 하나같이 뭔가 번쩍! 하고 

'그래 이거였어!' 라며 충격적인 아이디어나 아픔이 있어 새롭게 시작하거나

뭐 그런 좀 장황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난 그런 게 없다.

집 앞 천변에 늘 흐르는 물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된 게 계기라면 맞을 것이다

흐르는 시간에 내가 없이 나의 세명의 딸들이 살아갈 그 날들을 까맣게 만들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만했다


완벽한 준비

아이템이 생긴 건 두 달 전, 길가에 버린 쓰레기를 줍는데, 그러다 봉지 하나를  줍게 되었는데 차 트렁크에서 스멀스멀 똥 썩은 악취가 나는 게 아닌다. 둘째를 픽업하러 갔다 오는 길 "엄마 이게 무슨 냄새예요? 악 진짜 지독해"  진짜 지독했다. 집에 도착 후 냄새를 따라 가보니, 트렁크였다 

"어떻게 아 진짜 이게 뭐지? 뭐가 흐른 거지 루야 이 냄새 맡지? 그렇지?"

트렁크에 있는 쓰레기 봉지가 냄새의 주범

내가 트렁크에는 늘 항상 가지고 다니는 세트 에코백, 반찬통, 그리고 장바구니 사이즈별 3개

그중 제일 큰 장바구니 위에 액체가 흐물흐물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데 즉시, 분리하고, 수건으로 닦고, 아무 소용없었다. 이미 그 액체는 트렁크 바닥에 스며들어서 더 이상의 비상대처는 아무 소용없어서 집에 있는 편백 수액을 가져와 임시 처치를 해놓기로 했다.

내가 플로깅을 하는 곳은 주로 차들만 지나다니는 산길이라 봉지봉지 쌓여있는 것들이 많은 곳

막내딸 어린이집은 집에서 2.5km 떨어진 곳에 있는 직장어린이집 가는 길이 산길이고 민가가 거의 없으면 가는 길 오른쪽은 군부대 부지라서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왕복 2차선 도로인 이곳은 양쪽으로 약간의 빈 공간만 있을 뿐 사람이 걸어 다닐 인도가 없다

그런데 정말 많은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다. 처음엔 바람에 , 비에, 태풍에 흘러 흘러 들어온 건가 생각했는데.

나의 순수한 생각은 딱 거기까지, 플로깅(줍깅)을 하려고, 차를 세우고 보니 흘러들어온 쓰레기보다. 일부러 버린 쓰레기들이었다. 


흘러들어왔다기에는 너무 곱게 접어져 있는 라면봉지 누군가에게 라면 편지를 쓰고 싶었던 걸까?




사람들의 민낯


그 쓰레기에서 나온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음식을 먹고, 차에서 봉지에 모아둔걸 아주 꽁꽁 묶어 그 길을 지나면서 창밖으로 휙~ 하고 버린 것인데 그걸 내가 주워 온 것이었다. 저 길에는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들이 길가에 줄지어 있다. 

길이 예쁘다. 지금은 아카시아꽃이 한창 필 때라서 하얀 꽃들과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청량하기까지 하며 창문 열고 천천히 가다 보면 내 머리 위에 있는듯한 새소리가 가깝게 들리는 곳이다. 가는 길 중간엔 양봉하는 곳도 있어 수많이 꿀벌들이 벌통 위에서 벌집에 조금이라도 빨리 꿀을 채우기 위한 날갯짓을  햇살 아래 은빛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길이다. 그런 길을 난 아침 9시 오후 4시면 지나다니고 있다.

막내와 함께 가는 길과 오는 길에 우사에서 코만 보이는 소도 구경하고, 참새가 떼 지어 나무를 옮겨 다니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런 곳이 바닥에는 온통 쓰레기가 있다. 

자신들의 차 안에 있는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고 차 안에 쓰레기는 없어졌겠지만

그 길을 수없이 다닐 나와 아이는 그 쓰레기가 어디로 날아가거나 , 땅속에 박히지 않는 이상 매일 그 자리에 있는 걸 보게 될 거다. 1회용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들의 민낯

깨끗이 씻고, 깔끔하고 단정하게 치우고, 먼지, 티끌 하나라도 내 아이에게 내차에 내 집에  묻어나는 건 진절머리 나게 싫으면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사람들이 있는 길에는 아무렇지 않게 버린다. 

어리석은 행동이라는걸 . 우리가 버린 쓰레기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돌아온다. 절대 같은 모습으로 오지는 않을 것인데. 아마 더 큰 아픔으로 온다는 건 확실하다.


차를 세우고 1m도 안 되는 반경 안에 있던 쓰레기들 ,저 검은 봉지 안에는 뭐가 들었을지 궁금하지는 않다.


그래서 줍기로 했다.

나 혼자, 혹은 아이들과 하원 하며 오는 길 

어린이집 앞에서도 차를 타고 오는 중간 길에서도 큰 쓰레기가 보이면 줍기 시작했다. 

흐르는 액체 사건 이후 집게를 사용하게 되었고 쓰레기를 담을 봉지는 재사용하는 봉지 2개를 겹쳐서 담았고

(차에 베인 냄새 없애느라 남편에게 눈치가 보였다)

PT병과 일반쓰레기를 구분했으며, 봉지에 들어있는 쓰레기는 꼭 두껍고 튼튼한 비닐에 담았다

아이들도 함께 적극적으로 플로깅을 했고, 절대 쓰레기는 버리지 않는 것이고, 분리수거해야 되는걸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막내딸은 어린이집에서 비타민을 먹고 나면 바지 주머니나 가방에 꼭 넣어가지고 온다

매일 줍깅을 할 때도 있어고, 한 장소를 타깃으로 열심히 줍고 깨끗해진 곳도 있었는데 

다음날이면 같은 장소에 또 쓰레기가 던져져 있었다. 그래도 줍고 또 줍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하고 싶었고, 누군가라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난 차를 세워 놓고 봉지 한가득 쓰레기를 담아왔다.

내일 지나가면 또 버려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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