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너는 사과 할 줄을 모르냐" 남편과 싸우는 중 내게 한 말이다. 바로 되받아치며 내가 언제 사과 안 했냐고 윽박질렀지만 잠시 정적이 흐르는 몇 초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결혼 초부터 우린 잦은 싸움이 잦았고 대부분 남편의 사과를 했다. 의식적으로 알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 몇 초 사이 그리고 싸우고 난 뒤 다른 말보다 그 한마디가 머릿속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1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사소한 다툼이라도 남편이 먼저 다가와 주었다. 난 왜 그렇지 못했을까? 몇 년 전부터 나를 인정하려고 노력했다. 자존감이 낮으면 자존심만 생긴다는 걸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렇게 남편에게 사과할 줄 몰랐었나?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 내가 잘못을 해도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고집을 부려 사과를 받으면 그게 내 자존감이 되는 거였을까?
자라온 환경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감추려고 아닌 척 하며 살지는 않았다. 때로는 과거가 나를 우쭐거리게 만드는 수단이 된 적도 있다. 그렇게 힘든 환경에서도 내가 이만큼 잘 살았다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건 인정받으려고 내 과거를 팔아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날 이후 나를 천천히 돌아보며 내가 하는 행동, 생각들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직도 진행 중인 나 자신 돌아보기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나를 변하게 만든다. 괜찮은 척, 아닌 척, 행복한척, 잘지낸척, 힘든척. 그런 척을 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내가 느끼는 감정을 쌓아두고 결국엔 한 번에 터져버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표현하고 힘들게 버티지 않으려고 한다.
항상 그럴 수는 없지만, 남편과 혹은 아이와 문제가 생길 때는 내 감정에 취해서 고집을 부리거나 이기려 하지 않고, 대화를 하고 때론 내가 먼저 사과를 하며 그걸 억울해하지 않는 연습을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를 위로해본다. 힘들었을 거라고 버티느라 고생했을 거라고 그런데도 지금까지 잘 살아온 건 너무 잘한 일이라고 토닥거려준다. 앞으로 힘든 일은 언제든지 또 생기겠지만 그때는 예전보다 또 지금보다 훨씬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낮은 목소리로 격려해준다.